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포통통버스 3탄 - 천주교의 시작, 솔뫼성지




 

  안녕하세요. 오늘은 내포통통버스 3번째 방문지, 솔뫼성지에 대해 포스팅을 합니다.  솔뫼성지란 소나무 산을 뜻합니다. 방문했을 때 첫 느낌은 사진에서 보는 것과 같이 동화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왼쪽에는 2014년 8월에 내한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을 본따 만든 캐리커쳐 동상이고, 오른쪽에는 대한민국 최초의 천주교 사제인 김대건 신부의 캐릭커쳐 동상입니다. 그들의 손에는 어린 남녀 아이들의 모습의 동상이 있고 이는 뭔가 세상의 희망을 뜻하는 두 사람의 인생을 상징하는 듯 했습니다.


솔뫼성지의 주소지를 첨부합니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내포를 ‘충청도에서 제일 좋은 땅’이라 하였는데요. '내포’는 바닷물이 육지 깊숙이까지 들어와 포구를 이루어 배들이 드나들며 새로운 문물을 전해주는 장소였습니다. 내포를 비롯하여 서해안 여러 지역에는 1784년 이승훈 세례 이전부터 중국으로부터 건네지는 서학 내지 천주교 문화와 신앙을 접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확산되었던 실학사상의 분파인 서학이 내포 선비들의 관심사가 되었었죠. 내포의 서학자들은 서울의 실학자들과 교류를 하면서 내포의 양반, 중인, 서민 등 모든 계층에서 천주교로 발전하였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의 10대 선조인 김희현이 아산 현감을 역임하면서 가문이 내포와 인연을 갖게 되었습니다. 9대 선조인 김의직이 충청병마절도사를 지내며 임진왜란에서 전훈을 세우자 가문이 대대로 토지와 벼슬을 보유하게 되었구요. 사헌부감찰과 통훈대부를 지낸 8대 선조인 김수완 때부터 가문은 솔뫼에 거주하기 시작하였습니다. 

  1784년경 김대건 신부님의 백조부 김종현과 조부 김택현이 내포 사도 이존창의 권유로 서울 김범우의 집에서 교리를 받고 천주교에 입교하자 가장인 증조부 김진후(비오)도 입교하여 가문이 천주교 신앙으로 귀의, 솔뫼를 ‘내포 신앙의 못자리’로 만들었습니다. 김 신부님 가문은 천주교 신앙에 귀의한 후 잦은 박해로 가족들이 여러 차례 투옥되고 고문을 받다가 순교까지 하여 솔뫼를 ‘순교자의 고향’으로 만들었습니다. 

  1906년부터 합덕본당 주임 크렘프 신부님은 솔뫼를 성역화하기 위하여 인근의 토지매입을 시작하였고, 1945년에는 백 빌리버 신부님이 솔뫼에 김대건 신부 복자비(福者碑)를 설립하였습니다. 1973년부터 솔뫼 성역화 사업을 계획적으로 시작하여 1982년에 대전교구는 순교자 신앙을 가르치고 전하는 ‘솔뫼 피정의 집’을 건립하여 솔뫼성지를 ‘순교자 신앙의 학교’로 삼았고, 국가와 지자체의 도움으로 2004년에는 김대건 신부님 생가를 복원, 2005년에는 김대건 신부님 기념관을 건립하여 이제 솔뫼성지는 ‘순교자 신앙과 문화의 전당’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솔뫼성지는 한국 최초의 사제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탄생지입니다. 증조부 김진후(1814년 순교),종조부 김종한(1816년 순교), 부친 김제준(1839년 순교), 그리고 김대건 신부(1846년 순교) 등 4대의 순교자가 살던 곳으로 김 신부의 신앙이 싹튼 곳이며, ‘한국의 베들레헴’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곳입니다. 김대건은 이곳(현 당진군 우강면 송산리, 당시에는 면천 고을 솔뫼)에서 1821년 8월 21일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이미 증조부와 종조부가 순교한 천주학 집안이어서 가세는 기울대로 기울었고 또 어느 새 새로운 박해가 닥칠지 몰라 조부 김택현은 김대건이 7세 무렵에 경기도 용인군 내사면 남곡리 ‘골배마실’이라는 산골로 이사했습니다.

