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도지사의 친형을 정신병원에 가둔 조울증에 대하여

이재명 도지사의 친형을 정신병원에 가둔 조울증에 대하여


이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와 닮았기도 합니다. 전문적인 의원의 이야기와 다른 정보들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하물며 이 이야기로 내 삶을 연명하고자 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생각이 강할 수 밖에 없었고 그리고 이제는 그 틀을 벗어나고 글을 적고자 합니다. 

조울증이란 증상은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아주 무서운 병입니다. 자기 자신의 감정을 컨트롤을 할 수 없는 상황에 당위성을 갖게 합니다. 최근에 그러한 감정을 느끼면서 알게 된 것은 그저 억울한 감정을 풀수 있게 어떻게든 자신의 공간에서 치료를 해야만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마 어딜 가서든 다 똑같을 것입니다. 


사실 저는 친구를 사귀지 않고 살아온지 오래입니다. 서울에 올라온지 2012년 1월 31일, 올해 9년차가 되어갑니다. 처음부터 친구를 사귈 용기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조금씩 마음을 열어갔고 그리고 사고가 이어졌습니다. 더 이상 친구를 사귀면 안된다는 판단이 서게 되어 고립되는 상황에 반려견을 키우게 됐습니다. 유일한 친구는 반려견이 됐죠. 정서적 불안에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반대로 그 친구는 힘들어 한 부분도 있겠죠, 그래도 최선을 다해 챙겨주려고 합니다. 항상 저를 보고 즐거워 하는 모습에 감사합니다.


어쨌든, 저쨌든 저는 그 동안 많은 노력을 해왔습니다. 제 병을 극복했다는 선언도 해보고 그리고 아무것도 안하고 먹고 살기만 바쁘게 살면서 일, 산책, 잠 이외에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어쩔 수 없는 사회적 관계에서도 참가하는 회식또한 가만히 있다가 조용히 집에 들어갑니다. 좋아하는 취미가 사라졌습니다. 친구에게도 연락도 하지 않습니다. 유튜브도 현재 하다가 멈춘 상태죠. 아무 덧없고 허탈한 하루들을 보내다가 결국엔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재명 도지사의 무죄소식을 듣고 부터 말이죠. 원래는 제가 최근에 그렇게 규칙적인 생활을 하다가 회사 스케쥴 상 매월 출근 시간이 달라져 하루 패턴이 달라졌던 때 적응 하느라 고생하는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 이후 저는 나태해져 결국 크나큰 정서적 아픔의 시기가 오고말죠. 


하지만 그건 발생해야만 했던 일이었습니다. 그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했던 나의 태도에 대해 환멸을 느끼고 있었던 도중 이건 분명 사고를 칠만한 이성을 잃은 듯한 행동들을 계속 하게 된 정신적으로 버티지 못하고 있다는 상황이 발견된겁니다. 그렇지만 이건 전과 다른 발견이었습니다. 바로 나의 몸상태가 어디에 집중되어있냐는 것을 드디어 알아냈기 때문입니다. 


생활 패턴이 바뀌다보면 원래 지켜왔던 습관들의 관성들이 무너지게 됩니다. 그래서 그것에 맞춰 생각을 집중하는 것을 노력해야 하죠. 그것을 놓게 되면 자신도 모르는 스트레스나 혼란에 노출되게 됩니다. 결국 그러한 상황에서 정리하지 않은 감정이 언젠간 자신을 억울하게 만듭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제가 지금 이 단계에 와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럴때 마다 나에게 도움이 되었던 것은 나와 이야기하기, 산책, 운동, 명상, 소리지르기, 울기, 신음하기 등, 내 몸에 있는 기운들 중 뭔가 잘 못되어있는 것들을 정리하는 데 있어 도움이 되는 것들로 다스리다 보면 결국 조울증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정의를 내릴 수 있게 됩니다. 가장 중요했던 것은 운동, 명상, 글쓰기로 생각이 됩니다. 명상은 자신의 몸을 받아들여 몸이 움직이고 싶은데도 그대로 하게 놔두는 것도 포함됩니다. 그러한 행위를 하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쌓았던 안좋은 습관이나 행동패턴들이 날 가둬두게 되어 언제 안좋은 행동을 하게 될지 모릅니다. 


