플래너TP이야기/플래너TP의 여행기: 13개의 글

부천 맛집탐방, 장수식당 - 오리쌈밥! 가격에 놀라고, 맛에 또 놀라고... 1인분도 된다고?!

Posted by 플래너TP PlannerTP
2018.10.17 18:43 플래너TP이야기/플래너TP의 여행기


  안녕하세요. 오늘은 맛집소개를 해드릴텐데요. 여러식당 찾아가다보면 이 집은 꼭 다시가야겠다고 생각되는 곳이 있잖아요? 그곳이 바로 오늘 소개해드릴 '장수식당' 이란 곳인데요. 부천역에도 있는데 거긴 아니구요. 원미구청 부근에 있는 장수식당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위에 사진은 오리쌈밥 2인분입니다, 가격은 1인당 6천원! 2인분을 시켜야하느냐? 아닙니다. 양은 작은거 아니냐? 아닙니다. 밥은?



밥도 당연히 나오구요. 이건뭐... 가성비 갑이네요.

상추, 양배추, 된장국, 연근, 멸치, 김치, 각종나물, 고추, 재래식 된장, 

게다가 튀김까지... 저기 뒤에 안보이는 나물이 또 있습니다.




고구마튀김하고 깻잎비슷한 튀김인거 같아요.




  처음나올 때 저렇게 양념버무린 오리고기와 함께 어마어마한 부추가 올라가 있는데요. 

저게 2인분인데 부추양이 저정도면 상당한 거죠.



  버너 위에서 바로 조리를 합니다. 

오리고기는 이미 익혀서 나온 상태인 것 같더라구요. 

중불에서 약간 조려서 부추랑 섞어서 잘 볶은 후에 먹었네요.



  이게 바로 오리쌈밥 2인분입니다. 게다가 이 식당의 장점은 1인분도 주문이 된다는 점입니다. 전에 여기서 제육백반(5,000원)과 김치찌개 (5,000원) 을 1인분씩 시켰는데 시간은 걸렸지만 각각 푸짐하게 나왔던 것에 여기 참 괜찮다고 느꼈는데요. 직장인이 왠만하면 점심값이 5,000원도 저렴한 편이고 부담없다고 느낄만한데 여기서는 6,000원 가격대의 음식을 오히려 먹게 되더라구요. 5,000원 대 가격의 메뉴들의 서비스가 너무 좋다보니 (제육백반은 드셔보면 6,000원 값어치 정도합니다.) 반찬리필도 부족하면 적당히 이야기하면 되는데요. 개인적으로 5,000원 메뉴 먹으면서 그 식당밥 맛이 없으면 가격대 올린 음식으로 시도를 잘 안하는 편인데 여긴 일단 5,000원대 음식을 먹어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입니다. 5,000원에 제육쌈밥 1인분을 드셔본다면 맛도 실망하지 않을뿐더러 오리관련 메뉴 중에 지금 소개하는 오리쌈밥은 퀄리티도 좋으면서 가격이 1인분에 6,000원이면 정말 싸다고 느끼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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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리고기의 양이 이정도에다가 양념, 그리고 밑반찬이면 마트에서 사서먹어도 이 모든게 적어도 15,000원은 더 할 것입니다. 밥을 다 비워내고 더 먹을 수 있을 정도의 맛있는 양념과 생각외로 총 2.4인분 정도되는 오리고기의 양은 충분히 이 식당에 더 맛있는 음식들을 찾아볼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김치찜 6,000원, 보쌈정식 7,000원, 삼겹살 11,000원, 칼국수 5,000원, 굴밥 7,000원, 동태탕이 6,000원인데 이중 동태탕은 이번 겨울에 꼭 먹어봐야겠습니다. 김치찜도 소주안주에는 그만인데 저녁에 퇴근하고 기분전환할때 부담 없이 시킬 수 있겠네요!

​​



  메뉴 가격대를 보시면 가장 만만한 가격대가 5,000원이고 거기서 6,000원대 메뉴가 다양하게 더 많아서 일단 5,000원 메뉴인 제육백반을 꼭 드셔보길 바랍니다. 그리고 마음에 드신다면 6,000원대 메뉴로 가셔도 좋은데 여기 식당요리이모님이 영업은 잘 하시진 않지만 밥가지고 이윤을 잘 남기지 않으려는 것(남는게 많이 없을 듯한 식사구성)과 시크한 명함 건네기는 왠지 이곳을 알려줘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대구탕도 6,000원인데 한번 추운 겨울에 꼭 먹어봐야겠네요. 맛은 보장하는게 기본적으로 된장국을 주시는데 간이 부담없이 먹을 수 있게 끓여놓은 걸 보면 분명 내공이 대단한 요리를 하시는 분인 것 같았습니다. 오리쌈밥의 양념도 자극적이기 보다는 밥이 잘 넘어가게 식욕을 돋굴정도의 풍부한 양념으로 공깃밥 하나를 더 시키고 싶은 충동이 있었지만 고기가 남아서 다 먹느라 배를 채웠네요.



  계산하다가 쿨하게 명함을 건네주신 식당이모님, 자신있는 단체손님도 받는다는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영업하기

  백반, 옻오리, 옻닭전문인데, 몸보신 할 수 있는 닭백숙, 오리탕도 부담없는 가격 6,000원에 먹을 수 있다는게 좋은 것 같습니다. 오리 주물럭이나, 생오리 로스도 28,000원인데 4인기준이면 충분히 배부르게 먹는다고 하네요 :) 소주안주로 제격이겠죠? 건강에 좋은 오리요리로 몸보신하시면서 맛도 즐기시고 가성비도 누리시고 부천 원미구청쪽으로 오신다면 이 곳에서 행복한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부천역1 호선에서 춘의역 가는 길 사이에 위치해 있으며 

원미구청 건너편에 쌍용자동차를 막 지나자마자 왼쪽 골목으로 들어가면 보입니다. 

부천역 1호선에 있는 장수식당이 아닌

원미구청역 부근에 있는 식당입니다.


아 저녁도 여기서 먹었으면 하네요.

즐거운 식사 시간 되세요!

감사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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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부천시 부천로147번길 10 | 경기 부천시 부천로147번길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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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 특집! - 광화문 광장 2편, 충무공 이순신 이야기

Posted by 플래너TP PlannerTP
2018.10.10 21:25 플래너TP이야기/플래너TP의 여행기


  광화문 광장, 세종이야기를 따라서 쭉 가보다보면 어느새 충무공 이순신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7년에 걸친 임진왜란 동안 침략군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고, 백성들에게는 희망의 상징이었습니다. 어떠한 어려움 앞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연전연승을 이뤄 냈던 그의 삶과 정신은 오늘날에도 희망의 상징이 되고 있습니. 제가 어렸을 때 유일하게 읽었던 전기라고 해야할까요? 저는 정말 책을 잘 읽지 않았는데 유일하게 이순신만큼은 읽었다고 할만큼 제게 영감을 주는 인물이었습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면 반드시 이길 것이다.

  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의 원전(原典)은 '오자병법(吳子兵法)'에 나오는 '필사즉생행생즉사(必死卽生 倖生卽死)'입니다. 즉, '죽기를 각오한 자는 살고 요행히 살아남기를 바라는 자는 죽는다'는 뜻입니다. '오자병법'은 춘추전국시대 위(魏)나라 사람으로 76전 무패를 자랑하는 명장 오기(吳起)가 지은 책입니다.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적은 군사로 많은 왜군을 상대하며 휘하(麾下)의 군사들을 독려하면서 “살기를 도모하는 사람은 죽을 것이요,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면 살 것이다”라고 말해 유명해진 명언입니다. 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 이 말은 여러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다사다난 했던 삶을 이야기하는 백의종군

조선 시대의 군대 형벌의 하나입니다. 

장수를 제복인 철릭 없이 속에 입던 백의만 입고 근무케 하는 것으로 

한마디로 현대의 보직해임이나 마찬가지인 처벌이죠.

한번 장수는 영원한 장수라는 말이 있듯이 그의 옷의 꼴만 그렇게 만들 었을 뿐이지 

실제로 근무를 할때는 예우를 해줬던 편이라고 합니다.



이순신의 구군복 차림의 영정입니다.



이순신의 표준영정입니다.



다양한 전투를 했던 이순신의 기록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순신하면 거북선이죠.

이 거북선이 서울 광화문 지하에 있다

정말 놀랍지 않나요?

본형은 아니고 모형이지만 충분히 거대해 

거북선의 위상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옆에 구멍은 전시때 화포를 넣어서 발포하기 위한 구멍이죠.



뒷부분에 꼬리까지

조명이 여러곳에서 쏘고 있어서

화려해보입니다.



깃발은 한문으로 '거북 귀' 라는 글자가 보이네요.



거북선 근처에 보면 디지털 화면으로

깃발에 용도에 대해서 설명한 내용이 있습니다.

영기 : 장수의 명령을 전달할 때 전령이 소지하는 기로서

이 기를 소지하는 자에게만 명령의 접수와 더불어 영문 출입이 허용됩니다.



오색대휘 : 대장이 예하 부대를 호령할 때 사용하는 기로서

청색은 동쪽, 백색은 서쪽, 적색은 남쪽, 흑색은 북쪽,

황색은 중앙의 부대를 지휘할 때 각각 사용된다고 합니다.



초요기 : 청색바탕에 흰무늬로 북두칠성을 그린 기로

대장이 예하 장수를 소집하는데 사용한다고 하는데

이 깃발은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나요?



바로 영화 명량에서 나왔던 장면인데요.

이 초요기가 올라가지 못하도록 일본의 저격수가 막다가

이순신의 충신 안위가 화살로 그의 눈을 맞추어버렸죠.

그 이후 이 깃발이 올라가고

모든 것은 조선 진영의 흐름으로 가게 되죠.



좌독기 : 사병을 주관한다는 의미의 기로서 주장이 소지하며, 임진왜란 이후 조선 수군에 도입되었고,

조선 후기에 이르면 태극기로 변형되어, 통제사의 기함 돛대 위에 계양되었습니다.



주변 상황에 따라 제약이 있는 청각 신호와 다양한 의사 표현이 어려운 시각 신호의 단점을

보완한 작전 신호를 사용하였다고 하는데요. 

이런 것을 보면 이순신은 뛰어난 순발력과 재치를 가지고 있었다고 보입니다.

현재시대에는 이런 창의력이 요구가 되고있는데

당시 전투에서 그의 창의력을 이겨낼 자는 없었다고 하죠.



거북선의 앞 모습을 찍었습니다.



아랫 부분에 도깨비 얼굴모양이 있는데

아래에서 적들이 쳐들어와도 저 커다란 도깨비 모양의 얼굴을 보고

겁을 먹었을 듯 합니다.



실물의 55% 크기로 축소했다고하는데요.

부피는 네배가 차이가 나는 샘입니다.



가까이서 찍어서 그런지 모형이라고 해도

커 보이기는 하네요.

실제로 보면은 모형도 그렇게 큰 편도 아니고

실물을 상상해본다고 했을 때 거북선이 

생각외로 그렇게 큰편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화포장은 화포의 대장이겠죠.

화포를 관리하는 책임자



격군, 노를 저어라!

노군, 능노군이라고도 합니다.



사부, 활을 쏘는 군사!



타공, 선미에서 키를 조종하는데

여기서 선미라는 것은 배 선, 꼬리 미

배 뒤에서 물에 흐름의 방향을 조종하는 사람이죠.

이 걸로 배가 나아갈 방향을 결정합니다.



포도장

관리자라고 보면 됩니다.



선직은 당직근무 하는 사람이죠.



선장,, 최고 관리자라고 보면 됩니다.

회사의 사장이죠.



거북선의 첫 기록은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 등장한다고 하는데요.

이것은  조선 초기의 거북선을 한층 보강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거북선은 예로부터 전쟁에 자주 쓰였던 배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기록이 없으면 정말 우리는 역사를 알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이순신의 전서를 편찬한 이충무공전서

우리나라 최고의 태평성대를 이룩했던 정조가 지시하여 발간하였다고 합니다.

당시 이순신 장군과 거북선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한 사료로 가장 상세한 기록이 되었습니다.



이 배들을 보아하니 안택선이로구나



돛대 가운데 다이아몬드형 모양의 문양이 있는걸 보아하니

세키부네가 틀림없군요.



이렇게 많은 세키부네가 거북선 하나를 당해내지 못한다는 의미로

모형을 만든 것 같습니다.



수많은 전쟁이 있었지만

우리의 기억속에 남아있는 전쟁은

명량해전, 그리고 노량해전이죠.

노량해전에서 이순신은 자신의 목숨이 끝나가는 상황에서도

그렇게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마라'

여기 나온 "지금 싸움이 한창 급하니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 "

숨이 곧 멎을 지경인데 이런 말을 똑바로 하긴 힘들었겠죠.

아마 기록을 할때 한자로 하다보니까 해석을 풀이하면 저렇게 풀이가 됐을 겁니다.



사기도 사기이며 하물며 적군의 사기도 상승할 것이니

이는 마지막 가는 그의 길에서까지 나라를 걱정하는 충신의 모습에 감동을 하게 됩니다.



여기 좌독기가 다시 나오네요.

우리나라 태극기의 시초가 된 깃발입니다.

다양한 무기가 놓여져 있는데요.



군을 지위하기 위한 악기가 놓여있네요.

빨간 깃발은 더욱 강렬한 전사의 의지를 나타내 보입니다.



용의 머리에서 도깨비가 나오는데

정말 무시무시하죠.

어떻게 보면 또라이같기도 하고

도깨비를 너무 좋아하는데 이는

어두움 속에서도 그들이 귀신을 본다고하더라도(마음이 약해진다고 하더라도)

자신들은 항상 그들을 몸에 지님으로써 귀신이라는 공포에 익숙해지면서

그들 자신을 수호해준다는 믿음에 이런 모형의 칼집을 만들었다고 보여집니다..



여기는 이순신 장군의 영상 관람을 할 수 있는

영상 체험관인데요.

3D, 4D로 관람을 할 수 있다고하네요!

한글날이었는데 당시 줄을 어마어마하게 줄을 섰었더라구요.



시간대 별로 상영하는 내용이나 감상할 수 있는 

컨텐츠가 다르다는 것을 참고하시면 좋겠네요.



저는 이 장면을 참 인상깊게 봤는데요.

가까에서 봤을 땐 잘 몰랐는데요.



아마 지금도 잘 보이진 않을 겁니다.

그런데 아이폰에 사진을 저장하고 작은 화면으로 봤을때

이게 모자이크 처럼 보이는게 정말 신기했습니다.



자 이렇게 작게하면 보이시나요?



내용을 상세하게 확대 해보면

포스트 잇에 많은 내용들이 적혀있습니다.

다 읽진 못하겠지만



시간이 될때 내용을 제대로 읽어보면 재미있는 시간이 될 것 같네요.

이 것 말고도 볼게 정말 많았습니다.



이순신 영상체험관 바로 옆에는 

외국인 한글 체험 한글로 이름쓰기

이벤트 공간이 있었는데요.



안그래도 여긴 세종이 서열이 더 쎄다보니

충무공 이야기에서 약간 멀어지자마자 

이런 한글을 쓰는 이벤트를 하는 장소를 보게 되는데요.

외국인들이 이런 곳에 오면 정말 뜻 깊은 시간이 될 것 같네요.

이런 이벤트도 다양하게 준비해 놓은 충무공 이순신 이야기

시간이 되신다면 꼭 오셔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광화문 주인장 세종의 이야기는 아래 글을 클릭하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2018/10/09 - [플래너TP이야기/플래너TP의 여행기] - 한글날 특집! - 광화문 광장에 세종대왕과 이순신의 아지트가 있다는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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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 특집! - 광화문 광장에 세종대왕과 이순신의 아지트가 있다는데?

