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양면성을 깨닫게 해주는 교과서, 조던 피터슨의 [12가지 인생의 법칙] 책을 읽고


첫장부터 그렇게 가재녀석이 나를 괴롭힌다. 조던 피터슨 교수는 그렇게 가재에서 인간이 어떤 존재인건지에 대한 힌트를 얻는다. 그 맛있는 가재가 우리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주장한다. 나름 처음에는 집중해서 잘 보았다. 나중에 알았던건데 내가 이 책이 두달 가까이 걸려서 완독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도대체 이 책이 몇 페이지인지 그때부터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552페이지였다. 내가 왜 책을 다 읽고나서 몇 페이지인건지 알았냐면 그 이유는 내가 e북을 읽었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e북으로 책 읽는 능력에 무슨 문제가 있고 철학에 관련한 내용들이 어려워서 읽는 게 오래 걸린 줄로만 알았다. (사실 철학에서 몇가지 난해한 이야기들이 종종 있었다.) 하지만 552페이지에 게다가 철학, 사상, 심리, 오묘한 내용, 역사, 개인사, 개와 고양이, 마블, 디씨, 심슨, 소크라테스, 니체, 구약성경, 신약성경, 등등 12가지 인생의 법칙에 별안간 그의 무궁무진한 지식들이 너무나도 많이 적혀있길래 완독을 하는게 대단히 힘든 여정이긴 했다. 나는 무수히 많은 인생의 법칙들 그것들을 중간중간 잘 흘려보내들으면서 포인트가 있던 이야기들을 나름 기억하는 것에 만족을 해야했다.



그 중 철학이란 학문을 이해하는 게 대단히 어려웠던 것도 있었지만 은연중 몇가지 내용들은 조금만 집중해도 잘 이해할수 있었다. 내가 나이가 올해 30대 중반이 되어서 그런가 그래도 어려운 철학내용들을 너무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저자 피터슨이 글을 잘 써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이 책은 밀리의 서재 '오디오 북'을 먼저 들은 후 읽게 되었는데, 역시나 오디오 북은 들을게 못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조던 피터슨의 책을 제대로 읽었는지 의심이 될 정도였다. 이 책은 기독교를 찬양하는 을 찬양하는 색채가 전혀 아니었다. (오디오북에서는 저자가 기독교에 대한 종교를 부정하는 건지 믿는건지 이해가 안된다고 비판했다. ) 오히려 '신은 죽었다' 라는 명언을 남긴 철학가 '니체'를 칭찬하고 찬양했을 정도로 신을 믿는 정신에 대한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다. 

요즘 코로나 19 를 통해 기독교에 대해서 많은 편견이 생겼을거라고 믿는다. 나는 그러한 타이밍에 이 책을 읽게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는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에 대한 내용을 잘 정리 해 놨는데 거기다 과학과 종교의 상관관계까지 말이다. 사실 나는 성경에 대한 관심이 하나도 없었다. 그들은 믿음에 대한 의지가 강했다. 나의 어머니가 믿는 종교에 대해 강요하는 의지가 강했던 것 처럼, 그래서 나는 성경에 대해서 알려고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나는 이번 기회에 조던 피터슨의 12가지 인생의 법칙 책을 읽고 과학도 종교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곤 한다. 물론 나는 30대에 들어섰을 때부터 과학을 종교라고 생각하기로 조금은 도전했었다. 그저 살다보면 알게된다. 과학이 항상 맞는 것도 아니면서 그렇게 고집을 피우는 사람들을 보면서 말이다. 

조던 피터슨은 하버드 대학교 학생들을 가르쳤던 교수이고 지금은 토론토 대학교의 교수이다. 최근 배우자 타미 피터슨이 암에 걸려서 완치되기 전에 자신도 심리적으로 불안해서 약을 복용하다가 아내가 완치되는 순간 자신이 이 약에 중독되 병원에 입원되어 치료했다. 그의 유튜브 채널 조던 B 피터슨에 최근에 올라왔던 영상에서 보면 그는 약물에서 헤어나올 수 있게 노력중이라고 한다. 