날 이렇게 분석하는 것도 안좋아 보이긴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날 이해하기도 어려운 게 바로 이 조울증의 현실입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현재 저의 조울증 증상을 정리합니다. 이 증상은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한 질환이 아님을 저 스스로 증명하고 살고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제 누군가에게 말할 수 있게 되었고 그러기 전에 수많은 고민들을 하고 있을 조울증 환자분들에게 용기를 전합니다. 



서두가 길었지만 왜 내가 이 글을 써야만 하는지에 대한 필연을 꼭 알려드리고자 함에 말씀드려봅니다. 아마 내가 나이가 들어서 다시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이재명 도지사와 같은 일이 발생되지 않을거란 보장 또한 없습니다만 나는 그래서 이재명 의원을 관심있게 보아왔습니다. 남의 일도 아닌 것 같아 보였고 무엇보다 가족의 아픔을 겪었을 마음이 우리 형과 가족들에게 그 때 당시 아팠을 상처들을 생각하면 얼마나 이재명 지사에게 미안한 감정이 대입 되는지 모를 겁니다. 언젠간 이 사람의 아픔을 풀어줄 수 있는 기회를 살아생전 갖게 된다면 그것도 의미가 있겠다 생각됩니다. 


조울증은  그 동안 언론에 간혹 소개되는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있었던 질환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저의 처음 조울증 발병 이후의 어두운 시기에 평생을 죄인 처럼 살아야 하는 그런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막상 매스미디어가 나를 아프게 했지만 지금은 그 매스미디어를 어떻게 대응해야하는지 알게 되었으니 누구나 겪을 일이라면 살아남을 수 만 있다면 겪어보는 것도 세상을 공부할 기회라면 기회일 수도 있습니다. 다만 그 과정이 너무나 가혹하고 힘들어서 그 누구도 이 질환은 안걸렸으면 하는 게 보통 사람의 마음임은 틀림없습니다. 


이성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봉착할 때는 상상을 초월하는 감정에 무엇을 할지 모르게 됩니다. 아니 정확한 표현은 무엇을 해도 지배당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마음에 있던 응어리를 풀어줘야 하는데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자신만의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해소 해야 합니다. 


가장 도움을 주는 것은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공간에서 몸에 집중을 하는 명상입니다. 이 명상은 나를 둘로 나눕니다. 내 의지로 인해 움직이는 정신과 쾌락의 반사신경에 반응하는 행동의 정신,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건 쾌락의 반사신경에 반응하는 행동의 정신인데, 이 증상은 나타날 수도 안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타난다면 방치할 경우 끝을 알 수 없는 마약을 생성하고 말 것입니다. 여기서 마약은 머리 자체 내에서 생성하는 도파민을 이야기합니다. 웃으면 엔돌핀이 흐르는 것처럼 몸의 쾌락반사신경이 이성을 잠식하여 뿜어내는 호르몬으로 유혹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거역할 경우 고통이란 결과가 있을 거란 생각을 하게 되어 행동을 제한하게 됩니다.


여기까지 상상력이라고 하면 좋을 것 같지만 저는 저를 관찰하면서 느낀 점과 그것에 대한 판단을 하는 것입니다. 즉 자신이 먼저 고통을 다스린다면 이 병은 충분히 제어가 가능하다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수 많은 치료방법 중에서 이 방법을 믿게 된 이유는 바로 습관에서 알게 된 관성의 법칙입니다. 



많은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비판적 사고 다양한 사고 그리고 나를 위한 사고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행하기 위한 것일 겁니다. 저는 책을 잘 읽지는 않았지만 2017년 이 감정을 지배하고자 하는 시작을 하면서 계속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물론 나의 확신은 중간중간 빗겨나가기도 했으며 그 과정에서 수많은 외로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단 한가지 확신이 들때까지 즉, 다시 예전처럼 돌아갈때 그 감정을 뒤에서 바라볼 수만 있다면 그럼 날 분석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며 그것이 드디어 이번에 나의 악감정이 나오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계기로( 당시 회사 스케쥴의 변동으로 한동안 운동이나 명상을 규칙적으로 하지 못했습니다 ) 며칠간 힘들어 하면서 이 감정을 헤어나오지 못함을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결국 다시 적용하니 방법에 대한 신용을 더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생활 패턴이 바뀐 후 영상만 보아왔던 내가 책을 한동안 안 읽어왔던 내가 가볍게 책을 꺼내 읽는 행동을 하게 됐습니다. 사실 내 인생 포기해도 그러려니 싶었다가도 결국 고통은 다가오게 되었습니다. 습관의 힘은 내가 살아가는 동안 정말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야 하는 건지 깨닫게 합니다.