Posted by 플래너TP PlannerTP
2018.10.09 20:57 플래너TP이야기/플래너TP의 여행기

세종대왕과 광화문의 관계

  광화문의 원래 이름은 정문(正門) 이었는데 세종 임금 때 광화문으로 고쳤다. 광(光)은 빛나고 밝고 크고 바르다는 뜻으로 "이 문으로 나가는 명령과 교서가 모두 바르고 크고 빛나서 만백성을 교화한다" 라는 뜻을 지닌다. 즉, 광화문에는 '나라의 덕치(德治)와 문화가 천하 만방에 널리 미치게 하는 문' 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오늘 한글날이다보니 왠지 가야할 곳이 정해져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로 광화문역인데요. 이 곳에 가면 바로 세종대왕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광화문역 지하철에서 올라가다보면 오늘의 서울 날씨를 볼 수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흐린날씨였지만 사람들은 많이 나와있었습니다.



한글날인 오늘 정말 수많은 인파속에서 세종대왕을 기리는 행사를 광화문에서 진행하고 있었는데요.



저 뒤로 보면 충무공 이순신이 버티고 서있습니다.

사실 이순신 동상이 서 있는 곳에는 사람이 많이 없었습니다.

리더는 외로운 법이죠.



세종대왕 동상 앞에는 행사무대가 세트가 되어있었는데요.

오늘 무엇을 하려나 봅니다.



사람들이 조금씩 앉기 시작했는데요.



저분들이 오늘의 무대의 주인공인가봅니다.

저분들을 뒤로하고 오늘 가려고 했던 세종대왕의 아지트로 들어가보려고 하는데요.



세종대왕이 임금이 되신지 벌써 600년이 됐다고하네요.



풋처핸섭! (Put your hands up!)

도포자락 들어 올릴지 아는 간지 세종



세종의 나라사랑, 백성사랑의 정신으로 지금껏 대한민국이

한글의 힘으로 여기까지 왔다고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큰 업적을 이루신 분이죠.



광화문에 와보면 항상 덩그러니 놓여있던

측우기,



그리고 혼천의

오늘따라 유난히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며

외롭지 않은 한때를 보내는군요.



이날 날씨가 흐렸지만

어둠속에서도 당당히 우릴 지켜줄 것 같다는 세종대왕

그렇다면 이럴때 들어갈수 있다는

딱히 그렇지는 않지만

이럴때 들어가야지 재미있다는

바로 세종대왕의 아지트는 어디일까요?



그의 동상 뒤쪽으로 가봅니다.



눈을 아래로 내리다보면 그의 연보가 나옵니다.

정확히 1418년 8월, 그는 조선의 임금으로 즉위했고

이번해가 세종이 왕이 된자 600년이 딱 되는 해입니다.



1450년 (세종 32년, 54세) 2월 17일 (양력 4월 8일) 돌아가십니다.



운영시간은 월요일은 휴관이고 오전 10시부터 오후10시까지입니다.

관람료는 무료이니 서울에 오면 꼭 오셔야할 곳이란 것을

알아두셨으면 좋겠네요.

한글날이 아니더라도 한강과 더불어 꼭 가야할 명소이죠.


문이 양쪽으로 두개가 있는데요.

충무공이야기, 그리고



세종이야기라는 문이 있습니다. 



세종 이야기로 들어가면



그의 업적을 기리는 다양한 발명품들이 보입니다.



입장할때부터 디지털 스크린으로 

세종의 다양한 이야기를 그림으로 보여주는데 시선을 끌어당깁니다.



세종의 역사가 곧 한국의 역사라고

이런 문헌속에서 독도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세종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과 마찬가지이죠.

독도는 이러한 점에서 우리나라의 영토인데

분쟁은 그만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조금 들어가자마자 아이들이 세종대왕과 기념하여 사진을 찍는군요.

저도 이왕 온김에 사진 한방찍었습니다!

연예인 세종



양팔을 가지런히 모은 세종을 보면 쑥스러운 인상인 것 같기도 하네요.



광화문역에 위치한 세종대왕 박물관

위치는 



이곳을 참조하세요!



우리의 세종대왕은 서울 토박이

지금의 경복궁 서문인 영추문 근처에서 태종 이방원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SBS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 유아인이 바로 이방원 역할을 했었죠?



극 중 자신의 스승인 정도전을 철퇴로 내리찍는 연기

어떻게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가하는

잔인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었는데요.

실제 역사에서 이방원하면 '왕자의 난' 이라고 해서

자신의 형제를 해쳐가면서까지 왕위에 오른 역사가 있었기때문에

그런 냉정하고 잔인했던 태종 이방원 뒤를 이은

세종이 이런 대단한 업적을 이뤘다는게

조금은 의아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피가 어디가지 못해

세종의 차남 수양대군이 다시 '왕자의 난' 을 일으키죠.



이곳을 둘러보면 광화문이라는 명칭

언제부터 기록되었는지도 나오는데요.

세종 즉위 7년, 1425년집현전에서 광화문이라고 명명했다고합니다.

'왕의 큰 덕이 온 나라를 비춘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세종대왕 하면, 무슨 사상?

민본사상! 외우세요! 수능은 몰라도 내신 시험은 잘나오니까요.

난이도는 어려운 문제는 아니니 그래도 이게 기본이라는 것만 알고 있으면

적어도 반은 맞춘답니다.


그만큼 세종은 이 민본사상을 기초로 나라를 다스렸는데요.



노인공경, 가난해서 혼기 놓친 사람 결혼지원

이건 지금시대에도 꼭 필요한 정책인 것 같네요.



이 밖에도 부민고소금지법

이 법은 상급자를 고소하지 못하게 만든 법인데요.

예외 사항은 있었지만 자식으로서 부모를 고소할 수 없다는 논리를 적용한 법으로

예로운 법이라고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노비출산휴가제도

세종은 제생원(濟生院) 제도를 보완해 버려진 아이들을 구호하도록 했습니다.

버려진 아이를 기르려는 사람이 있으면 문서에 기재해 뜻대로 기를 수 있게 했구요. 

또 여자 노비들이 출산 중 사망하는 것을 막기 위해 

종전에 7일간 주던 출산휴가를 100일로 늘렸고 

출산 1개월 전부터 산모의 복무를 면제해 주도록 했고

그 남편에게도 한 달간의 산후 휴가를 주도록 했던 제도가 바로

이 노비출산제도인데, 지금 이러한 제도는 일반 직장인들 중에서

시행하고 있는 추세이긴 하지만 

아직은 시행이 되지 않고 있는 곳이 더 많죠.


전세제도 여론조사

육룡이 나르샤라는 드라마를 보다보면 거기서 나오는 고려말

권문세족과 손을 잡고 결국엔 조선을 건국하게 되는 이야기가 나오죠.


고려 말 권력을 장악한 신진 사대부들은 권문세족들의 토지를 몰수하고 

새로운 토지 제도인 과전법을 시행했습니다.

국가의 조세 수입 늘리고 신진 관료의 생활 기반 보장하는 것일 뿐 아니라, 

과도한 수탈을 금지하여 농민들을 보호하려 한 것이었다고 하죠.


이러한 백성을 위한 여러 제도들을 통해

세종은 백성을 위한 민본사상을 기본으로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세종과 관련된 드라마를 시청할 수 있도록 장소를 만들어놨네요.



"비구니가 꼈구나, 내가 세종인가!"



세종하면 최근판으로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 한석규가 연기한 세종이 있는데요.

역사왜곡 문제로 이런 곳에서는 잘 보이지 않더라구요.

세종대왕도 저런 욕을 할 수 있을거라고 보고 했던 센세이션했던 드라마였지만

결국 세종대왕 박물관에 나오는 드라마는 배우 김영철에게 밀린 안타까운 사연이 있네요.



이곳에서는 세종과 충무공에 대한 판화 이야기를 하는 행사장인데요.

전에도 한번 이곳에 왔었는데요. 그 때 당시 겨울이었을 겁니다.

이 장소에 외국인이 한글을 쓴 걸 전시한게 있었는데요.

그 글자를 보고 마음이 찡했던 것이

팔을 잃은 장애인이었는데

'마음'이란 글자를 자신의 몸을 이용하여 그렸던 내용을

전시했었던 것이 아직도 기억이 나네요.

'마음' 이라는 글자가 피도 다르고 생긴것도 다르지만

사람이라면 전달이 되었을 그 마음이란 것

다시 이 장소에서 보게 될거라고 믿었지만

언젠가는 다시 그러한 가슴 찡한 작품을 다시 만나게 되리라 믿습니다.



한글을 응요한 인테리어도 멋진 게 많습니다.

이런 세계적인 글자를 감상하는데 무료라는 것은 정말 좋은 일입니다.



이 곳은 훈민정음 인테리어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데요.

나랏말이 중국에 도달하여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아는데

중국의 왕에게 이 말을 전달하여 우린 다른 민족이란 것을 인정하라는

의사를 전달하려다가 신하들이 많은 반대를 했지만

결국 자주국이란 것을 강하게 이야기했었던 세종의 기세를 기억하게 되는

이 훈민정음 인테리어는 그때의 기세를 떠올리면서 감동을 하게 됩니다.

중학교때 국어 선생님이 훈민정음 내용을 외우라고 했던 기억도 나네요.



조명발, 얼굴발, 사진발 이런게 있겠지만

오늘만은 한글발로 사진을 찍어봤습니다.



세종의 어록을 살펴보면 지금에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정말 맞닿아있다고 해도 무방할정도로 비슷하다고 생각이 됩니다.



높은 학구열, 빠르고도 영민한 판단력,

게다가 절대음감까지, 세종이 절대음감이 있다는 것은

결국 예능에 대한 소질도 있다는 뜻이 되는데요.

독서때문에 눈이 나뻐진건지 

아니면 눈을 치료할 시기를 놓친게 독서때문인지

정확하게 기록해놔야 할텐데 말이죠.

역시 신하의 도리답군요.



이 곳에는 한글도서관이라고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있긴한데

소음에는 노출이 되어있으니 어느정도 가만하고 이용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여기엔 세종에 대한 기록을 전자기기를 통해 볼 수도 있으니

이런 부분도 잘 이용해 보시길 바랍니다.



이제 우리 한글이 어떻게 태어났는지 그 내용을 알아볼 차례인데요.



"나의 백성은 손이 있어도 글을 쓰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글을 읽지 못한다.

어리석은 백성들을 위해 조선엔 우리의 말에 맞는 새로운 문자가 필요하다."


이러한 세종의 결심이 결국엔 한글을 창조하게 된 것의 시작이었는데요.



유교적 세계관을 가진 사대부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밤낮없이 연구에 매진하여 한글 창제를 진행합니다.



어린 친구들이 많아서 인형을 보고 관심을 보이는 것 같네요.



아주 리얼하게 잘 만들어놨네요.



훈민정음은 완성했는데

최만리의 상소가 이어집니다.



중국의 눈치를 보고 있는 조선의 정세를 걱정한

최만리 등 7인이 성리학에 맞지 않다는 등의 이유로 

훈민정음 배포 반대 상소를 올립니다.




신하의 눈치를 조금 반영하듯 세종은 바로 훈민정음을 반포하진 않았지만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엔딩에서 보면

아이들이 한글을 그리는 놀이를 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요.

그런 것 처럼 신하들에게 용비어천가라는 악장, 서사시를 짓게 하였는데요.

권제와 정인지, 안지 등이 세종의 명을 받아 지었고

세종의 천애를 받던 신하인 성삼문과 박팽년, 이개 등이 주석을 달았죠.

(이 둘은 후세에 세종의 아들인 수양대군에게 죽었습니다.)

관련글은 아래 포스팅을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2018/10/01 - [플래너TP이야기/플래너TP의 여행기] - 노량진을 따라 사육신공원으로 - '내가 왕이 될 상인가'

정인지가 서문을 쓰고 최항이 발문을 하였습니다.

1445년(세종 27년)에 지어 1447년(세종 29년)에 간행하였습니다.

세종의 절대음감 능력에 영향을 받은건지 훈민정음을 반포하기 위해

유행가처럼 퍼트렸다는 말이 되는데요.

1446년 훈민정음은 그렇게 유행가처럼 백성들에게 세상에 태어났음을 알립니다.



세종의 업적을 전자문서로 볼 수 있게끔

중간 중간에 배치를 잘 해놨으며



왕위에 올라서 기념사진을 찍어놓을 수 있게 의전틀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것만 보면 무슨 교과서에 나올듯한 화면인 것 같죠?



한글을 디지털화면으로 옮겨놓은

깔끔한 맛에 벽화입니다.



이제 한글의 창제원리를 알아보는

중요한 문헌에 대해서 볼 수 있는 곳으로 가봅니다.



훈민정음 언해본은 통해 한문을 모르더라도 

한문을 먼저 쓰고 그 뜻을 한글로 해석해놓은 방식으로 써져있어서

훈민정음을 이해하기 쉽도록 써 놓은 책입니다.



동국정운우리나라 한자음을 최초로 우리의 글자로 표기한 책입니다.



월인천강지곡용비어천가와 함께 

훈민정음으로 표기된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가사입니다.



세종이 둘째아들인 수양대군에게 시켜서 만든 책이네요.

수양대군이 석가모니에 대한 책을 집필했다고 하니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하여 세조가 됐을 때

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아겠다는 예측이 되죠?



국보인 훈민정음 해례본이네요.

  훈민정음은 크게 예의()와 해례()로 나누어져 있다. 예의는 세종이 직접 지은 글로 한글을 만든 이유와 한글의 사용법을 간략하게 설명하였다. 해례는 정인지()와 최항(), 박팽년(), 신숙주(), 성삼문(), 강희안(), 이개(), 이선로() 등 세종을 보필하여 한글을 만들었던 집현전 학사들이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만든 원리와 용례를 상세하게 설명한 글이다. 우리가 국어 시간에 배웠던 "나라 말이 중국과 달라..."로 시작되는 글은 예의의 첫머리에 있는 서문을 우리말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흔히 『훈민정음 언해본』이라 부른다. 서문을 포함한 예의 부분은 무척 간략해 『세종실록()』과 『월인석보()』 등에 실려 전해져 왔지만, 한글 창제 원리와 용법이 소상하게 밝혀져 있는 해례는 세상에 전혀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런데 예의와 해례가 모두 실려 있는 훈민정음 정본이 1940년에 발견되었다. 그것이 이 『훈민정음 해례본』이다. 인류 역사상 문자가 그 만든 목적과 유래, 사용법, 그리고 창제의 원리와 세계관을 명확히 밝혀 만들어진 예는 없었다. 훈민정음이 유일무이하다. 따라서 훈민정음은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인류의 역사와 문화의 전개에서도 엄청난 성과이자 족적이라 할 수 있다. 이런 한글의 위상과 의미를 여실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 훈민정음해례본이다

간송미술문화재단 에서 가져온 글을 간추렸습니다.


이 책에서 한글의 창제 원리와 용법이 소상하게 밝혀져 있는 것, 그리고 세계관까지 

세상에 전파 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의 민족성이 증명해 준 사실이기도 합니다.

위대한 민족성을 입증해주는 자료인 것이죠.



훈민정음을 위한 초석을 만들어준 용비어천가





세계에서  가장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글자 한글,

이 한글의 원리에 대해서 설명을 해놓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한글을 국문으로 사용하고 있는 

찌아찌아족 이야기도 볼 수 있었습니다.



언어는 찌아찌아족의 음을 기초로

한글을 쓰는 것이죠.



과학과 예술분야에도 힘썼던 세종

그가 인재를 등용하는 능력은 가히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과학계에 장영실, 예술계에 박연

나라를 위한 인재 등용의 귀재였던 세종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영화 신기전이라고 아시나요?

그 신기전이 바로 이 신기전이라니

몰랐던 사실을 알게되었네요.

제대로 영화를 보진 않았지만 당시 흥행했었던 영화였던걸로 기억해요.

다시 처음부터 제대로 봐야겠어요.




과학과 예술분야에서 크나큰 발전을 이룬 세종의

여러 자료들을 여기 광화문 세종대왕 박물관에서 구경할 수가있는데

지금까지 찍은 사진만 보더라도 구경할게 정말 많다는 것을

알수가 있을 것입니다.