  김대건은 그곳에서 16세 때인 1836년 모방신부에 의해 신학생으로 뽑혀 최양업(토마스)와 최방제(프란치스코)와 함께 마카오로 유학하여 신학을 공부했고 상해에서 페레올 주교 집전으로 신품을 받았습니다. 1845년 입국한 김신부는 선교 활동에 힘쓰는 한편, 동료 최양업 부제와 외국선교사 신부를 맞이하기 위해 힘쓰다 1846년 6월 5일 체포되었고 1846년 9월 16일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을 받고 순교하였습니다. 사제 생활 1년 1개월만의 일이었죠. 1859년 9월24일 가경자, 1925년 7월5일 복자품, 1984년 5월 6일 성인품에 올려졌습니다. 김신부는 조선 최초의 방인 사제이며 현실을 직시하고 진리를 외치던 선각자였습니다. 또한 우리니라 최초의 서양학 유학생이며 조선의 최장거리 여행자이기도 합니다. 1845년 초 우리나라 조선전도를 만들었다. 저서로는 22편의 서한이 있고, 한국 교회사에 관한 비망록 등이 있어 79위 시복자료가 되었습니다. 대전교구에서는 1996년 김대건 신부 순교 150주년 기념사업으로 김신부 생가 복원을 결의하고 2004년 9월 22일 생가 안채 복원을 완성하였습니다. 1998년 7월 25일 충청남도는 성 김대건신부 생가터를 충남 지방문화재 제146호 기념물로 지정하였습니다. 그리고 2005년 10월에 김대건 신부 기념관을 완공하였습니다. 

  2014년 5월 문화재청으로부터 국가 사적지 제529호로 등록되었고 2014년 8월 13일부터 16일까지 제6회 아시아 청년대회, 제3회 한국청년대회가 대전교구에서 개최되면서 이 기간에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방한하시어 아시아 청년들과의 만남을 솔뫼성지에서 가지게 되었습니다. 교황님께서 솔뫼성지에 다녀가 신 후 이를 기념하고자 2015년부터 매년 8월 14일-15일 이틀간 프란치스코 데이 행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2017년 8월 14일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알려주신 매듭을 푸시는 성모 신심을 기억하고 온 세상에 널리 알리고자 “매듭을 푸시는 성모님 경당”을 봉헌하였다고 합니다. 


이 내용은 솔뫼성지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내용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을 모르시는 분은 많이 없을거라고 생각합니다. 당시 큰 이슈였기때문에 말이죠. 2014년이었기에 더당시 세월호 사건과 더불어 교황이 내한하면서 있었던 사회적 관심은 대한민국 사회에 종교를 떠나서 희망을 잃지 않게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보여준 교황의 모습에 인상이 깊었습니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발언이 아닌 희망과 사랑을 함께 나눌 수 있도록 같이 기도를 해주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기도를 한다는 것만으로도 그의 영향은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으로 끼쳤었던 것은 아직도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천주교를 믿는 종교는 아니지만 그들의 나름대로의 룰을 통해 세상에 사랑을 전파하는 방식은 어느 누구보다도 순고하고 깨끗하고 아름답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역사속에 선조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지금 수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파할 수 있었을까하는 생각도 들면서 그들은 당시 시대의 희생량이 되었던 것에 많은 애도의 감정을 표합니다. 



솔뫼성지 입구에 들어가게 되면 한국 최초의 사제 성 김대건 안드레아 탄생을 기념하는 돌을 볼 수 있습니다.



입구로 들어가고 나서 

처음 보게되는 작품은 십자가의 길입니다.

천주교 답게 예수가 십자가에 달린 조형물을

동상으로 세워놨습니다.