사는 동안 남들이 하고 싶은 연애도 돈 버는 것도 승진도 그 동안 얼마나 하고 싶었던 건지, 어머니에게 연락하고 살고 싶었던 지난 날, 그게 불가한 나의 사정이 이제는 그러 필요가 없어야 한다는 깨달음, 어쩌면 이게 조울증의 시작이라 생각할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건 습관을 포기하지 않는 다는 사실입니다.


조울증은 극복할 수 있는 질환입니다만 단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한명이라도 더 생긴다면 저의 글은 의미가 계속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 과거와의 개념과는 다릅니다. 저는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분명 이재명 도지사가 처했던 상황의 시대에는 결코 이 조울증에 대한 사람들의 상식들이 정말 어긋나 있던, 당시 처음에 제가 조울증에 걸려서 생각했던 편견들이 가득한 시대였을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가족들이 조울증에 걸렸다면 정말 이재명 도지사를 한번이라도 다시금 생각하게 됐었을 것입니다. 분명 이재명 의원의 결정은 잘못된 것이 아님을 저는 분명 결과론적으로는 알고 있습니다. 아무도 그들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을때 말릴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가족임을 알고 있다면 정말 간곡한 삶의 외침속에서 결정이 되었던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적어도 저는 어머니에게는 욕은 안했습니다만 그렇게 되기전에 스스로 미쳐버리고 말았다는 것을 생각의 관념속에서 폭발을 시켜버렸기때문에 스스로 자그러지는 상황에 결국 병원에 끌려가는 상황으로 언제나 끝내게 됐습니다. 항상 그러한 상황에 있어서 매번 의심되는 가족들의 판단은 분명 절대 가족들과 가까이 지낼 수 없겠다는 판단도 들게 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이재명의 친 형은 결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제 형이 모든 것을 잘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당시 처음으로 조울증을 걸렸던 상황에 결단을 했어야 하는 방법이 지금 보면 모두 이해가 되는 판단이었습니다. 결국 그 원인을 제공했던게 가족이 영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결정은 모두 제 몫이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그들과 함께하면서 반응 하는 모든 것들이 결국 제가 당했던 과거의 가정폭력들이 있었던 사실이 있더라도 그 모든 건 가족들과 함께하면서 발생했던 철부지 시절의 이야기였습니다. 절대 이것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자만 결론은 분명 그들과 다르게 살았어야 하는 나만의 독자적인 판단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저 나름대로 결정하고 상경하게 된 서울 생활에 있어서 가족들은 모두 지방에 머물러 있지만 저 나름대로 독자적인 결정을 위해 집안을 뛰쳐나와 스스로 생활하는데 많은 세월을 보내게 됩니다.


어느 누구나 독립하게 된다면 결국엔 혼자 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가족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배우지 않게 한다면 결국 가족안에서 사고는 계속 발생할 것입니다. 지금 조울증 환자를 둔 가족이 있다면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줄 수 있는 방법을 계속 알려줘야 합니다. 다만 그러한 방법을 가족들 모두 모르는 경우도 많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문화의 특성상 부모가 있으면 그 밑에서 자식들이 살아야 하거나 독립을 해도 지속적인 부모와의 관계가 있어야 하는 그러한 상황들이 많습니다.