의전에 올라가 기념사진도 찍으실 수 있으니

가족나들이든지 연인나들이든지 한번은 꼭 오셔서

기념해보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네요.



계속 내용이 변하는 디지털 스크린은 

나갈때도 이 곳이 새로운 곳 처럼 보이게 만들어줍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 분들의 공연을 볼 수가 있었는데요!





이순신의 뒷모습을 보면서 저는 천천히 광화문 광장의 끝으로 향해갑니다.



그 끝엔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세월호의 이야기가 있는데요.

언제 끝나게 될련지 정말 마음이 짠하네요.

부모의 심정으로 이 싸움이 평생가는 것도

말이 안되는 것 같기도 하면서

끝날때까지 하지 않는다면 다시 이런일이 발생했을때

그때도 똑같이 끝나면 안될 것 같아서

사람이라면 측은지심이 생겨 그만 쉬라고 말하고 싶어도

말 할 수 없는 저 상황에 이 문제를 어떻게든 

누군가는 매듭지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렇게 광화문의 끝에는 세월호가 우리의 마음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생각을 심어주게 합니다.


그런데 충무공 이순신은 어디있냐구요?



다음화에 공개합니다!


2018/10/10 - [플래너TP이야기/플래너TP의 여행기] - 한글날 특집! - 광화문 광장 2편, 충무공 이순신 이야기



아쉬움을 뒤로하고

한글날 광화문 광장에 있었던 공연영상을

짧게 올립니다!

감상하시죠!



감사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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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진을 따라 사육신공원으로 - '내가 왕이 될 상인가'

Posted by 플래너TP PlannerTP
2018.10.01 06:00 플래너TP이야기/플래너TP의 여행기




  오늘은 길을 따라 가본 곳이 바로 사육신 공원입니다. '사육신공원'은 역사에 있어서 무언가 좋은건지 나쁜건지 평가가 애매할 수 밖에 없는 이야기가 들어가야하는데요. 바로 계유정난과 관계되어 수양대군이 집권을 할 때 발생한 사건이기 때문에 6명의 관료들을 반역의 행위로 처벌한 사건인데요. 역모에 성공한 수양대군 입장에서는 반역이며 그 반대로 신하의 입장에서는 충신의 행동이었다고 보이는데요. 결론적으론 후세에는 그들의 충의가 훌륭하다는 평가가 이루어집니다. 역사에 관련한 이야기는 그렇게 알려고 하진 않았지만 역시나 궁금해서 가본 곳이 왜 지어진걸까 궁금해지는 순간 찾아보면 알게되는 역사의 배움, 어렸을 땐 도대체 역사를 왜 배우는지 모르니까 배워봤자 말짱 점수가 나오질 않는데요. 이렇게 호기심을 생기게 만드는 환경속에서 지내다보니 이렇게 저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이젠 어울리게 된 사육신에 대해서 공부하게 됐네요.



사실 반려견 하늘이와 주말마다 산책을 가려하다보니 

이번에는 집근처로 가려는 곳이 어디가 좋을까 찾다보니 

가다가 가다가 도착한 곳이 바로 이 사육신 공원이라는 곳이었습니다.


함석헌 선생의 <씨알의 소리> 중에서

수양대군이 불러온 피바람 속에서도

의<義>라는 것이 어떤건지 알게되었다는 이야기인데요.

사육신의 희생속에서 의라는 것이 어떤건지 알았겠냐는

그들의 희생을 칭송하는 내용인데요.

사육신하면 생육신이란게 있다는 것도 문득 떠오르실 겁니다.

역사를 잘 아시는 분들은 그런것에 대해서 모르나 싶은데

역사에 관심없거나 잘 모르는 분들은 이런 나들이 경험을 통해

호기심이 일어나 찾아보는 경우도 있을 거에요.

그러면서 역사를 배우는 것도 뭔가 뜻이 깊다는 생각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단 조금이나마 우리의 역사를 알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것에서 이런 공원을 소개하는 것도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무엇이든 역사는 쉽게 접근하고 바라보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쉽게 말해 사육신은 죽은 여섯명의 신하, 생육신은 살아남은 여섯명의 신하인데요.

사육신 : 성삼문(), 박팽년(), 이개(李), 

하위지(), 유성원(柳), 유응부()

생육신 :  이맹전(), 조여(旅), 원호(), 김시습(), 

성담수(), 남효온(또는 권절()

사육신은 왕위를 빼앗긴 단종을 위한 도모를 하다가 알려져 죽게 되었고

생육신은 단종이 왕위를 빼앗기자 관직을 내려놓고 바깥에서 세조(수양대군)의 

행동에 대한 비판을 하는 그런 일을 했다고 합니다.




영화 관상의 단종(세종대왕의 손자, 세종의 아들인 문종의 외아들)


문종은 왕위에 즉위하자마자 건강의 악화로 2년 3개월만에 39세 세상을 떠나면서

외아들이었던 단종이 12세에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역모를 꾀하여 왕위를 차지한 수양대군(세조)


영화 관상에서 수양대군 역할을 맏은 이정재


죽었기 때문에 그들의 업적을 높게 사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생육신은 왜 높게 평가가 됐을까라는 생각이 문뜩 들 수 있습니다.

그들만 관직을 그만뒀을 것인가라는 생각에

관직을 그만두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기 때문이죠.

관직에 있게 되면 평생 그들의 미래가 보장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부당하게 정권이 바뀐 일로 인해

수양대군 밑에서 신하의 노릇을 하지 못한다는 결단이

그 당시에는 쉽지는 않았을 것이었고

수양대군이 죽고나서 후세에 사육신이 재평가가 되면서

생육신의 행동들이 당위성을 찾으면서 

사육신 뒤에는 생육신이 있다는 것을 저는 무의식적으로나마

기억은 하고 있었습니다만 이번에 더욱 뚜렷하게 공부하게 되었네요.




이 사진은 무엇이냐구요? 바로 노량진 컵밥거리입니다.

노량진역 부근인데요.

이 곳 근처에 바로 사육신 공원으로 도달 할 수 있습니다.

노량진하면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공무원에 합격하기 위해서

또는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서 공부를 하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죠.

그런 성격을 닮은 곳이 바로 이 '사육신 공원'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육신 공원으로 들어가기전 첫 느낌은

사육신은 역사적 인물을 뜻하는 것이고

공원은 모든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곳인데

사육신 뒤에 공원이 붙으니

여러 사람들이 이용할 수는 있는데 역사적 의미가 있는 곳이라는

조금은 아이러니 한 부분이 생겼습니다.

역사를 보존하기 위한 역사 박물관이 떠오른다는 기존의 성격과는 다르게

뭔가 모두에게 열려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공원을 뒤에 붙이니

쉬운 느낌은 아니었습니다만 한번 올라가보기로 했죠.

개를 데려가도 되나 하는 생각도 들게 되었죠.




위치를 보면 강남에 위치한 좋은 환경에 있습니다. 

이런 곳에서 우리나라의 공무원들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답니다.

영화 관상에 빗대어 말해보자면

다들 그렇게 꾸미고 다니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공부하게 생기신 분들도 있지만

그곳이 배고픈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해 밥을 저렴한 가격에

파는 곳이 명소로 형성이 되버렸는데요.

뭔가 되게 웃픈 현실이기도 합니다.


어떤 곳은 지나가다가 밥이 너무나 많은데도 불구하고

안팔리는 데를 보니 조금은 씁쓸하기도 하더라구요.

사람은 많다보니까 박리다매를 통한 이익을 실현해야하는

상인들의 모습도 왠지 고민스럽게 보입니다.


그렇지만 이분들 덕분에 많은 고생하는 학생들의 배를 

배부르게 해주는 역할은 정말 크다고 봅니다.

노량진역 부근에 모습은 수산시장도 유명하지만

이 컵밥거리를 통해 순수한 학생들의 모습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정말 많은 인파에 대부분의 인상착의가 학생들이다는 모습이 보였는데요.

노량진의 지역적 특색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 컵밥거리를 지나쳐 사육신 공원에 도달하게 되는데요.



사육신공원으로 들어가는 길에 정조대왕 능행차 행사를 다음주 토요일날 진행한다는

피켓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정조의 아버지는 사도세자라는 것을 아실텐데요.

사도세자는 시대의 천재였습니다.

이미 자신이 모든 것을 아는 운명에 처했다고 봐야할까요.

왕의 운명을 거스를 수 밖에 없었던 자신만의 운명은

그로 하여금 자신의 자식에게 세상의 태평성대를 물려줄 만한

그러한 계기를 주게 됩니다.

조선시대 왕중에서는 세종과 더불어 최고의 업적을 기렸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태평성대의 시대를 누렸던 정조,

그러나 세상은 정조를 잘 모릅니다.

그 기준은 전데요. 저는 국사를 잘 모르기때문이죠.

그래서 정조라는 사람의 표현을 어린시절 잘 배우지 못했다는 것을

그렇게 강조가 된 왕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10월에는 장승배기역에서는 매년 사도세자를 기리는 행사를 한다고 합니다.

서울은 조선시대와 가장 밀접한 도시이기때문에

이런 왕과 관련된 행사를 많이 하고 있네요.



사육신 공원으로 올라가는 길입니다.



사육신 공원에는 우수조망명소가 있다고 합니다.

한강과 밀접하게 위치해 있으니 기대가 됩니다.



사육신이 누구인지 기록해 놓은 팻말입니다.



어떤 곳은 한문을 거꾸로 읽어야하는데가 있는데

여긴 왼쪽에서 바로 읽으면 되는거더군요.

불이문, 불교에서 비롯한 말로써

절로 들어가는 3문(三門) 중 절의 본전에 이르는 마지막 문이라는 뜻을 가진 말인데요.

다른 말로는 해탈문이라고도 합니다.

갑자기 불교용어가 나와서 햇갈리기 시작하네요.

그러나 여기서 불이문은 다른 의미를 뜻한다고 하네요.



사육신의 묘가 여기에 있을지는 조금은 예상했지만

누구나 모두 볼 수 있게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관람하게 해두었다는 것이 조금은 의아했습니다.

그러나 이 곳이 우리나라의 미래를 이끄는 학생들이 모여드는 그런 곳이기에

옳은 것이 무엇이냐는 것에 대한 철학을

가까운 곳에서 찾을 수 있게 도와주는 의미를 준다라고 생각이 되었습니다.



중간에 보면 크게 한문으로 성삼문이란 글자가 보이시죠.

세종대왕에게도 인정받은 관료인데도 불구하고

세조에게 운명을 달리 하였죠.

육각면인 것으로 보아하니

사육신의 이름들이 가운데 새겨져있고

그들의 기록이 상하로 새겨져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육신묘를 소개한 기록판입니다.

다음은 사육신묘로 들어가는 불이문 안을 영상으로 촬영했습니다.



신도비각이란 것을 보실 수 있을텐데요. 비각이란 영상에서 보듯이  

비석 주위에 사각형으로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얹고, 안을 들여다 볼 수 있게 만든 모양을 뜻합니다.

처음엔 보고 신기하게 여겨지기도 했는데요.

이러한 비각의 형태를 가지고 있는 곳이 여러군데 있더라구요.

임금이 귀한 신하를 기리는 동상과도 같은 개념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조금은 의하했던 점이 바로 7개의 비석입니다.

사육신은 6명으로 알고있는데 왜 7개의 비석이 있는건지 말이죠.

알아보니 묘지는 전부 7개. 그 중 넷이 진짜 묘이고, 셋은 빈묘지라고 합니다.

박팽년, 하위지, 이개, 성삼문, 유성원, 유응부 이렇게 여섯 분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유응부 대신 김문기를 넣어야 한다는 김녕 김씨의 주장으로 한 때 

기계 유씨와 김녕 김씨 간에 분쟁이 있어 

누굴 넣고 누굴 뺄 수 없어 한 분을 더 모시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육신 역사관이라고는 하지만 

학생들이 와서 조용히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있습니다.

사육신 역사관안으로 들어가진 못했지만

검색해보면 멋진 광경을 볼 수 있었더군요.

정말 안타깝네요.

다음에 갈 기회가 있으면 꼭 들어가봐야겠습니다.



저녁쯤에 가다보니 붉노랗게 물들어 가을의 정취를 심껏 취하게 만들어주는데요.



공원에서 보이는 고층 빌딩은 한껏 이 도시에 있는 사육신공원을

멋진 곳으로 승화시켜줍니다.



저때가 오후 다섯시쯤이니 곧 해가 질것 같네요.



공원은 항상 하늘이와 같이 다닌답니다. 덕분에 저도 많이 건강해졌습니다.



사람이 없는 것 같지만서도 젊은 친구들이 간간이 보입니다.



이 팻말을 보면 불이문이 왜 불이문인지 의문을 해소하게 됩니다.

두 임금을 섬기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하네요.



여유롭게 사육신 공원에 올라서 경치를 감상하면서

휴식하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드시지 않나요?

처음 오는 곳이지만 정말 제가 사는 동네 근처에서

이렇게 좋은 곳이 많다니 정말 흐뭇합니다.




아래 영상은 우수조망명소라는 이유를

알게 해줄 영상입니다.


감상하시죠 :)




너무나 멋진 절경에 감탄했습니다.

이건 꼭 찍어야해라는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이제 이 아름다운 꽃까지 찍고나서 집에돌아가게 되네요.

돌아가는 길에 하늘이와 함께한 모습을 감상하시죠.



항상 하는 거지만 수신호를 잘 알아듣습니다.

그걸로 하늘이의 상태를 종종 체크하곤 하죠.



의식의 흐름대로 가다보니 어느새 사육신공원의 반대쪽까지 와버리고 말았네요.

지도를 켜보니 노량진 컵밥거리와는 너무 먼거리에 도달하고 말았습니다.



그곳에서는 벽화가 그려진지 오래된 모습을 볼수가 있었는데요.

나름대로 괜찮은 풍경입니다.



역사공원길이라고 해서 사육신공원 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공원들의 지도가 있습니다.

가신다고하면 꼭 참고하셔서 가시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나가는 길에 못본 것들을 다시금 한번 보려고 하는데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벽화감상도 좋네요.




역시나 노량진역은 컵밥의 거리입니다.

학생들의 배고품을 달래주는 컵밥거리

연인이나 가족들과 함께 이 공원을 거닐며

집에 돌아올때쯤 배가 고프면

이 컵밥거리에서 줄을 서면서 밥을 먹는 것이 코스가 될 것 같네요.

저는 하늘이와 있어서 집에 빨리 돌아가서

들어가자마자 뻗었네요.


컵밥으로 시작해서

컵밥으로 마무리 하는

이 동네 노량진역에서는


사육신들의 보살핌 하에 많은 학생들이 대한민국에서

훌륭한 일꾼으로 자라나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앞설 것이라는

믿음이 확실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내용을 편집한 유튜브 영상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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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엑스 마블 컬렉션 엔터 6 방문기 (COEX MARVEL COLEECTION ENTER-6)

Posted by 플래너TP PlannerTP
2018.09.26 03:23 플래너TP이야기/플래너TP의 여행기




  오늘은 삼성동 코엑스에 있는 마블 컬렉션 엔터 6 방문기에 대해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어디에 있는지 부터 아는게 중요할텐데 

마블 컬렉션 엔터 6는 전세계에 다섯군데에 있는 것으로 확인되더군요. 

파주, 시흥, 부산, 서울 성동구 왕십리로(행당동), 강남구 삼성동인데요. 

제가 갔던 곳은 삼성동 COEX 몰 지하1층에 있는 메가박스 부근에 있는 곳이 었습니다. 

제가 사는 곳이 7호선 라인이라서 내리는 곳이 청담동이었는데요.

그곳에서 SM 엔터테인먼트를 발견했네요.

어렸을 때 얼마나 관심이 있었던 곳이었지만 

이제서야 발견하다니 저도 참 대단하네요.