그리고 반대로 왼쪽편으로 고개를 돌리면

12사도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모든 사제를 찍진 못했지만 

그들의 장엄한 모습에 압도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김대건 신부의 생가로 가보면 한 사람의 좌석동상이 세워져있는 걸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뭔가 외롭게 느껴지면서도 미안하다라고 말하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갈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돌이켜 바꿀 힘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인간의 나약함을 깊숙히 이해하고 있기에 묵묵하게 그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앞서 떠나간 김대건 신부를 애도하는 것이 그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죄인은 아니지만 기도로써 죄를 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고 김대건 신부의 생가에 그의 초상화가 있고(국사책에서 자주본 그림)

내부는 들어가진 못하지만 복원의 수준이 잘 되어있다고 느껴졌습니다.



김대건 신부를 향해 기도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모습을 

동상으로 세워놨는데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바라보는 시선에서 봤던 건

김대건 신부님 생가에서 바치는 기도문이었습니다.




생가 부근에 세워진 김대건 신부의 동상입니다.



솔뫼성지를 둘러보면 13개의 예수와 관련된 동상이 세워졌는데요.

동상마다 바닥에 로마숫자가 새겨져있습니다.

무슨 의미인건지는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13이란 숫자가 서양에서 의미하는게 좋은 의미는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어떤 생각으로 13개의 동상을 세운건지는 정확히 이해하긴 힘들었습니다.



길을 따라 모퉁이로 들어가보면 성당으로 들어가는 입구쪽에 구리빛 동상이 세워져있었던걸로 기억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대한민국 순수한 아이의 교화라는 제목으로 딱 어울리는 장면이었습니다.



이 솔뫼성지가 프란치스코 교황을 위하는 기념물이 많이 제작된 이유는 바로

14년에 대한민국에 내한해서 그가 주었던 사랑의 힘이 너무나 위대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매년 프란치스코 교황을 기념하는 행사를 이 솔뫼성지에서 한다고하니

다시 프란치스코 교황이 대한민국을 방문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성당에 들어가보면 정말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어두운 곳에 불빛이 아름다웠습니다.

안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최소한의 조명으로 

그리고 아름다운 촛불색으로 꾸며진 성모마리아상을 보면

넋이 나갈 수 밖에 없을 것 같았습니다.

성모마리아 상의 제목은

'매듭을 푸는 성모' 라고 합니다.

성모 마리아가 예수의 어머니란 사실은 잘 아실겁니다.



성당을 나와 뒷쪽으로 나와보면 예수의 목까지 표현한 조형물이 있습니다.

철문까지 있어서 뭔가 오싹한 느낌은 들었는데요.

이곳을 들어갈땐 분명 동화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가도

왠지 나갈때는 신성하면서도 거룩한 천주교의 사랑이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사랑이란 것은 누군가가 바라봤을 때 외로움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묵묵히 사랑을 전파하고 그리고 세상에 희망을 퍼트리고

그렇게 세상은 맑아져만 간다는 것을

이 곳을 다녀오게 되면서 느끼게 되는 것 같았습니다.


아래는 영상을 편집한 것을 유튜브에 올렸는데요.

실감나게 감상해보시죠!



정말 추천드립니다. 한번 꼭 가보세요!




매 주 내포 통통 버스가 운영 중이며, 내포 통통 버스를 통해 편하게 내포 시티 투어를 할 수 있습니다. 


내포 관광 온라인 지도가 있어 혼자 가시거나 가족단위로 여행 가신다면 이 곳을 여행하기에 용이합니다. 


내포온라인지도가 있는데요.

위에 내포온라인지도라는 주황색 글씨를 클릭하면

내포 관광온라인지도를 볼 수 있는 사이트로 들어갑니다.

여행가기 전에 이 사이트에서 지도를 보시면 좀 더 용이하실거에요.


내포통통버스 이용시 로망스 투어를 이용하시면 됩니다.


아래 링크를 통해서 신청하시거나 


http://bit.ly/2MgKXhr


위에 '로망스 투어'라는 오렌지 색 글짜를 클릭시 해당 사이트로 이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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