정말 어미새가 아기새를 떠나보내는 심정으로 독립을 시킬 수 있도록 계속 유도해준다면 조울증을 극복하는데 분명 도움이 될거라고 생각하지만 다만 이것은 저만의 생각입니다. 그 끈을 끊어서 스스로 결정하게 못한다면 그것은 분명 가족들과 엮여있는 잘못된 끈이 어딘가는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그 끈을 끊어내려고 수많은 고통 속에서 마음을 가다듬고 서울에서 사회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 지금의 시점에는 이런 글을 쓴다고 하더라도 더 시간이 지난다면 더 발전된 글을 쓰지 않을까 생각되기도 합니다. 매일 같이 글을 쓰면서 나를 돌아보는 이유는 극복의 증빙을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시각으로 계속 보여줄 수 있는 희망을 보여주기 위해서 이기도 합니다. 그 동안 우리는 정신과에 대한 기록을 항상 서양의학에 의지해 왔습니다만 그것은 어떻게 보면 대한민국만의 보편적이고 편의적인 보수적 시작에 따른 정신과 치료라고 생각되어집니다. 정신과에 가려면 형식이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있으니 말이죠. 그러한 방식을 파괴할 수 있는 자유를 얻으면서 스스로에게 가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주관이성적인 방법으로 스스로를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그럴려면 돈이 많이 들겠죠. 자본주의 사회에서 1:1 맞춤서비스라는 것은 정신질환에서는 적용되기 힘든 분야이기도 합니다. 사실 상담을 하는 것은 1:1 이지만 학문은 한쪽에 편향되어 있거나 그 한쪽에 문화가 서양권이라는 사실에 편협적인 동양인인 한국인이 해석하는 학문은 고학력자들이 해석했기는 했겠지만 전혀 이 방식들이 환자 중심이 아닌 일반인 중심으로 해석되는 경향이 강하다는 분석입니다. 그러다 보니 일반인들이 정신과 의사들의 질환 처방에 대해서 맹신하는 경향이 있고 그러다보니 보수적인 판결로 변하는 경향이 생깁니다. 그러한 경향에 정말 속마음은 조울증 환자들이 그런 것은 아닌데 결과적으로 보면 자신이 구제불능으로 느껴지는 상황이 지속적으로 나타나다보니 일반인인 의사의 감정상태와 공감력에 대해 많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제가 이런 말을 직접적으로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저도 책을 읽다보니 여러가지 상황에 대한 이해가 고려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정신과의학 보다 심리학의 일환인 임상심리학에 대해서 접하게 되고 그 학문의 시점은 정신과 의사와 환자사이의 심리를 그리는 내용들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기 때문에 더욱 신뢰가 갔습니다. 왜 정신과에 온 환자들은 약을 먹지 않는 건지 정신과 의사는 심리에 대해서 생각할 필요가 없기때문에 아무도 그것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은 변하고 그렇게 되서 결국엔 많은 정보들이 쌓여갑니다. 누군가는 계속 자신이 경험한 것들을 나누어서 정보로 변환시켜 가며 세상을 바꾸어 갑니다. 그러한 상황에 중간속 저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감사하게 여깁니다. 이전에 제가 받았던 공포감과 의사들의 진단 속에 고통 스러웠던 약 복용등 이러한 상황속에서 저는 살아 남았습니다. 그리고 기록합니다. 의사들의 생각과는 다른 독자적인 기록들을 통해 살아 있는 저 자신을 통해 계속 공부해 온 기록들을 말입니다.



이제서야 말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계기가 된다면 언제든지 이러한 기록은 계속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특히 제가 유튜브에 올렸던 최근에 마지막 영상인 조울증에 관련한 편견을 깰 수 있는 해외의 사례에 대해 이야기를 했는데 바로 존 에프 케네디의 조카인 패트릭 케네디 의원의 이야기입니다. 그 이야기는 가끔 언론에서 접하기는 했는데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CNN의 창립자 또한 조울증에 걸렸다는 것을 아무도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국내에선 유명한 사람으로 치자면 바이올리니스트 유진박(박유진) 이 있는데 종종 사기를 당한다는 소식으로 대중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는 사연들이 계속 들리기도 하죠. 모든 조울증 환자가 안좋은 것도 아니고 모든 조울증 환자가 심각한 것도 아닐 것입니다. 다만 조울증이 심각한 환자들은 자신의 인생이 송두리째 망가지면서 살고 있다는 것을 매일 같이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인생에 수십차례가 온다면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계시다면 아주 오만한 생각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을 뿐입니다.