처음 가시는 분이라면 7호선에 청담역에서 내려서

SM 엔터테인먼트를 경유해서 코엑스로 가면 재밌겠네요.



코엑스 바로 옆에는 인터콘티넨탈 호텔이 보입니다.

뭔가 있어보이죠? 

들어가보질 못해서 있어보여서 찍었을 뿐입니다.

잘 사는 외국인이나 이런데를 이용하겠죠.



뜻밖에 이런 곳에 절이 있다는 것에

뭔가 세속적이다라는 느낌에 분위기가 싸~했습니다.

긍정적인 기분은 아니었습니다.

이날 추석이었는데 사람들이 많이 찾아왔습니다.

이 안에 납골당이 있는 거라면 이해는 가지만

지리적 위치상 좋은 위치인걸 떠나서 대규모 상업단지 부근에 있는 절을 보고

이상하다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불교가 세속과 멀리한다는 기본적인 그들의 규칙을 이해하기엔

이 봉은사라는 곳은 왠지 뭔가 예외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원래의 목적인 마블 컬렉션을 보러 가야죠!



코엑스 입구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왠지 사람이 없네요?

뭐, 추석이여서 그런가 이해하려고해도

너무 없길래 말이죠.

내가 원하는 마블은 어디에 있는거지?



코엑스가 너무 큰데 이렇게 큰 공간을 평일엔 어떻게 이용할까요?

여기에 마블 컬렉션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아무 생각없이

검색하고 바로 달려왔기때문에 나머지는 본능에 따라 찾아서 움직였죠.

그래서 다른 궁금증은 그대로 두고 기안 84가 자주 사용하는 행동인

의식의 흐름대로 움직이기로 했습니다.

이게 좋은 이유는 시간을 절약하면서 많은 일에 대한 

감정을 기록 할 수 있다는 게 장점입니다.

이미 배운 것은 심심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글을 작성하게 되면 그것은 일이 되는데 

평범하게 계산하면 아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계산하지 않는 의식의 흐름대로 기록하다보면 

처음 이 기록에 미치는 감정이 반복되지 않는

새로운 감정들이기에 덜 지치고 기록이 되는 양이 많아지면서 

일이 지속될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죠.

이런 점을 알았다면 앞으로 공부할 때 많이 사용해 보시길 바랍니다.

물론 개인의 성량에 따라 복습을 자주해야할 수 도 있지만

이 방법의 가장 큰 장점은 에피소드로 인한

기억의 기록이 꽤나 오래 간다는 것에 있습니다.

다시는 잊기 힘든 추억처럼 공부를 하는거니까요.



역시 의식의 흐름대로 언젠가 갔던 것 같은 지하1층으로 들어갑니다.

솔직히 지상 1층에는 사람이 없어서 볼게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코엑스는 주말에도 평일에도 항상 문전성시를 이루는 곳인데

지하철을 통해서 들어가봤기 때문에

지상에는 어떤 일이 있었던건지 몰랐죠.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면 가장 많이 나오는 곳이

이 별마당도서관인데요. 그날 보진 못했습니다만

다음 기회에 한번더 방문 해보죠.

이렇게 의식의 흐름대로 가다보면 다음 목적지가 발생이 되고

한번 미리본 것보다 다음에 가서 볼때 

훨씬 더 학습의 효과가 크게 됩니다.


  우리는 지속적인 학습을 통해서 다양하고 수많은 정보 중에서 적당한 정보를 타이밍에 맞게 골라서 쓰는 행위로 어차피 생길 스트레스를 최대한 줄이는 것으로 삶을 똑똑하게 살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방법으로 살게되면 학교에서 시험점수가 엉망이어도 회사에서 업무평가가 엉망이어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습니다. 게다가 때에 맞춰서 적당하게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만 해도 남들은 항상 백점을 맞으려고 온갖 노력을 해도 안되는데 가끔 노력하는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상대적 만족감이 높아집니다.

  어차피 그 회사에 목숨걸 것 아니라면 적당히 다니는 것도 방법이니까요. 제가 다니는 회사를 그렇게 꼭 다닌다는 것은 아니지만 실상 승진하는 사람들을 대부분 보면 회사일을 잘하는 사람보다는 회사에서 일하는 것이 스트레스가 아닌 사람이 승진을 빨리 하게 됩니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록 회사사람을 상대하는 일이 더욱 수월해지기 때문이죠. 승진은 모두 사회에서 회사원들과의 관계로 인해 이루어지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렇다고 이 말을 전적으로 믿진 마십시오. 기본은 원래 실력이니까요. 그게 바탕이 되고 인간관계가 되야할지 아니면 반대로 인간관계가 좋은 상태에서 실력을 키워야할지는 뻔히 어떤 말이 좋은지는 다들 스스로 알고 계실테니까요~!

어쩌다 보니 강의를 했네요.



찍고나서 나중에 알게 됐는데

코엑스에 VR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더군요.



경비직원의 안내를 듣고 메가박스로 향합니다.

의식의 흐름대로 가다보니까

굳이 물어보지 않았는데도 경비직원이 친절하게 말을 걸어주면서

피규어를 볼 수 있는 곳이 어디인지 알려줬는데요.

장난감 피규어를 파는 곳은 지도상 위치에 아래쪽에 쭈욱 가야했으며

마블 피규어를 보려면 메가박스 안으로 들어가면 있다고 하더군요.

왠지 신기하게도 내게 필요한 사람이 다가오는 것이

이 날 왠지 운수가 좋은 것만 같았습니다.



메가박스로 들어가면 왼쪽에는 예매처가 있고

오른쪽에 2층을 보면 마블 컬렉션 엔터 6 가 보이는데요.

그걸 보고 2층으로 올라가야하나? 라는 생각을 잠시했습니다.

이 건물은 무슨 연막을 그렇게 치는건지



저 연막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보니 

그저 의식의 흐름대로 예매처의 반대쪽인 오른쪽으로 가봤더니



마블의 미니 피규어들이 나타났습니다.

드디어 발견했구나 싶었는데 원래 밖에 있는건가?

싶어서 주위를 뺑 둘러봤더니 결국엔 찾게되더군요.



정말 아름다운 엘리자베스 올슨

성격도 털털하고 연기도 잘하고

이런 분을 만나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싶네요.

어벤저스 원작에서는 온 세상을 뒤엎어버릴만한

힘을 가진 최강 캐릭터인데요.

캡틴 마블과 맞먹는 힘을 가지고 있는데 말이죠.

영화에서는 힘이 하향되어서 다른 캐릭터들과 발란스를 맞추죠.



윈터솔져에서 마지막에 브록 럼로우가 죽은 줄로만 알았다가

시빌워에서 다시 나타나면서 입은 슈트이죠.

큰 활약을 하지 못하고 죽지만

간지는 꽤 괜찮은 캐릭터입니다.



간지 중에 갑간지인 바로 윈터솔져

영화에서 캡틴과 붙을 때 얼마나 멋있던지

이런 닌자무술을 자유자재로 윈터솔져와

시빌 워에서 보여주는데

너무나 대단한 액션을 보면서 감동을 했었죠.



이렇게 주위를 둘러보다가 발견하게 된건




스파이더맨, 블랙팬서, 앤트맨,,, 그리고



마블 컬렉션 엔터 6의 대문입니다.

아이언맨이 우릴 반겨주네요.

아이언맨 3때 마크 42는 아니라는 것을 알수 있죠.

어벤저스, 울트론 시절에 마크 45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인피니티 워때의 나노슈트와 흡사해 보여서 햇갈리기도 했네요.



사람의 근육이 빨갛다면 저렇게 생겼을까요?

가장 맨근육을 표현하는 색을 디자인 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뭔가 위협적이면서 예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언맨 3의 마크42는 개인적으론 황금색이 많이 들어가서

예쁘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조금은 촌스럽다고 생각했는데

아이언맨의 상징색인 빨간색이 많이 가미되어야

좀 더 위협적이면서 공격적인 모습에

더 멋진 모습을 상상 할 수 있습니다. 


뒤에서 사진을 찍으면 갑자기 블라스터 빔을 발사할까봐

깜짝놀라기도 하는데요.(농담)

그만큼 실물크기라서 뭔가 환상의 세계에 와있다는 느낌을 줍니다.

아이언맨 피규어는 마블 컬렉션 엔터-6의 입구에

많은 사람들을 반겨주면서 마블 컬렉션 관람의 시작을 알립니다.



아이언맨을 제끼자마자

이런, 충동구매가 저절로 샘솟게 만드는 다양한 미니 피규어들



타노스가 왠지 귀엽네요.

영화에서도 왠지 귀여워보이긴 했지만

타노스 아래 수염기른 스티브 로저스, 윈터솔져, 헐크, 

그리고 노란머리는 인피니티워 로마노프

윈터솔져에서 나온 카터요원인줄 햇갈렸네요.



왠지 스파이더맨의 아이언 스파이더맨 슈트가 인피니티워에서 가장 멋져보여서 그런건지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너무나 굴뚝같이 들었는데요.



그루트도 너무 귀엽습니다.

캐릭터 블루투스 스피커들도 있었는데요.

왠지 스파이더맨과 그루트는 매출 인기 각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헐크버스터가 대왕거미인 스파이더맨 보다 더 작네요.



눈이 정말 무섭네요,. 귀여우면서 재밌는 풍경이 보여집니다.



수줍은 스파이더맨의 손모음

어린 친구들이나 좋아하는 친구에게

선물로 준다면 너무나 앙증맞고 귀엽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쿠션이나 인형은 때가 잘 탈 것 같다는 단점이 있지만

관리만 잘 한다면야

그래도 구매를 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컵 속에 들어가 있는 아이언맨, 스파이더맨의 모습을 보고

너무나 앙증맞다는 생각도 했는데요.



왜 여기에 갇혀있는건지 불만이 가득한 스파이더맨의 눈빛



아이언맨 슈트 뒷면에서 왼쪽벽부분엔

마블에서 판매하려고 만들어 놓은 옷들이 있습니다.

마블의 옷들이 그렇게 비싼 편만은 아니라서

부담없이 살 수 있는 가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린 친구들이 입는다는 편견에

차라리 아디다스를 사서 입겠다는 생각이 강해서

일단 구경만 해봤습니다.



미안합니다. 아이언맨씨

도촬해서



마블가방과 마블면티들을 보았는데요.

날 구매해줘! 라고 말하는 것이 들리는 것 같습니다.



토니스타크 인더스트리

토니의 회사티셔츠인가?

나도 이 회사 입사하고 싶네요.

스파이더맨 처럼 토니한테 인정받게 말이죠.

워낙 대기업이다보니 현실에서도 힘든 취업

상상에서도 하기 힘들겠네요.



헐크의 상징인 스매쉬!

때려부수다!라는 뜻이죠.


예상 외로 디자인이 너무 단순해서 밋밋하다는 생각과

싸구려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원단이 그렇게 좋은 것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마블 모자입니다.



인터넷에서 간혹 봤던 마블 필름 아트 프레임이라고 하는데

벽에다가 여러장 걸어놓으면 간지죠.

하나당 가격이 33,000원이나 하니까

자산이 거덜 날 일이 걱정부터 된다면

이곳은 그냥 패스!

캐릭터 전부는 없는 것 같습니다.



아이언맨의 샌드백 방패

참신하네요.



토르의 묠니르가 있었는데요.

처음엔 그냥 모형인 줄 알았더니

알고보니 스피커더군요.

블루투스 스피커!

잘만들어서 그런지

저 스피커를 쓰는 사람은 부럽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음악도 듣고 망치도 휘두루고(?)




캡틴 아메리카의 아이덴티티를 그대로 담아낸 아트 콜라보레이션을 만나라고 이야기하는데

여기서 시계가 가장 탐나더군요.



자, 이제 어벤저스가 총 출동하는 피규어 모음집으로 가봅니다.



모형의 디테일이 진짜 닥터스테레인지를 연기한 베네딕트 컴버배치를 다시 보는 듯 했습니다.



블랙팬서의 진중한 모습



스칼렛 위치, 어벤저스의 최강 여자캐릭터입니다.

인피니티워에서 비전의 마인드 스톤을 깨 부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지요.



찬호형이 거기서 왜나와

찬호박, 박찬호, 우리의 영원한 LA다저스 61번선수

스티븐 로저스가 인피니티워에서부터 수염을 기른 이유로

얼굴의 디테일을 표현하기가 좀 힘들었을 것이란 사실을 이해합니다.



피터 퀼의 바지 주머니 근처에 카세트까지 만든 디테일함 까지



마블의 진정한 수장은 스탠 리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마블의 어떤 영화라도 그가 출연한다는 이유로

명예회장 스탠 리의 피규어도 볼 수 있어서 재미있었습니다.



타노스 뒤에 비전, 뭔가 싸늘하네요.

인피니티 워를 보신분들은 이해하실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스파이더맨이 확성기를 들은 모습은 재미있으면서도

그가 주도하는 마블은 어떤 세계가 될까? 라는 궁금증도 유발했습니다.



아이언맨 슈트로 모든 걸 불살렀던 아이언맨 3



소니의 스파이더맨이 왜 이기있어



아이언맨 1 때 토니의 슈트를 기억하신다면

이 모습은 잊지 못하실거에요.



어벤저스에서 처음 나왔던

브루스 배너 박사 역할을 맡은 마크 러팔로 피규어입니다.



스칼렛 요한슨에게 무엇을 입힌거죠?

처음 보는 외투네요.



스칼렛 위치의 모습은 디테일은 떨어지지만 스칼렛 위치인건지는 알겠다는

왼쪽에는 윈터솔져때 나타샤 로마노프의 머리스타일을 본떠 만든 피규어네요.

원래는 조금 더 단발인 듯 했지만



마블 페이지 3의 대서사시인

인피니티 건틀렛까지

정말 없는게 없는 마블 컬렉션 엔터 6 입니다.



게임하는 그루트,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2의 엔딩장면과

어벤저스 인피니티워 초반에 나오는 그루투의 게임기죠.



간지가 물씬 풍기는 아이언맨 토니스타크의 

멀쩡한 진짜 슈트

원래는 나팔바지를 잘 입는데요.

통이 7정도는 되어 보입니다.



이 아이언맨 슈트는 스파이더맨 홈커밍에 나오는 슈트죠.

뒤에 마크 47이라고 써져있네요.



바로 왼쪽에는 우리의 헐크버스터가 존재하네요.



어벤저스에서 등장하는 마크 43과 마크 44(헐크 버스터)



간지가 넘치는 토니의 아이언맨 슈트, 정말 역작들입니다.



아이언맨 2에 나오는 마크6

처음으로 삼각 아크 원자로를 만들어서

슈트에 적용시켰었죠.

아버지의 프라모델을 이용해

그의 머리로 만들어낸 걸작



아이언맨 2의 빌런인 이반반코와의 대결을 그린 모습입니다.



가장 간지가 났던건 밀리터리 페인팅을 한

아이언맨 슈트였는데요.

한번도 보지 못했던 슈트라서 더욱 눈길이 갔습니다.

아이언 패트리어트의 종류라고 보면 될까요?

나머지 슈트들은 아이언맨 3에서 본듯 합니다.



희한한 슈트의 색상이나 디자인들로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신기하고 재미있다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뭔가 건담인가 싶기도하고

SUB-ZERO는 제가 알기론

아이언맨이 나오기전에 일러스트를 그리다가

색칠을 해놓은 것으로

데모버전으로 알고 있습니다.

건담을 많이 닮은 듯하다는 생각도 드네요.



마크 42 아래에 토니스타크의 얼굴이 놓여져있는데요.

뭔가 끔찍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무리 피규어라고 하지만

이런 컨셉은 조금 당황스러운 듯 합니다.



황금빛 마크42

금장이 많아서 고급스럽다고 했지만

자칫잘못 보면 오줌색으로 보여서

누리끼리 해보인다는 단점도 있네요.



스파이더맨 홈커밍

톰 홀랜드가 이번에 스파이더맨을 맏으면서

그를 알면 알수록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는데요.