병명을 장애로 이야기는 하지만 그들은 장애로 등록을 할 수 없는 수많은 상황에 봉착합니다. 저부터 장애에 등록하지 않고 그 동안 많은 아픔을 받아왔고 그것을 장애가 아닌 어떻게든 극복하고 제 책임으로 생각하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나는 스스로 극복할때까지 장애라고 여기지 않겠다고 말이죠. 미련한 짓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나는 그러나 그 동안의 경험 속에서 자신이 장애인이라고 오히려 장애인의 권리를 폭력적으로 주장하는 사람들을 대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차라리 이런 사람들이 잘못됐다고 생각을 할 뿐입니다. 물론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서 인정해 달라는 것의 절차는 이해합니다만 자신의 장애를 벼슬인 것처럼 갑질을 하듯이 요구하는 예의가 없는 행동들에 대해서는 분명 저는 눈살을 찌뿌리게 됩니다. 법은 최소한 이고 그것을 이용하기 위한 절차상 정확한 지침들에 대해서는 스스로 공부를 하는 것이 정확한 것입니다. 안된다고 한다면 더 똑똑하게 요구할 수 있도록 절차에 대한 헛점을 알아내고 그것을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해야 하는 것이죠. 그것이 정당한 장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조울증인 정신질환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항상 장애인을 등록하지 않고 살았던 지난 삶을 자부심 있게 생각합니다. 방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제 모습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지난 삶에 사기를 당했던 일 또한 저는 모두 않고 극복하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 시작은 공부가 선행됐고 그 공부에 대한 실천으로 삶은 달라지고 있습니다. 저는 지난 삶에 잃었던 것들을 통해 조울증을 공부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러한 조울증을 극복했다는 이야기는 위험하기도 합니다. 이건 모두 개인적인 상황과 극복의 의지가 있었고 고통이 수반되었기 때문입니다. 그저 희망이라고 표현하기엔 적합하지만 적절한 치료법이라고 말하기엔 아직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통상적인 방법을 제시할 수 는 있습니다. 바로 올바른 생활이라고 말하죠.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다고는 말하지만 그 방법대로 그대로 하더라도 부자가 되는 사람은 많이 없습니다. 그러한 것 처럼 제 방법은 분명 효과가 있습니다만 아무나 하려고 해도 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큰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어떻게든 이 조울증에 대한 극복을 사업으로 발전시키려고 했다기보다는 극복의 과정에서 강사를 하기 위한 컨텐츠를 찾는 중에 믿져야 본전인 샘으로 컨설팅 업체와 이야기하다가 결국 사업을 진행하려고 했습니다. 다만 컨설팅 업체의 잘못된 행동들로 인해 사업에 대해서는 진취적으로 진행해보지 못하고 막을 내리긴 했습니다. 제 스타일과 다른 방법을, 그들만의 스타일로 진행하려다 보니 결국엔 제가 살려고 하는 삶의 의도와는 조금 거리가 먼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아 그 사업은 접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접하게 된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저와 비슷한 질환을 겪고 있거나 초기이거나 아니면 저와 다른 심한 질환 등, 다양한 상황이 있었습니다.


저를 신격화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 제가 되게 난처한 상황들도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저를 비난하는 사람들도 발견하게 되었죠. 만약 제가 다른 조울증 환자들로 인해 비난을 받게 되었다면 정말 큰일이라고 판단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약점을 이용해 언제 미쳐버릴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읽고서 정말이냐고 물어볼 수 있는데 저 또한 그랬고 불가능한 게 아닙니다. 그리고 그들 또한 이 글을 읽는다면 분명 가능성에 대해서 염두하고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그러한 일들이 심하게 일어날 뻔 했고 그러한 상황을 진압을 하려고해도 그들은 기회를 주지않습니다. 자신이 불안하다는 것을 지난 삶의 경험을 통해 미리 인정해버리고 마음을 닫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저는 이러한 글을 적는 걸까요? 저는 그 상황을 알고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알고 있기때문에 기록하고 극복하고 이재명 지사의 상황에 따른 제가 기록하고 싶은 심정에 같이 편승하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다시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조울증이란 병명으로 인해 자신의 부모도 못알아보고 심한 욕을 어머니에게 했다는 이재명 지사의 형은, 어떻게 보면 태어난 순서만 달랐지 저와 같은 운명이 될지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이재명 지사의 형의 운명이 됐을지 아니면 이재명지사의 형이 저와 같은 운명을 개척하는 존재가 됐을지, 아직 그보다 덜 살았다고는 인정하지만 저는 약을 먹지 않은지 오래됐습니다.