뭔가 진중하면서도 정말 가벼운 허당 캐릭터인데요.

일상 생활에서도 그런 가벼운 입담으로

스포사고를 많이 친 인물중에 한명이죠.



필 콜슨, 닉 퓨리, 마리아

피규어입니다.



왜 여기에 누워있니 꼬마야

헐크 화낸다!

스매쉬!



떠들어라

난 음악이나 들으련다



얘네들은 왜 나온건지

데어 데블고스트 라이더

마블의 세계관에서 따로 노는 친구들



아이언맨 3에서 나왔던 토니의 육탄 활약피규어네요.

만다린을 연기한 배우도 있구요.



역대 명작이 될것이라는 생각이 들만큼

영웅들 간의 갈등과 위기를 그린 영화 시빌워,

루소 형제의 마블스튜디오 두번째 작품이었죠.

이것이 바로 어벤저스 인피니티워로 이어가게 되죠.



앤트맨은 둥그러니 저 위에 있었는데요.

왠지 가장 사실적으로 표현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피규어가 아니라고 하면 유리 안에 있는

앤트맨을 찍었다는 생각까지 할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우리의 바른생활맨 캡틴 아메리카



타노스의 인피니티 건틀렛



헐크버스터 헬멧




아이언맨 헬멧



얘네들이 다 블루투스 스피커였다는건 몰랐네요.

괜히 비싼건줄만 알았는데

그래도 비쌉니다.



그나마 세계관 상 가장 비싼 슈트인

블랙팬서 비브라늄 슈트 헬멧



정말 스파이더맨 만큼은 사고 싶었는데 말이죠.

겨우 참고 돌아갔다는 후문이...



토르의 외꾸눈이 인피니티 워에서

돌아오게 되죠?

두가지 버전의 토르입니다.



각종 마블 굿즈를 보면서

이곳이 마블랜드구나 싶었습니다.



귀찮게 뻗어있는 인형들의 모습이 디자인 같다는 효과가 있네요.



차량용품도 많더군요.


마블 레고를 보면서 엑스맨을 보게 되는데요.

폭스사를 인수한 디즈니가 이제 곧

엑스맨과 조우하는 마블 세계관을 그릴 것이라고 하는데요.

앞으로 더욱 기대가 되는군요.



직소 퍼즐까지 없는게 없군요.



비싼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마블에서 찍어낸 물건이다보니까

마블 매니아라면 이정도 가격은 아깝지 않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그렇지만 저는 안샀다는...



어벤저스 트럼프 카드까지



시계는 살까 안살까 정말 고민했지만

매일 보는 시계에 마블이 보인다는 것은

뭔가 유아틱 해보이기도 했습니다.

어린 조카들에게 선물로 주는게 낫겠네요.



책 값이 27,000원이네요.

어마어마하죠.



아이언맨의 뒷통수를 보니

뭔가 등근육에 매려당하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기계 등인데, 왜 이렇게 근육같은 느낌일까요.



묠니르에서 갑자기 음악이 나오길래 뭔가했더니

블루투스 스피커였더군요.

정말 빠짐없이 구경하면서도 너무나 볼거리가 많았던 

마블 컬렉션 엔터6,

코엑스에 가신다면 꼭 방문해보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방문했던 영상을 유튜브로 올린 것을 감상해보시죠.

무려 31분이나 되니 시간이 되는 분들은 재밌게 감상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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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통통버스 5탄 - 삽교호 놀이동산

Posted by 플래너TP PlannerTP
2018.09.20 22:07 플래너TP이야기/플래너TP의 여행기


  자 기대하고 고대하던 내포통통버스 5탄- 삽교호 놀이동산입니다. 드디어 마무리를 짓네요. 와우, 여기 오자마자 보이는게 바로 동그란 링 모양의 조각상이 있죠? 이곳으로 더 들어가면 바다가 보이네요. 갈매기도 있고 이곳에 관광오시는 분들이 기대하고 고대하는 건 바닷가 근처에 있는 조개구이집? 당연히 있고, 게다가 놀이공원까지 있네요? 함상공원이란 곳도 있지만 시간이 짧은 관계로 보진 못했습니다. 



 여기서 기념 사진을 찍고 바로 놀이공원으로 돌진했습니다. 바닷가를 찍은 사진보다 영상으로 찍어놓은게 있어서 아래에 유튜브 영상으로 감상하시면 될 것 같구요. 지도상 위치를 봐도 평택시에서 당진시로 넘어가는 그 경로쪽(서해대교 건너서)에 있기때문에 서울이나 그 부근에 사시는 분들이 나들이 가실때 거리가 그렇게 부담스럽지 않습니다. 당일치기가 가능한 경로죠. 



  당진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이 서울이나 그 근교에서 사시는 분들이 갈 곳이 없었다고 한다면 이 곳은 정말 새로운 곳이죠. 저도 이번에 가서 처음 알게 되었는데 너무나 좋더군요. 특히 다음에 간다면 조개구이 집은 필수로 들릴 것 같습니다. 아쉽게 시간이 없어서 패스를 하고 고깃집을 갔지만요. 그래도 그 코스는 정말 데이트코스로도 손색이 없을 것 같습니다.




  저는 이날 여행사에서 무료로 놀이기구를 하나 선택해서 탈 수 있게 해줬는데요. 대관람차를 선택했습니다. 처음에 대관람차가 놀이공원을 쭈욱 둘러보면서 관람하는 건가 보다 했는데 나중에 보니 그게 아니더군요. 조금은 당황했지만 그래도 그쪽에서 제공하는 가격이 가장 비싼 티켓이었습니다. 



  삽교호 놀이동산이라고 들어가시게 되면 커플들도 많이 오고 사람들도 꽤 많이 붐비었습니다. 잘 몰랐던 곳이라 그런건지 그럭저럭 시설도 괜찮아 보이고 분위기도 좋아보였습니다. 특히 마음에 드는 것은 이렇게 신나게 놀고나서 근처에 조개구이집을 코스로 간다면 정말 그날은 최고의 휴가가 될것이라는 것을 상상하게 되더군요. 저는 못먹었지만 가실분들은 준비하시길 바랍니다. 후회하지 않으실 것 같습니다. 여기 도착해서 뭔가가 크게 보이는 놀이기구가 있는데요. 동그랗게 돌아가는 놀이기구가 제가 탔던 대관람차였습니다. 이 곳에 오면 처음부터 눈에 띄게끔 정말 큰 놀이기구인데요. 놀이기구라고 할것 까진 아니더라도 한번 타면 고소공포증이 있으신분들은 정말 무서워 할 것 같더군요. 근데 고소공포증이 있으시면 이 대관람차는 타진 않으시겠죠. 왜 대관람차를 타면 좋은건지 있다가 확인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회전 목마도 있구요.



바이킹도 있고, 저기 레일을 돌리면서 타시는 분 보면

저게 대관람차인줄 알았는데 어떤 놀이기구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타가디스코도 있습니다. 월미도에 유명한 타가디스코가

이 곳 당진 삽교호에도 있네요.



대관람차가 정말 어마어마하게 크죠.

이것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정말 궁금하네요.

이 정도 규모의 놀이공원이라면 작은 수준은 아니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대관람차에 타면서 아래를 내려다 보았습니다.

실제로 보면 정말 무섭겠죠?

그래도 뭔가 짜릿한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대관람차 탑승시 주의사항입니다. 저는 그냥 타면서 아무런 주의사항을 읽지않고 타다보니까

조금은 위험하게 행동하긴 했었던 것 같습니다.

첫번째던 두번째던 놀이기구를 타면서 정말 중요한 것이 바로 안전이겠죠.

대관람차를 타기전에 뭔가 무서우시다면 이 안내내용을 먼저 숙지하시고

대관람차를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



대관람차에서 바라본 삽교호 뷰인데요.

대관람차를 타는 가장 강력한 이유중에 하나가

이 아름다운 뷰를 보기위해서 일 것 같습니다.

여러분도 정말 아름다운 광경을 이 대관람차를 통해서

한번은 꼭 보셨으면 좋겠네요.



게다가 이 대관람차 아래에

자이로드롭과 바이킹을 타는 모습까지 볼 수 있어서

뭔가 색다른 느낌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내가 타지는 않지만 그들이 무서워하는 모습을

저 위에서 지켜보는데, 그들 보다 위에 있지만

그들은 무서워하고 나는 관람하는 그런 재미도 느낄 수 있습니다.



대관람차를 타면서 가장 무서운 것은 바로 아래를 쳐다보는 것이죠.

정말 무섭습니다. 볼때는 문제가 없는데 사람이 대관람차 안에서 움직이면

조금씩 삐그덕 거리는 소리가 들리면서 뭔가 흔들리는 느낌이 듭니다.

그 때 약간은 공포감이 들 수 있습니다.



저 넓고 광활한 삽교호 그리고 함상공원



관람차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올라가는 것보단

내려가는 것이겠죠. 기분이 정말 묘합니다.



대관람차를 탄 후 버스로 돌아와 이제 마지막 코스인 저녁을 먹게됐는데요.

무한리필 고기를 먹었는데

사진을 찍기보단 고기를 굽기가 바빴었네요.

피로가 풀리는 기분이 들면서 행복했었네요.

조개구이집으로 갔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공짜로 먹는데 그것도 고기이니까요, 정말 좋았습니다.

그래도 처음 나올때 기본 반찬만이라도 찍어서 올립니다.

그 중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주먹밥이었는데요.

정말 주먹모양 밥이더군요.



이렇게 하루만에 총 다섯곳을 돌아보면서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블로그 후기보다는 이번 여행에 유튜브로 영상을 편집해서 올렸었는데요.

만드는 과정만 해도 정말 많은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그래도 꾸준히 매일 편집하고 만들고 영상을 올리고 

그리고 블로그에도 올리면서 유튜브에서는 보거나 알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이 블로그에 같이 올려보는데요.

여러분들이 만족하실진 모르겠지만 정말 최선을 다해서 만들어봤습니다.

다양한 블로거들이 단체로 함께 여행을 갔었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진 못했지만 그곳에서 알게된 좋은 분들도 생겼습니다.

하루종일 여행하면서 이번 기회에 많은 것을 보고 느꼈고

정말 아쉬운 점도 많았지만 다음에 오게된다면

아쉬운 생각대로 제대로 가볼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제 블로그 포스팅 내용과 유튜브 영상을 보시면서

한번쯤은 다섯 곳 중 한곳이라도 여행을 당일치기로 계획해서 다녀오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수많은 좋은 곳을 알게 된 이번 여행 정말로 뜻깊고 감사했습니다.

이 기회를 주신 TRAVEL M, 라인비즈 관계자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다음에 또 기회가 된다면 이런 좋은 여행지를 더 가보고 싶네요.

우선 하루동안 가본 다섯가지 관광지를

2주동안 영상작업하고 블로그 작성을 하면서 고생한 저에게도 박수를 보내고 싶네요.



유튜브 검색 플래너TP or PLANNER TP 하시면 저 나옵니다.

아래 영상을 통해서 가셔도 되구요.

좋아요, 구독하기 꼭 눌러주세요! 





매 주 내포 통통 버스가 운영 중이며, 내포 통통 버스를 통해 편하게 내포 시티 투어를 할 수 있습니다. 


내포 관광 온라인 지도가 있어 혼자 가시거나 가족단위로 여행 가신다면 이 곳을 여행하기에 용이합니다. 


내포온라인지도가 있는데요.

위에 내포온라인지도라는 주황색 글씨를 클릭하면

내포 관광온라인지도를 볼 수 있는 사이트로 들어갑니다.

여행가기 전에 이 사이트에서 지도를 보시면 좀 더 용이하실거에요.


내포통통버스 이용시 로망스 투어를 이용하시면 됩니다.


아래 링크를 통해서 신청하시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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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통통버스 4탄 - 당진 필경사 (심훈 기념관)

Posted by 플래너TP PlannerTP
2018.09.20 02:03 플래너TP이야기/플래너TP의 여행기


내포통통버스 4탄, 오늘은 필경사에 대해 포스팅을 할 건데요.

정말 여러군데를 들리는 군요. 포스팅할 것도 많구요.

이번 방문한 곳은 심훈이라는 일제시대에 활동했던

애국 엔터테이너를 알게 되었는데요.

우리나라의 역사에 대해 공부하려면 실제 그 현장을 방문해서

배워야지 많이 남는 것 같습니다.

관심도 없는 분야를 책으로만 공부하면 남는게 하나도 없다는 것을

어렸을때 부터 느껴왔던 건데

지금이라도 이렇게 잘 알게되었으니

나중에 자녀교육을 시킨다면 배우고 익히지 못할 것이라면

자기가 원하는 일을 찾는 시간에 더 할애하라고 하던지

아니면 실제로 방문하고 체험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던지 해야겠습니다.

방문을 하게된다면 기념할 수 있는 사진이나

기념품을 챙겨놓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죠.


필경사는 심훈 선생이 당진군 송악면 부곡리로 내려와 살던 집 이름입니다.

필경사란 집이름은 그의 시 제목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당진 필경사의 주소입니다.


그는 1930년에 "그날이 오면" 이란 제목으로 시집을 발간하려 했었고 하지만 일제는 허락하지 않았고

이때 간행되지 못한 시집속에는 "필경" 이란 시의 제목의 원고가 들어있었습니다.



심훈기념관에 들어서게 되면

평소에 운영을 언제부터 언제까지 하는건지 기록이 되어있는데요.

관람료가 무료라고 하니 참고했으면 좋겠습니다.

휴관일도 매주월요일과 공휴일도 정해진 공휴일(설날, 신정, 추석당일) 에만 쉬기때문에

방문하기 편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당일치기로도 충분히 가능하니 부담없이 방문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즉, 심훈 기념관은 당진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당진의 지지를 전폭적으로 받고있는 비중있는 곳이라는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일단 입장료가 무료라는 것 자체가 당진시에서 지원하고 있다는 뜻이 됩니다.

그만큼 당진시에서는 소중한 역사기록과 관계되어있다는 것이며

사실 제가 심훈이라는 작가를 잘 알지 못했기에

이런 정보를 이런 사진을 통해 알게된다는 것에 약간은 미안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작품 이름을 들으면 왜 이 작가가 그만큼 당진에 있어서

비중이 있는 사람인건지 알게될텐데요.

'상록수', '그날이 오면'

이런 제목은 다 한번씩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이 작품을 만든 사람이 바로  심훈입니다.



처음 들어가게 되면 보게 되는 그분의 손자인 심천보의 

프로야구단 한화이글스 시구기념 

의상과 사진을 전시했습니다.

시구한 년도가 2016년이고 

심훈 선생님의 작고일인 9월 16일에 시구를 했다는 군요.

저 당시 심천보씨의 나이는 76세였습니다.

할아버지인 심훈선생님이 야구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에 대해서 살펴보니 

스포츠를 민족정신 발양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보고 

1929년 일제강점기 당시 ‘야구’를 소재로 한 시를 발표한 바 있다고 하더군요.

충남이란 지역이 프로야구 한화구단이 유명해서

여기에도 이렇게 전시를 한건지 했으나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었던 것이었죠.




가이드 분의 안내를 통해 심훈 기념관에 대해 많은 정보를 얻게 되었습니다.

요즘 말로 TMI 라서 다는 이해는 못했지만

그 분의 이름이 필명이었고

대표작, 그리고 어떤 지역에서 사셨고

그리고 어떻게 생을 마감했는지 정도에 대해서는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TMI가 어떻게 보면 허세처럼 들릴 수 있지만

대한민국 일제강점기 때 계몽운동에 큰 공헌을 하신 분이란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분이고 그분의 자손들이 잘 살아남았기에

그분에 관련된 정보를 기증한 분들이 대게 그분의 자손들이 많습니다.


심훈(沈熏, 1901년 9월 12일 ~ 1936년 9월 16일)은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 소설가, 시인, 언론인, 영화 배우, 영화 감독, 각본가로 본명은 심대섭(沈大燮)입니다. 경기도 과천군 출생이며 경성부에서 성장한 그의 본관은 청송(靑松)이고 호는 해풍(海風)이다. 어렸을 때의 이름은 심삼준(沈三俊), 심삼보(沈三保)입니다. 주요 저서로는 소설 《상록수》 등이 있다. 또한 1926년에 한국 최초의 영화 소설 《탈춤》을 연재했습니다. 

이건 위키백과에서 찾은 글인데요. 

경기도 과천군 출생이 맞는건지는 심훈기념관에는 지역이 다르게 나와있습니다.



경기도 시흥군 북면 흑석리 출생

(지금 지명은 서울 동작구 흑석동)

위키백과에서 나온 이야기와는 다르죠?

시흥군과 과천군의 경계가 모호하여

기록된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정확히 따지자면 위키백과가 아닌

심훈 기념관의 기록을 따르는게 맞겠죠?

지금 확인해 보니 나무위키도 과천군이라고 기록했네요.

심훈 상록문화제 사이트로 

http://djsangnok.org/sub1

방문하셔서 확인해보시면 정확히 출생은 시흥군이 맞다고 보시면 됩니다.

두산백과는 노량진이라고 하네요.

뭐 동작구와 노량진이 붙어있기 때문에 그렇게 봐도 되겠지만

현 지명을 이야기하는 건데 정확한 기록을 말하자면 동작구라고 해야겠죠.



'어머님께 올리는 글월' 이라는 작품은 

어렸을 때 부터 형무소에 투옥하여 어머니에게 글을 썼던 글로 

가이드분께서 이 작품은 그 분의 '처녀작'이라고 하는 

다소 문제가 될 수 있는 표현에 조금은 조심스러웠습니다.

첫작품이다 라고 하고 정리하면 될 것 같습니다. 

1919년 3.1 운동을 하다 3월 5일에 붙잡혀 8개월간 서대문형무소 생활을 했다고하는데요.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에 다녀와보신 분이 있다고 하시면 정말 소름이 돋을 겁니다.

지금은 서대문 형무소가 다른 곳으로 이전을 했고 

현재는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이라고 하는데요.

옥살이 중에 많은 고문이 있었다는 기록은 이 곳에는 적혀있지 않네요.

서대문 형무소가 가지고 있는 의미는 일제 강점기때 말을 듣지 않는 조선인들을

죄다 잡아서 이곳에서 투옥시켜 가진 고문과 살인을 저질렀다는 것에

박물관이 아닌 기념관이 아닌 역사관으로 명명됐다는 것을 알고 바라보면 될 것 같습니다.



심훈에게 보내는 편지는

우리가 그에게 전하고 싶은 심정을 저 감옥에다가

집어넣는 퍼포먼스를 연출하기 위해

의미적으로 만들어놓은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옥중체험을 할 수 있는 장소 있었습니다.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과 비교해본다면

심훈 기념관은 정말 순화가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으실 겁니다.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에서는 비명소리, 고문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처음 당진으로 온게 1932년이었고

부모님이 계신 곳으로 낙향했다고 합니다.

1934년에 필경사 자택을 지었고

1935년 장편소설 상록수로 인해 동아일보에 당선되었고

1936년 장티푸스로 그의 생은 젊은 나이 36에 마감하게 되었습니다.



심훈의 아버지는 지금으로 말하자면

일반 공무원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조선왕실 왕비 계보도가 있는 것은

그의 혈통이 조선의 왕비쪽에 족보가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며

뼈대있는 가문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전시했다는 것으로 보입니다.



기념관에 저렇게 지도로 표시된것을 보여준 이유는

저때가 심훈이 가장 활발하게 활동했던 것을 보여주려고 한 것 같습니다.



당시 유학생활을 통해서 수집했던 엽서를 보여주는데요.

지금은 저게 뭐가 대단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예술과 아름다움에 관심이 많았던 그의 성격을 보여주고

당시 저런 엽서를 구하기가 쉽지만은 않았을 겁니다.

보관수준도 준수하고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내용물입니다.



심훈 선생님은 시나리오 '탈춤' 을 집필하고 실제 연기자로도 활동을 했다고 하지요.

당시 탈춤이란 시나리오를 연재한 신문입니다.



첫번째 부인 이해영씨와 이혼하였고

안정옥 여사는 심훈의 두번째 부인입니다.

결혼 후 세명의 아들을 두었습니다.



'먼동이 틀때' 라는 영화의 작품에

그의 모습은 훈남같습니다.



단성사, 지금 말로 영화관이죠.



이곳은 심훈 선생님의 작업을 했던 책상을 전시한 곳인데요.



정말 자손들이 보존을 잘 해서 이렇게

심훈 기념관에 전시를 했는데

이분이 자녀분들에게 베풀었던 사랑이 

대를 이어서 이렇게 지켜진다는 것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고 봅니다.



심재영과 최용신이란 인물은 실제 인물이며

소설속의 상록수는 그들의 이름을 넣어서 작품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실제 이 둘은 작품처럼 만난적이 없다고 하며

가상의 내용으로 소설을 작성했다고 합니다.



졸업증서, 심재영,

심재영은 심훈의 조카라고 알고있는데요.

당시 설명해주시는 분이

이 증서가 당시 수원농업대의 졸업증서라고 했던건 기억이 납니다.

현재 서울대 농업대가 됐다고 합니다.



상록수의 여러 버전 책자를 모아놨는데요.

시대가 흘러도

상록수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기념관 밖에 나서서 위로 올라가 보면 동상이 있습니다. 



금장으로 꾸며진 동상은 뭔가 고급져보이면서도

뜨거워 보입니다.

그의 모습을 본따 만든 동상의 모습을 보고

이제까지 뜨거운 햇빛을 잘 견뎌낸건지

걱정이 되기도 하네요.

심훈 기념관이 지어진지는 4년남짓이 되었고

관리는 깔끔히 잘 되어지고 있어보입니다.



1930년 3월 1일이라는 날짜가 무색하게도

그 날은 항상 그의 머리속에서 떠올리기 싫어도 떠올릴 수 밖에 없는

인생의 한 획이었을 것입니다.

오늘 남북정상이 만나 회담을 하면서도

3.1절에 대한 100주년 공동사업을 북한의 김정은 최고위원장이

언급을 하여 긍정적인 모습을 보였는데요.

이렇게 우리나라는 3.1절에 대한 의미가 얼마나 큰건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다면 이제 3.1절도 놓아주어야한다는 것은

저는 꼭 바라봅니다.

3.1절로 인해 떠난 숭고한 목숨을 희생한 조상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그 상처를 씻는 길만이 그들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이제 더 이상 그들을 미워하지 말자는 시대로 하루빨리 갔으면하는데

일본이 한국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는 것이 우선이겠죠.

우리는 기다려야만 하고 그리고 우리의 선조의 노력이 결국은 잊지 말라고 해도

잊어야하는 그런 순간이 다가올 수록 우린 노력해야할 것입니다.

앞으로 더욱 더 큰 미래를 위해서 보란듯이 대한민국에 세계 경제대국이 되어

떠나간 그 분들이 더 이상 억울하지 않게 말이죠.

항상 우린 미안하기때문에 이렇게 3.1절을 기념합니다.

이젠 그분들의 영혼을 기리면서 더 이상 이런일이 없어야할 것입니다.

용서하고 또 용서하더라도

우린 잊는다고 해서 3.1절은 잊지는 않을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혈통의 역사속에 3.1절은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7월의 바다




상록수에서 나오는 주인공 캐리커쳐 동상과 

상록수를 그리고 상록수 뒤에 의자를 두었습니다.

서로 만난적이 없는 사람들의 이름을 두고 소설을 지었는데요.

햇빛에 비친 그들의 따뜻한 모습이 지금이라도 그 시절로 돌아가

풋풋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시대를 지내고 있는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을 것 만 같습니다. 



이곳이 그 유명한 심훈이 거처했던

필경사입니다.

들어갈 수는 없었지만 이곳에서

그 유명한 상록수가 탄생했다는 것이 역사적으로 큰 의미가 된다는 것을 

우리는 이 현장을 바라보고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곳을 방문하면서 심훈이란 사람이

얼마나 세상을 바꾸었는지 이해가 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나도 내 자식들에게 이렇게 세상을 떠나더라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라는

그런 물음을 어릴적부터 가지고 살았지만

지금은 뭐라 할까요.

잘못된 어른이 되었다고 할까요?

어른이기에 포기해야할 것들을 포기하고 그렇게 현실에 순응하는 삶을 살면서

세상에 평범한 어른들과 나이를 같이 먹어가는

'내가 죽으면 내 이름은 세상에 어떤 기록이 되어질 수 있을까?'

라는 반성을 해보게 됩니다.

그런 기록을 원하진 않아도 내가 나의 소명을 다해 최선을 다해 산다면

심훈이란 사람처럼 영원한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기록에

남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꿈꿔봅니다.



정말 추천드립니다. 당진 필경사, 한번 꼭 가보세요!


다음은 심훈 기념관에 관련해서

유튜브에 올린 영상입니다.

감상하시죠!





매 주 내포 통통 버스가 운영 중이며, 내포 통통 버스를 통해 편하게 내포 시티 투어를 할 수 있습니다. 


내포 관광 온라인 지도가 있어 혼자 가시거나 가족단위로 여행 가신다면 이 곳을 여행하기에 용이합니다. 


내포온라인지도가 있는데요.

위에 내포온라인지도라는 주황색 글씨를 클릭하면

내포 관광온라인지도를 볼 수 있는 사이트로 들어갑니다.

여행가기 전에 이 사이트에서 지도를 보시면 좀 더 용이하실거에요.


내포통통버스 이용시 로망스 투어를 이용하시면 됩니다.


아래 링크를 통해서 신청하시거나 


http://bit.ly/2MgKXh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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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통통버스 3탄 - 천주교의 시작, 솔뫼성지

Posted by 플래너TP PlannerTP
2018.09.18 21:52 플래너TP이야기/플래너TP의 여행기




 

  안녕하세요. 오늘은 내포통통버스 3번째 방문지, 솔뫼성지에 대해 포스팅을 합니다.  솔뫼성지란 소나무 산을 뜻합니다. 방문했을 때 첫 느낌은 사진에서 보는 것과 같이 동화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왼쪽에는 2014년 8월에 내한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을 본따 만든 캐리커쳐 동상이고, 오른쪽에는 대한민국 최초의 천주교 사제인 김대건 신부의 캐릭커쳐 동상입니다. 그들의 손에는 어린 남녀 아이들의 모습의 동상이 있고 이는 뭔가 세상의 희망을 뜻하는 두 사람의 인생을 상징하는 듯 했습니다.


솔뫼성지의 주소지를 첨부합니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내포를 ‘충청도에서 제일 좋은 땅’이라 하였는데요. '내포’는 바닷물이 육지 깊숙이까지 들어와 포구를 이루어 배들이 드나들며 새로운 문물을 전해주는 장소였습니다. 내포를 비롯하여 서해안 여러 지역에는 1784년 이승훈 세례 이전부터 중국으로부터 건네지는 서학 내지 천주교 문화와 신앙을 접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확산되었던 실학사상의 분파인 서학이 내포 선비들의 관심사가 되었었죠. 내포의 서학자들은 서울의 실학자들과 교류를 하면서 내포의 양반, 중인, 서민 등 모든 계층에서 천주교로 발전하였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의 10대 선조인 김희현이 아산 현감을 역임하면서 가문이 내포와 인연을 갖게 되었습니다. 9대 선조인 김의직이 충청병마절도사를 지내며 임진왜란에서 전훈을 세우자 가문이 대대로 토지와 벼슬을 보유하게 되었구요. 사헌부감찰과 통훈대부를 지낸 8대 선조인 김수완 때부터 가문은 솔뫼에 거주하기 시작하였습니다. 

  1784년경 김대건 신부님의 백조부 김종현과 조부 김택현이 내포 사도 이존창의 권유로 서울 김범우의 집에서 교리를 받고 천주교에 입교하자 가장인 증조부 김진후(비오)도 입교하여 가문이 천주교 신앙으로 귀의, 솔뫼를 ‘내포 신앙의 못자리’로 만들었습니다. 김 신부님 가문은 천주교 신앙에 귀의한 후 잦은 박해로 가족들이 여러 차례 투옥되고 고문을 받다가 순교까지 하여 솔뫼를 ‘순교자의 고향’으로 만들었습니다. 

  1906년부터 합덕본당 주임 크렘프 신부님은 솔뫼를 성역화하기 위하여 인근의 토지매입을 시작하였고, 1945년에는 백 빌리버 신부님이 솔뫼에 김대건 신부 복자비(福者碑)를 설립하였습니다. 1973년부터 솔뫼 성역화 사업을 계획적으로 시작하여 1982년에 대전교구는 순교자 신앙을 가르치고 전하는 ‘솔뫼 피정의 집’을 건립하여 솔뫼성지를 ‘순교자 신앙의 학교’로 삼았고, 국가와 지자체의 도움으로 2004년에는 김대건 신부님 생가를 복원, 2005년에는 김대건 신부님 기념관을 건립하여 이제 솔뫼성지는 ‘순교자 신앙과 문화의 전당’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솔뫼성지는 한국 최초의 사제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탄생지입니다. 증조부 김진후(1814년 순교),종조부 김종한(1816년 순교), 부친 김제준(1839년 순교), 그리고 김대건 신부(1846년 순교) 등 4대의 순교자가 살던 곳으로 김 신부의 신앙이 싹튼 곳이며, ‘한국의 베들레헴’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곳입니다. 김대건은 이곳(현 당진군 우강면 송산리, 당시에는 면천 고을 솔뫼)에서 1821년 8월 21일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이미 증조부와 종조부가 순교한 천주학 집안이어서 가세는 기울대로 기울었고 또 어느 새 새로운 박해가 닥칠지 몰라 조부 김택현은 김대건이 7세 무렵에 경기도 용인군 내사면 남곡리 ‘골배마실’이라는 산골로 이사했습니다.

  김대건은 그곳에서 16세 때인 1836년 모방신부에 의해 신학생으로 뽑혀 최양업(토마스)와 최방제(프란치스코)와 함께 마카오로 유학하여 신학을 공부했고 상해에서 페레올 주교 집전으로 신품을 받았습니다. 1845년 입국한 김신부는 선교 활동에 힘쓰는 한편, 동료 최양업 부제와 외국선교사 신부를 맞이하기 위해 힘쓰다 1846년 6월 5일 체포되었고 1846년 9월 16일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을 받고 순교하였습니다. 사제 생활 1년 1개월만의 일이었죠. 1859년 9월24일 가경자, 1925년 7월5일 복자품, 1984년 5월 6일 성인품에 올려졌습니다. 김신부는 조선 최초의 방인 사제이며 현실을 직시하고 진리를 외치던 선각자였습니다. 또한 우리니라 최초의 서양학 유학생이며 조선의 최장거리 여행자이기도 합니다. 1845년 초 우리나라 조선전도를 만들었다. 저서로는 22편의 서한이 있고, 한국 교회사에 관한 비망록 등이 있어 79위 시복자료가 되었습니다. 대전교구에서는 1996년 김대건 신부 순교 150주년 기념사업으로 김신부 생가 복원을 결의하고 2004년 9월 22일 생가 안채 복원을 완성하였습니다. 1998년 7월 25일 충청남도는 성 김대건신부 생가터를 충남 지방문화재 제146호 기념물로 지정하였습니다. 그리고 2005년 10월에 김대건 신부 기념관을 완공하였습니다. 

  2014년 5월 문화재청으로부터 국가 사적지 제529호로 등록되었고 2014년 8월 13일부터 16일까지 제6회 아시아 청년대회, 제3회 한국청년대회가 대전교구에서 개최되면서 이 기간에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방한하시어 아시아 청년들과의 만남을 솔뫼성지에서 가지게 되었습니다. 교황님께서 솔뫼성지에 다녀가 신 후 이를 기념하고자 2015년부터 매년 8월 14일-15일 이틀간 프란치스코 데이 행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2017년 8월 14일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알려주신 매듭을 푸시는 성모 신심을 기억하고 온 세상에 널리 알리고자 “매듭을 푸시는 성모님 경당”을 봉헌하였다고 합니다. 