그 이유를 말씀드리자면 우선 약에 대한 논리성에 대한 결여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조울증의 많은 병명들의 치료법을 약으로 말하는 의사들이 많습니다. 잘 찾아보시면 치료법이라고 말마따나 안심을 시키려고 하는 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정확한 이야기를 드리자면 억제제 입니다. 왜 이러한 말을 하게 되어 불안하게 하느냐에 대한 물음은, 이것은 믿음에 대한 선택입니다. 정말 조울증 환자가 이 글을 읽고 있다면 희망을 찾으시라고 하지 않습니다. 희망은 분명 크나큰 고통을 수반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보통사람이 엄두하지 못할 두려움과 공포를 경험하게 될지 모릅니다. 인간이라면 절대 극복하지 못할 상황까지 오게 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의사들의 말 중에서 가장 배신감을 느꼈던 멘트는 약을 먹더라도 언제 재발할지 모른다는 발을 빼는 설명이었습니다. 이것은 분명 조울증에 대한 설명을 찾다가 발견한 내용입니다. 만약 의사에게 이야기를 해본다면 이것을 반박할 무엇인가를 찾아내려고 할지 모릅니다. 아마 이런 것 아닐까요? 요즘 시대는 약이 잘 나온다는 것을 말할 것입니다. 반문을 해보자면 의사님이 약을 드셔보셨는지 부터 물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그것은 추후에 말해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렇다고 극도의 혼란스런 상황이 몇번 있다고 극복했다고 위대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남고 그 경험을 통해 다시 동일한 경험을 가려고 할때 어떤 반전이나 다른 교훈을 갖고 다시 삶을 도전 할 수 있는지 더 중요합니다. 제가 앞으로 어떻게 살지는 모르겠지만 매일이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합니다. 그러한 마음을 갖게 되니 오히려 더욱 삶이 밝아지기도 합니다. 마음을 열고 사는 자세 속에 어떻게든 자신만의 건강한 생활습관을 갖고 살아야 한다는 것 또한 저는 지난 삶을 통해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약은 맞는 사람이 있고 맞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에는 정말 정신과 의사에게만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정말 다양한 의원들을 찾아가 종합적인 소견을 스스로 정리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지만 처음 이 병을 발견하게 되면 생소한데다가 정말 겁을 먹기 일수이기에 처음 보는 의사가 어떤 의사인지에 따라 자신의 병을 비극적으로 생각하면서 고통을 이유없이 감수하는 끔찍한 약에 대한 트라우마를 배우던지 아니면 정말 정식적으로 국가에서 제대로 된 지원을 받게 하여 그 사람을 고치기 위한 여러 방향의 조울증 관련된 학문 의학사들을 선택하게 해 주어 여러 방면으로 상담을 진행하게 시간적으로나 자본적으로나 확충되어 지원을 해줄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하는데 그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법은 전혀 아닙니다. 추가적으로 그 가족들의 지난 삶들과 연계해서 유년 시절부터 상담이 제대로 들어가 줘야 하는 것 또한 맞다고 봅니다. 지난 조울증 환자들의 가족과도 인터뷰를 했던 경험에서는 가족들간의 문제 또한 이 조울증의 치료에 많은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럼에도 이 병을 환자 스스로에게 짐을 지우게 하는 현실은 조울증 치료에 많은 장벽이 되지요.


이런 말을 한다고 해서 의사들이 알고 있다고 말한다면 되게 뻔뻔하다고 말해야 할까요? 아니요, 분명 알고 있는 의사들도 있지만 이 병명 이외에 수 많은 정신질환, 알 수 없는 비슷한 정신질환들이 많은데 그들이 디테일하게 신경쓰고 공부하기엔 너무나 제한적인 내용들이 많지요. 그래서 의사들은 겸손하게 환자들의 삶을 존중하고 환자의 집안 사정을 고려할 수 있는 인터뷰를 통해 국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방법들을 고려했으면 아주 이상적이겠지만 그게 의사의 본연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한명도 없겠다는 생각은 어느 누구나 다 할 것임을 알기에 그러니 치료가 안된다는 사실또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조울증은 조증과 우울증이 번갈아서 나타나는 증상입니다. 감정에 대한 기복이 심한 병이죠. 언제 우울해지고 언제 즐거워질 지 모릅니다. 저는 이 병을 컨트롤 하기 위해 심적으로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그 고민을 통해 어떻게든 저는 삶을 의미있게 살기보다 아프지 않게 살기 위해 마음속으로 심히 고민했습니다. 아프지 않는 방법, 결정하고 움직이는 것입니다. 미리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후회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무에게도 기대하지 않는 것입니다. 할 수 있는 한 많은 것들을 기록하고 배풀고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런 결정을 심적으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껏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다만 이제는 제가 시간이 주어지는 한 제가 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을 해볼 생각입니다.


누구나 다 말하고 싶어하지만 말하지 못하는 많은 것들, 이제는 중도가 어떤건지 그것에 대한 경계에 대해서 저 자신에게 겸손하게 많은 것들을 이야기할 수 있는 시기가 되었다고도 보고 그러한 마음의 결심에 구심점이 된 시기가 현재 이 시점이라고 생각이 되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이러한 글을 보고 좋다고 생각할 수 도 있고 조증이 실현된 것이 아닌가 판단할 수도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방법은 중도입니다. 절대 흐트러지지 않고 내가 실천한 모든 것들이 그저 기록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면 되는 것입니다. 결과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한사람에게 전달이 된다면 그 방법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아마 이 글을 읽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조울증에 대한 정보일 수도 있고 정말 이재명 도지사와 관련된 이야기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사람들이 조울증에 대한 편견보다는 시간이 지나면 조울증에 관련한 발전된 정보들을 업데이트를 했으면 좋겠는데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어 보이길래 저라도 이렇게 살아남아서 생각하고 느끼게 된 새로운 정보들에 대해 기록해 보는 것입니다. 훗날 이 정보들이 발전하여 제대로 된 치료방법으로 많은 사람을 치료한다면 말이죠. 정말 현재의 제도로 인해 의사들이 환자들을 제대로 치료하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을 깨닫는 의사들이 많다면 말이죠. 알고도 바꾸지 못하는 의사들이 많은데 정말 좋은 생각을 하는 의사들이 많아지고 힘을 보태서 아픈 사람들이 세상을 다시 생각할 수 있게 많은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이렇게 글을 마무리 하며 좋은 글이라고 생각된다면 추천을 부탁드립니다.

어떤 주제든 생각할 수 있는 글들을 쓸 기회라면 포스팅을 계속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힘내시고, 제가 글을 안쓴지 오래라서 최근에 접속하고 글을 쓰려고 하다보니 제 유튜브 영상을 보고 블로그에 방문해서 방명록에 글을 남겨주신 분도 계시더군요. 한명 두명씩 이렇게 소통이 진행이 되는데 어떻게 보면 저는 두렵기도 합니다.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이 저와 같은 고통을 느끼기 전 단계라고 생각되기도 하는데 그 간격을 어떻게 극복하게 만들 건지에 대한 자신은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저 제 얘기하느라고 바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정말 두려운 일입니다. 지난 과거의 고통들은, 그래서 자신있게 말하는 것 조차 다른 사람에게는 잘못된 희망이라고 판단될 수 있습니다. 제 글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한 둘씩 계속 생기고 제 영상에 대해서 응원하는 사람들도 많이 생기고 그것에 대해 생각을 거의 안해봤습니다. 그런데 가면 갈수록 사람들은 고통속에서 살고 있는 공감하는 인물을 찾고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그 인물이 고통을 겪고 있는 자신이 되길 장려합니다. 그러면 더 이상 그 고통은 단순한 고통이 아닌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고통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렵지만 그 어려운 과정을 지나가는 것 또한 많은 표현을 해야만 하는 것 또한 제가 이미 겪었기에 말하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충언은 살아남으라는 것입니다.

"살아남으셔서 다행입니다. "


끊임 없는 삶의 생존력과 가장 잘 어울리는 이미지인 잡초를 올려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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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이재명 지사 친형의 사망관련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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