이 내용은 솔뫼성지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내용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을 모르시는 분은 많이 없을거라고 생각합니다. 당시 큰 이슈였기때문에 말이죠. 2014년이었기에 더당시 세월호 사건과 더불어 교황이 내한하면서 있었던 사회적 관심은 대한민국 사회에 종교를 떠나서 희망을 잃지 않게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보여준 교황의 모습에 인상이 깊었습니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발언이 아닌 희망과 사랑을 함께 나눌 수 있도록 같이 기도를 해주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기도를 한다는 것만으로도 그의 영향은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으로 끼쳤었던 것은 아직도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천주교를 믿는 종교는 아니지만 그들의 나름대로의 룰을 통해 세상에 사랑을 전파하는 방식은 어느 누구보다도 순고하고 깨끗하고 아름답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역사속에 선조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지금 수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파할 수 있었을까하는 생각도 들면서 그들은 당시 시대의 희생량이 되었던 것에 많은 애도의 감정을 표합니다. 



솔뫼성지 입구에 들어가게 되면 한국 최초의 사제 성 김대건 안드레아 탄생을 기념하는 돌을 볼 수 있습니다.



입구로 들어가고 나서 

처음 보게되는 작품은 십자가의 길입니다.

천주교 답게 예수가 십자가에 달린 조형물을

동상으로 세워놨습니다.

그리고 반대로 왼쪽편으로 고개를 돌리면

12사도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모든 사제를 찍진 못했지만 

그들의 장엄한 모습에 압도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김대건 신부의 생가로 가보면 한 사람의 좌석동상이 세워져있는 걸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뭔가 외롭게 느껴지면서도 미안하다라고 말하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갈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돌이켜 바꿀 힘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인간의 나약함을 깊숙히 이해하고 있기에 묵묵하게 그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앞서 떠나간 김대건 신부를 애도하는 것이 그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죄인은 아니지만 기도로써 죄를 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고 김대건 신부의 생가에 그의 초상화가 있고(국사책에서 자주본 그림)

내부는 들어가진 못하지만 복원의 수준이 잘 되어있다고 느껴졌습니다.



김대건 신부를 향해 기도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모습을 

동상으로 세워놨는데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바라보는 시선에서 봤던 건

김대건 신부님 생가에서 바치는 기도문이었습니다.




생가 부근에 세워진 김대건 신부의 동상입니다.



솔뫼성지를 둘러보면 13개의 예수와 관련된 동상이 세워졌는데요.

동상마다 바닥에 로마숫자가 새겨져있습니다.

무슨 의미인건지는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13이란 숫자가 서양에서 의미하는게 좋은 의미는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어떤 생각으로 13개의 동상을 세운건지는 정확히 이해하긴 힘들었습니다.



길을 따라 모퉁이로 들어가보면 성당으로 들어가는 입구쪽에 구리빛 동상이 세워져있었던걸로 기억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대한민국 순수한 아이의 교화라는 제목으로 딱 어울리는 장면이었습니다.



이 솔뫼성지가 프란치스코 교황을 위하는 기념물이 많이 제작된 이유는 바로

14년에 대한민국에 내한해서 그가 주었던 사랑의 힘이 너무나 위대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매년 프란치스코 교황을 기념하는 행사를 이 솔뫼성지에서 한다고하니

다시 프란치스코 교황이 대한민국을 방문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성당에 들어가보면 정말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어두운 곳에 불빛이 아름다웠습니다.

안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최소한의 조명으로 

그리고 아름다운 촛불색으로 꾸며진 성모마리아상을 보면

넋이 나갈 수 밖에 없을 것 같았습니다.

성모마리아 상의 제목은

'매듭을 푸는 성모' 라고 합니다.

성모 마리아가 예수의 어머니란 사실은 잘 아실겁니다.



성당을 나와 뒷쪽으로 나와보면 예수의 목까지 표현한 조형물이 있습니다.

철문까지 있어서 뭔가 오싹한 느낌은 들었는데요.

이곳을 들어갈땐 분명 동화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가도

왠지 나갈때는 신성하면서도 거룩한 천주교의 사랑이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사랑이란 것은 누군가가 바라봤을 때 외로움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묵묵히 사랑을 전파하고 그리고 세상에 희망을 퍼트리고

그렇게 세상은 맑아져만 간다는 것을

이 곳을 다녀오게 되면서 느끼게 되는 것 같았습니다.


아래는 영상을 편집한 것을 유튜브에 올렸는데요.

실감나게 감상해보시죠!



정말 추천드립니다. 한번 꼭 가보세요!




매 주 내포 통통 버스가 운영 중이며, 내포 통통 버스를 통해 편하게 내포 시티 투어를 할 수 있습니다. 


내포 관광 온라인 지도가 있어 혼자 가시거나 가족단위로 여행 가신다면 이 곳을 여행하기에 용이합니다. 


내포온라인지도가 있는데요.

위에 내포온라인지도라는 주황색 글씨를 클릭하면

내포 관광온라인지도를 볼 수 있는 사이트로 들어갑니다.

여행가기 전에 이 사이트에서 지도를 보시면 좀 더 용이하실거에요.


내포통통버스 이용시 로망스 투어를 이용하시면 됩니다.


아래 링크를 통해서 신청하시거나 


http://bit.ly/2MgKXhr


위에 '로망스 투어'라는 오렌지 색 글짜를 클릭시 해당 사이트로 이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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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통통버스 2탄 - 충남 서산으로 여행가요! 서산 해미읍성

Posted by 플래너TP PlannerTP
2018.09.18 04:49 플래너TP이야기/플래너TP의 여행기


내포통통버스를 통해 두번째로 방문한 곳은 방문한 곳이긴 하지만 제대로 방문까진 아니었던 곳이라서 가장 아쉬움이 많이 남으면서 오래있었으면 하는 장소였던 역사가 깊은 해미읍성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옛날 관가였다고 보시면 됩니다. 예전 이순신 장군도 근무했던 곳이라고 합니다.


1417년(태종 17년)에 축성을 시작하여 1414년(태종 14) 충청병마절도사영이 덕산(德山)에서 이곳으로 이설되었습니다. 1421년(세종 3년)에 축성이 완료되었습니다. 해미읍성은 원래 왜구의 출몰에 대응하기 위한 군사적 목적으로 건축되었는데, 충청도 병마절도사가 이 성에 주둔한 것도 그 때문이었고 세조때에 군사 제도가 진관체제(鎭管體制)로 개편되면서도 이 역할은 여전하여 충청도 지역의 주요 군사거점으로서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1651년(효종 2년)에 병마절도사가 청주로 이전하면서 해미현 관아가 옮겨와 해미읍성이 되고, 문무를 겸한 겸영장이 배치되며 호서좌영으로 명칭이 바뀐 이후, 호서 지방 행정 중심지 역할을 하였습니다. 해미읍성이란 명칭도 이때 개명된 것으로 본래 이름은 '해미내상성'(海美內廂城)이었습니다.


일제 강점기였던 1914년에 군현제가 폐지되고 해미현이 서산군에 통합되면서 읍성은 폐지되었습니다. 폐지 이후에는 성 안에 면사무소, 초등학교 등 기관과 민가가 들어섰습니다. 해방 후 1963년 1월 21일 사적 116호로 지정되었습니다. 1970년대부터 복원공사가 시작되었으며 성내 건물을 철거하고 동헌, 객사, 내아 등을 복원하였습니다. 2000년대부터 정비공사가 시작되었으며 성내 동헌, 객사, 내아 등을 정비하였고, 2004년부터 해미읍성 역사체험축제가 개최되기 시작했습니다. 2014년 8월 17일 교황 프란치스코가 방문하여 제6회 아시아 청년대회 폐막 미사를 주례하였습니다.


해미읍성과 가장 관계가 깊은 종교가 바로 천주교인데요.


조선후기 실학자 다산 정약용은 당시 천주교의 교인이란 죄명으로 해미읍성으로 열흘간 귀양을 왔습니다. 1790년대 정조 때부터 시작된 천주교 박해는 1866년 병인양요와 1868년 오페르트 도굴 사건 이후 더욱 극심해집니다. 이에 해미진영의 겸영장은 내포지방 13개군현의 군사관을 쥐고 있었으므로 해당 자택의 교도들을 모두 잡아들여 모두 해미읍성에 처형하였는데 그 수가 무려 1,800여명이상 이었다고 전합니다.


처형한 사람의 수가 1,800명이나 되었으니 정말 어마어마한 숫자였죠. 그래서 유명한 나무이름이 호야나무라고 하는데요. 나무의 종은 회화나무인데 충청남도 지정 기념물 제172호로 수령300년 이상 추정되며, 1866년 병인박해 때 천주교 신자들을 이 나무에 매달아 고문했다고 전해지긴 하지만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선 이곳을 방문한 첫 느낌은 뭔가 성지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내부를 보니 정말 깔끔하고 정갈한 느낌에 소풍가기 딱 좋은 관광소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복원을 잘해놔서 그런건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주말에 가족 나들이를 간다면 서산당일치기로 꼭 이 장소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벽을 따라 쭉 따라가게 되면 해미읍성 남문쪽으로 도착하게됩니다.



이곳을 방문하기 전에 해미읍성관광도 식후경이라고

해미읍성의 명품식사 해미칼국수 집에 들렀습니다.

제공은 TRAVEL M에서 지원해줬구요.



먼저 나온 음식은 콩보리밥 비빔밥이었는데요. 

단체로 식사를 하다보니 양은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콩보리밥 비빔밥의 기본적인 맛은 느낄 수 있습니다.




네명이서 한 테이블에 앉다 보니 비빔밥의 양이 많지 않아서

나눠서 먹다보니 맛보는 수준에 불과하였습니다.

이런 부분은 조금 아쉽긴 했습니다.



그러나 추가로 이 칼국수의 양이 어마어마하다보니까

어느정도 배의 호기는 채운 듯합니다.

너무나 큰 그릇에 담아주긴 하는데 국자로 퍼서 담아먹기엔 조금 힘든 감은 있습니다.

보통 해물 칼국수의 맛이라 특별한 것은 없지만

아까 먹은 콩보리 비빔밥은 아직도 생각나네요.

역시 감칠맛을 느낀 음식이 더 맛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 해물 칼국수는 점심때 먹기에는 부담이 없는 것 같아 좋았습니다.

괜히 점심때 맛있는 것을 많이 먹었다가는 속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으니

되도록이면 가볍게 음식을 드시고 여정을 진행하시길 권장드립니다.



가까이서 찍으니 정말 먹음직 스럽네요.




이렇게 식사를 마치고 해미읍성으로 가게 됐는데요.

가이드분의 별다른 설명이 없어서 점심시간을 많이 주는 대신에

그 시간을 통해 이 해미읍성을 그저 정처없이 한번 돌아다녀 봤습니다. 



해미읍성을 들어서게 되면 시네마 야외콘서트를 한다는 내용의 팜플릿이 있네요.

제가 방문했던 날짜는 그 전주였기때문에 이미 끝났겠지만

본격적인 축제는 10월부터라고 하니 참고하시길 빕니다.



해미읍성을 들어오자마자 보이는 풍경은 참 탁 트이고 좋아보입니다.

탁 트인 들판과 웅성한 나무들은 정말 소풍오기엔 너무나 기가막힌 장소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깔끔한 잔디, 그리고 너무나 아름다운 햇살을 맞으면서

조금 덥다고 느껴질 땐 시원한 그늘에서 돗자리를 깔아

편히 앉아서 가족들과 담화를 나누면 너무나 좋겠다는 생각이 안들수가 없더라구요.



해미읍성의 남문을 통해 들어오면 저 문에서 문지기들이 

바깥의 출입을 금하기 위해 지키고 있었을 것이란 걸 예측해 볼 수 있습니다.



다양한 전투무기들이 있는 이유를 찍을 당시는 잘 몰랐는데요.

이곳이 전투의 요충지라는 역사적 기록이 있기때문에

관련 무기들을 본따 만들어 전시를 해놓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 서산 해미읍성의 대들보이면서 가장 외로운 나무라고 해야할까요?

여길 오신다면 꼭 보시고 가시라고 말씀드려야할

호야나무입니다.

기록상 고문이 가해졌다고 하지만

나무가 역사에 기록될만 큼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것이 맞겠죠.

천주교 박해사건으로 인해 이곳에서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역사이면서도 이 나무에게는 어떤 악연이기도 하면서

역사속에 이 나무를 지울수 없는 이유로 결국엔 우리가 역사를 기억하고 보존하면서

다시는 그런 일이 없어야겠다는 타산지석을 삼을 수 있는 기록의 산물이 되는 것이죠.



호박넝쿨 숲에 들어가면 이렇게 해미읍성을 대표한 시들을 나무판에 

인쇄하여 전시해 놓은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잠깐 들렸기에 이 모든 것을 볼 수는 없었지만

대표되는 관람 포인트이기 때문에

다음에 들를 때는 꼭 한번씩 다 구경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곳을 방문할때 꼭 포인트로 한번씩은 다 들러보시길 바랍니다. 



호박넝쿨숲을 건나면 바로 무궁화 동산이 나옵니다.

옛 풍경들을 깨끗하게 복원한 모습이 나옵니다.



해미읍성 내부에는 부뚜막도 있고

이 곳에 살아야하는 머슴들이나 관가사람

상인들, 서민들도 있었겠지요?



관직에 있는 관료들이 모여서 전략회의를 하는 모습입니다.

사또 갓을 쓴 사람들이 여럿이

이는 분명 해미읍성을 지키는 전투를 하는데 있어서 큰 회의를 하는 장면일 것입니다.



해미읍성 내아같은경우는

앉아있을 곳이 있어서 사진 포인트로 괜찮은 장소이기도 합니다.

연인들이 같이 온다면 이 곳에서 사진을 찍었으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9월초라서 그랬던건지 사람들이 많이 없다는 생각도 들었는데요. 이 곳은 10월이 되면 축제가 유명하기 때문에 되도록 9월 중순부터 빠른 방문을 한번씩 해봤으면 합니다. 연인끼리라던지 가족끼리라던지 일단 9월까진 그래도 방문하신다면 편안하고 안락한 환경속에서 나들이 분위기를 만끽 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람이 많은 것을 원한다면 10월쯤이 가장 피크일 것 같습니다. 이런 좋은 장소에 제가 갔을때 사람이 많이 없었다는 것이 이해가 안될 정도로 너무나 나들이하기엔 좋은 장소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9월부터 다채로운 행사를 하기때문에 언제든 주말에 한번씩 들려서 힐링을 하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곳은 다시한번 찾아보고 싶다는 마음입니다. 우리나라에 이런 곳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서울에 사시는 분이라면 그렇게 거리도 멀지 않기때문에 우선 오실거라면 항상 생각하는게 아침 일찍 움직이셔야한다는 것을 권장드립니다. 주말은 교통이 오전부터 막힐 수 있기때문에 그렇지 않으면 도착하는데도 시간이 걸릴 것이고 밥을 먹으면 얼마 여유있게 구경하지 못한 상태에서 집에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죠. 이것이 바로 여행의 기본적인 패턴입니다. 차로 가기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아 가깝고 유명하고 좋은 곳인데  막상 다녀와보면 너무나 피곤하다는 느낌이 든다면 좋진 않겠죠? 이왕이면 한번 갈때 빨리 움직이고 쉬는 것도 제대로 쉬고 집으로 돌아간다면 이보다 훌륭한 힐링은 없을 것 같습니다.



역시나 이 해미읍성은 제가 올린 5개의 영상중

최고의 조회수를 기록하는데요.

영상을 보신 분들이 가장 공감도 많이 해주시고

영상을 감상하면서 좋다고 평가를 많이 해주셨습니다.


정말 추천드립니다. 한번 꼭 가보세요!


매 주 내포 통통 버스가 운영 중이며, 내포 통통 버스를 통해 편하게 내포 시티 투어를 할 수 있습니다. 


내포 관광 온라인 지도가 있어 혼자 가시거나 가족단위로 여행 가신다면 이 곳을 여행하기에 용이합니다. 


내포온라인지도가 있는데요.

위에 내포온라인지도라는 주황색 글씨를 클릭하면

내포 관광온라인지도를 볼 수 있는 사이트로 들어갑니다.

여행가기 전에 이 사이트에서 지도를 보시면 좀 더 용이하실거에요.


내포통통버스 이용시 로망스 투어를 이용하시면 됩니다.


아래 링크를 통해서 신청하시거나 


http://bit.ly/2MgKXhr


위에 '로망스 투어'라는 오렌지 색 글짜를 클릭시 해당 사이트로 이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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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통통버스 1탄 - 서산당일치기, 개심사를 다녀오다!

Posted by 플래너TP PlannerTP
2018.09.16 06:42 플래너TP이야기/플래너TP의 여행기


  드디어 포스팅을 하게 되는군요. 이 포스팅을 하기전에 제 유튜브 채널에 내포통통버스 여행후기를 5편이나 만들어올렸는데요. 하루에 한개씩 영상을 만드려고 하다보니 너무나 힘들었던 기억이 아직까지 지금 상황을 훈훈하게 만들어줍니다. 예전에 OK캐시백 이벤트였나요? 아님 SKT 멤버십 이벤트인가하는 곳에서 응모를 했던 것 같은데 언젠가 제게 문자가 왔는데요. 내포시티투어에 당첨이 되어 결국엔 여행을 가게 됐네요!



  이 메시지가 떠서 바로 답메일을 보냈더니 참가가 되었던거죠. 제 블로그가 조회수가 많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정도 된다고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하루에 조회수가 2~3만회씩은 되어야 그래도 파워블로거 수준이라고 불리는데 저는 그래도 하루에 적어도 500에서 700회 정도는 되니까요. 최고 1400정도까진 찍었던걸로 기억합니다. 여기에 당첨이 되려면 어느정도 블로그나 SNS활동을 하는 사람에 한하여 당첨이 된다고 하는데 저는 당첨자 추가선정에 있어서 갑작스레 들어가게 됐는데요. 정원이 다 차지 않았던건지는 모르겠지만 현장에서 그 쪽 블로거들과 이야기 할 기회가 생겨서 말해봤더니 딱히 심한 경쟁률이 있었던 건 아닌 듯 했습니다. 초보 블로거들도 몇 있었던걸로 보이기 때문이었죠. 공짜로 여행을 가는 것이다 보니 그래 힐링하자라는 생각으로 가봤는데 난 왜 일을 하고 왔던것처럼 느껴졌던걸까요. 그래도 저는 포스팅을 할 수 있는 소재거리가 생겨서 기분은 좋았습니다. 다만 앞으로 포스팅을 하는 것으로 방향을 이쪽으로 하기엔 조금은 무리가 있어보입니다. 일주일 내내 여기에 메달렸는데 다른 일을 하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죠. 


  포스팅 하는 일이 현재, 주식, 아마존, 문화, 책, 시사칼럼, 생활리뷰, 유튜브 등 다양한 일을 하고 있는데 토요일 하루내내 투자한 시간동안 찍은 사진이나 비디오를 가지고 다섯개의 영상을 유튜브에만 올렸는데도 일주일이 후딱 지나갔습니다. 그러면서도 되도록 매일 블로그 포스팅을 하면서 지내고 있는데요. 실제로 일이 추진이 되려면 수많은 일들을 할 수 있을 것이라 받아들이고 그리고 진행되는 것에 밀리지 않도록 먼저 해야하는 일부터 완료될때까지 시간적 여유를 어떻게든 확보하려고 노력하게 되면 분명 앞에 일이 해결되면서 일이 완성이 되어가는 모습을 보고 저는 추가적인 일들을 또 다시하게 되다 보니 결국엔 일만 하다가 언젠가는 돈을 벌겠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마음이 항상 차있는 즐거운 생활을 하게됩니다. 항상 바쁘게 지내시는게 좋지만 이번 여행기는 참 다섯군데를 한꺼번에 가게 되었더니 뭔가 여행보다는 일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원하는 장소라고 생각했을 때 주어진 시간이 한정되었었는데 거기서 뭔가를 여유롭게 하지 못하고 돌아온 느낌에 아쉽지만 맛뵈기는 잘 봤다는 생각과 좋은 장소들을 많이 알게되었다는 것에 감사했습니다. 서울에 상경한지 벌써 만 6년이 넘었는데 서울에 왠만한 지리는 알고있으면서도 아직 못가본데도 있지만 패턴은 익혔던 상태고 대한민국에서 살면서 유명한 여행지는 그래도 알만하다고 생각했지만 이런 곳은 더 유명해져도 되는데 왜 난 잘모르는걸까?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역시 사람은 자기가 보고싶은 것 만 본다고 좀더 넓은 시야를 가지게 하는 기분도 갖게 하는 이번 여행에 좋은 경험을 가졌다는 것에 행복합니다.



  여행은 9월 8일 토요일로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이 날 아침에 저는 서울시청 3번출구역에서 내리고 통통버스를 시간에 맞춰서 탑승했습니다. 아침 7시 30분부터 모여서 출발하는 방법으로 진행됐는데 버스 안에 사람은 한 20명정도 되보였습니다. 그 중 저만 혼자였던 것 같네요. 당첨될지 모르고 응모했던 거고 목요일날 갑작스레 당첨되는 바람에 같이 갈 사람은 구해보려고 생각은 안했던 것 같아요. 혼여행 자주 가는데 이번 여행에 다른 사람들과 동행하는데 신경쓰지 않으려했지만 단체로 행동하는거라서 하루종일 어색하게 가만히 있었죠. 영상 촬영하는데 있어서도 뭔가 뻘쭘하기도 했지만 처음이 어렵지 앞으로 이런데 참여한다면 좀 더 쉽게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 오고 혼자오는데 처음부터 어색함을 피하기 위해 굳이 2명끼리 온 분들에게 이야기를 먼저 던져서 가벼운 사람이 되기는 제가 더 불편할 것 같아서 였죠. 



  아침에 무료로 나눠준 물과 빵은 아침일찍 나오느라 식사를 못하고 나온 분들에게는 간단한 요기거리가 됐을 것 같습니다. 아점을 주로먹는 편이라서 그런지 그래도 맛있는 크림소보루빵은 제가 좋아하는 빵이라 고맙게 잘 먹었습니다. 크림이 중간에 덜덜덜했지만 맛은 있었습니다. 그렇게 아침엔 어색하게 편한 자리로 착석하고 버스가 출발하길 기다렸지요.



  가이드를 하시는 분들이 피켓을 나누어주었는데 영상을 찍거나 사진을 찍을때 괜찮은 컨셉을 보여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상 영상편집을 할때 요긴하게 썼었지요. 아래 영상은 그 샘플입니다.



저 동그라미, 어벤저스 인피니티워에서 타노스의 우주선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네요



 유튜브에 다섯개의 영상을 다 만들고나서는 정말 속이 시원하단 생각이 들었구요. 이 포스팅에서는 먼저 서산에서 있었던 일을 포스팅하려고 합니다. 처음으로 들러야했던 곳은 바로 개심사였는데요. 이 곳은 충남 서산에 있는 대표적인 절로써 4~5월에 벚꽃이 유명하기로 소문이 나있는 곳입니다. 특히 청벚꽃, 겹벚꽃 등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벚꽃을 볼 수 있는 유일한 명소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매 주 내포 통통 버스가 운영 중이며


내포 통통 버스를 통해 편하게 내포 시티 투어를 할 수 있다는 점은 참고해주세요!


당일치기하고 싶은데 그곳이 특별한 장소이시길 원한다면


서산당일치기를 추천합니다.



내포통통버스 이용시 로망스 투어를 이용하시면 됩니다.


아래 링크를 통해서 신청하시거나 


http://bit.ly/2MgKXhr


위에 '로망스 투어'라는 오렌지 색 글짜를 클릭시 해당 사이트로 이동합니다.





개심사의 주소지를 첨부합니다.


내포통통버스에서 내리고 개심사로 올라가 봅시다.



  개심사는 충남 4대사찰 중 하나로서 백제시대의 혜감국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며 7인의 선지식 출현으로 개원사에서 개심사로 개명하였다고 합니다. 대웅전의 기단이 백제 때의 것이고 현존 건물은 1475년(성종 6) 에 산불로 소실 된 것을 1484년 (성종 15) 에 증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대웅전은 창건 당시의 기단위에 다포식과 주심포식을 절충한 건축양식으로 그 축조기법이 미려하여 건축 예술의 극치를 이루고 있습니다. 경내의 마당을 중심으로 대웅전과 안양루가 남북으로 배치되었고 동서로는 무량수각과 심검당이 위치해 있습니다. 또한 이 곳에는 명부전을 비롯한 영산회괘불탱, 아미타본존불, 관경변상도, 칠성탱화, 오층석탑, 22종의 경전 목판 등의 자료가 있습니다. 

  참고만 하라고 적어놨을 뿐이지 실제 이 중에서 볼 수 있는 건 한정적인 부분이 있겠지요. 실제 절이고 절 안에 있는 것들은 모두 스님들이 관리하고 있으니 말이죠. 한가지 문뜩 떠오른 것은 절에서 귀중한 물건을 훔치는 도난사건이 발생한다면 경찰들이 출동할까요?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말이죠. 스님들은 속세에서 벗어나 수련을 하는 도인의 입장으로 수행의 내용 중에 집착을 버리라는 것도 있을텐데 최소한 그 분들은 어디까지가 개인적인 부분일 까요?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이유는 실제 절 안으로 들어가는데 촬영금지라는 내용의 피켓을 보고 촬영을 하면 어떤 벌이나 규제가 내려진다는 것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었기에 문뜩 들었던 생각이었습니다. 남의 경고를 무시하다가 어떤 상황이 벌어지는 것에 대해 기본적으로 알려주는게 친절한 부분인데 안돼! 하고 끝나는 면에서는 뭔가 사람을 하대하는 격 아닌가 싶기도 했습니다. 종교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은 없으며 이 분들이 추구하는 사상이 기본적 해석에 앞어서 평범한 사람들이 겪는 재산권이나 개인의 자유에 대한 침해에 대해 어떻게 대처를 하는지 아무도 궁금해 한 사람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뉴스나 영화에서 보더라도 그런 일이 일어날 수가 없다고 생각하는건지 말이죠. 

  절에서 소란을 일으키면 스님들이 제지를 하는건지 경찰들이 제지를 하는건지 생각을 안해봤었지만 진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대처하실지 스님들이 얼굴이 궁금하긴 합니다. 불교라는 것은 사상이고 스님이 특별하다고는 생각지는 않습니다. 같은 사람인데 그분들이 불경을 수행한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사람과 다르게 특별시 될 것은 아니기때문이죠.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원칙에 그들이 선택한 길에 대해 적어도 어떻게 대처하고 살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속세의 사람들과 단절하면서 수행을 원칙으로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것은 뭔가 어불성설인 것 같기도 했습니다. 

  관광을 오는 사람들이 그들의 수행을 방해하지 못하게 써 놓는 팻말들을 보면 이상하게도 그 곳이 관광인들을 어린아이로 취급하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관광지로 절을 방문할 수 있도록 꾸며놓았다면 관광객들에 대한 가이드를 철저하게 해놓아야 한다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절을 처음 방문한 건 아니지만 관광객의 입장으로 봤을 때는 입장이 다른 것이지요. 이번 방문에 스님이 몇분 지나다니는 걸 보았지만 그분들과 마주치는 사람도 없었고 인사를 하는 사람을 본적도 없다보니 관광의 시간을 딱 정해서 방문할 수 있도록 정해놓은 것도 없다보니 이 모든 것이 충남 서산의 관할 쪽에서 기획을 한부분의 의도를 제대로 타협하고 정해서 운영하고 있지는 못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단연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건지 룰이 정해지지 않으면 관광객의 입장에서는 냉철하게 말하면 흐지부지하다는 생각밖에 들 수 없다고 보는 거죠. 절을 잘 알지 못해서 이렇게 쓰기보다는 불교에 대한 희귀한 역사를 아는 입장이다보니 비판적으로 들릴 수는 있지만 이런 점은 관광지로 운영하는 절들은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래봤자 인터넷으로 블로그를 안보실테니 그저 기록되는 글로만 남겠지요. 불교는 겉으로는 파벌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곳에서 나온 수많은 파생종교들이 있었고 그런 종교들을 배척하는데 있어서 큰 세력이 두개로 나뉘었던 거죠. 그래서 불교의 역사를 좋게만은 보고 있지는 않습니다. 차라리 저는 이웃집 아저씨들이 봉사활동하면서 자신보다 약한 분들을 돕고 사는 것이 훨씬 보기 좋은 수행이라고 보고 있기때문이죠. 마음이 흉할때는 산으로 가는편 이긴 합니다. 명상을 하는 것도 방법이기도 하고, 혼자서 생활하기때문에 그 생활이 속세이던 절이던간에 수련은 장소의 차이보다는 마음의 수련의 기세의 차이라고 봅니다. 그들을 겪지 않았기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 있는건지 생각을 해본다면 무례한 말이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이런 서운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전달된다면 시간이 흘러 그들도 변해가고 또 변할 것이기 때문에 기록에 의해 더욱 가까운 불교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 이야기 해봅니다.



사진 속에 보면 장승배기라는 곳이 있는데 서울에도 장승배기역이 있지요. 관계는 없는걸로

서산시 운산면 상왕산에 있는 이 개심사는

상왕산이라는 산명에서부터 살펴봐야할 내용이 있는데요.

코끼리 상, 왕 왕이라고 해서

백제시대에 지어진 산의 이름이라고 하는데 

그때 당시 백제는 불교문화권이었기때문에

불교의 상징인 코끼리를 칭하는 부분이다보니

당시 이곳의 세력이 대단한 곳이였다고 여겨지기도 합니다. 

실제로 방문해봐도 깔끔하고 살기 좋아보였던걸로 기억합니다.

코끼리에게 물을 마시게 할 수 있도록 '경지' 라는 곳도 만들었다고 하니

왕이 신경썼던 큰 절이라는 것은 분명 해 보입니다.



올라가는 길이 계단으로 잘 만들어져있고 경치도 아름다웠습니다. 

경사는 그렇게 완만하지 않아서 등산객들이 아니더라도 순조롭게 잘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다만 한가지 아쉬웠던 것은 전망대를 보고 싶었는데

전망대가 있다는 것을 모르고 올라가다 있다가 좀더 올라가다 보니 

시간이 부족한 관계로

전망대를 오르다가 중간에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산 위에서 흐르는 물을 바라보면서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간판에 보면 QR코드도 있네요.

참고로 내포온라인지도가 있는데요.

위에 내포온라인지도라는 주황색 글씨를 클릭하면

내포 관광온라인지도를 볼 수 있는 사이트로 들어갑니다.

여행가기 전에 이 사이트에서 지도를 보시면 좀 더 용이하실거에요.


개심사의 반대쪽으론 일락사가 있었는데요.

이정표는 잘 표시해 놓은 것 같습니다.


내포문화숲길!

내포, 내포 하는데 여기서 '내포'란 뜻이 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본래 내포란 가야산 앞뒤와 오서산 북쪽의 열 고을을 말하는데 그 곳들은 지금의 아산시에 속한 옛날의 신창현, 예산군의 옛 예산현, 덕산군, 당진시의 옛 면천군, 당진현, 서산시의 옛 서산군, 해미현, 태안군의 옛 태안군, 홍성군의 옛 홍주목과 결성현으로 여겨진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충청도에서는 내포가 가장 좋은 곳이다”라고 하였는데, 실제로 내포는 지세가 산모퉁이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큰 길목이 아니므로 임진왜란 병자호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