[조던 B. 피터슨 유튜브 페이지에 딸 미카일라 피터슨이 최근에 올린 영상]

아래는 영상에 관련 글이다.




Hi everyone, it’s been months since we’ve given an update on Jordan and my family’s health and it’s time for one so here goes.


The last year has been extremely difficult for our family. Dad was put on a low dose of a benzodiazepine a few years ago for anxiety following

an extremely severe autoimmune reaction to food. He took the medication as prescribed. Last April when my mom was diagnosed with terminal cancer, the dose of the medication was increased. It became apparent that he was suffering from both a physical dependency and a paradoxical reaction to the medication. A paradoxical reaction means the drugs do the opposite of what they’re supposed to. These reactions are rare but are not unheard of. 


For the last 8 months he’s been in unbearable discomfort from this drug, made worse when trying to remove it, because of the addition of withdrawal symptoms, stemming from physical dependence. He experienced terrible akathisia, which is a condition where the person feels an incredible, endless, irresistible restlessness, bordering on

panic, and an inability to sit still. The reaction made him suicidal. 

After several failed treatment attempts in North American hospitals, including attempts at tapering and micro-tapering, we had to seek an emergency medical benzodiazepine detox, which we were only able to find in Russia. It was incredibly gruelling, and was further complicated by severe pneumonia which we’ve been told he developed in one of the previous hospitals. He’s had to spend 4 weeks in the ICU in terrible shape, but, with

the help of some extremely competent and courageous doctors, he survived.  The decision to bring him to Russia was made in extreme desperation, when we couldn’t find any better option. The uncertainty around his recovery has been one of the most difficult and scary experiences we’ve ever had.


So: Finally Dad is on the mend, even though there’s a lot of physiological damage that he needs to recover from. He’s improving, and is off the horrible medication. His sense of humour is back. He’s smiling again for the first time in months, but he still has a long way to go to recover fully.

It appears that we are going to get through this by the skin of our teeth.


So let me make a couple of things clear:


1.    Neither our family nor the doctors here believe that this is  a case of

psychological addiction. 

2. Benzodiazepine physical dependence due to brain changes can occur in a matter of weeks. It can be made even worse by paradoxical reactions that are difficult to diagnose, and can be extremely dangerous.

3.    We’ve been told and hope that Dad will recover fully but it will take time and he still has a ways to go.

4.    We are extremely lucky and grateful that he’s alive.


The next update will come from him directly. Thanks again for all the support.



다음은 영상관련 글에 대한 번역이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요르단과 우리 가족의 건강에 대한 정보를 받은 지 몇 달이 지났으므로 이제 다시 이야기할 때 입니다.


 작년은 우리 가족에게 매우 어려웠습니다. 아빠는 몇 년 전에 저용량의 벤조디아제핀을 복용하여 불안을 겪었습니다.

 음식에 대한 극도의자가 면역 반응.  그는 처방 된대로 약을 복용했습니다.  지난 4 월 엄마가 말기 암 진단을 받았을 때 약물 복용량이 증가했습니다. 그가 약물에 대한 신체적 의존성과 역설적 반응으로 고통 받고 있음이 분명해졌습니다.  역설적 반응은 약물이 의도한 것과 반대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반응은 드물지만 아직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지난 8 개월 동안 그는 이 약으로 견딜 수 없는 불편함을 겪었으며, 신체적 의존성으로 인해 금단 증상이 추가되어 제거하려고 할 때 악화되었습니다. 그는 끔찍한 무신경증을 경험했습니다.이 상태는 그 사람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끝없는 저항 할 수없는 불안을 느끼는 상태입니다.

 공황 상태, 그리고 계속 앉을 수 없는 이 반응은 그를 자살하고 싶게 만들었습니다.

 테이퍼링 및 마이크로 테이퍼링을 포함하여 북미 병원에서 여러 차례의 치료 시도 실패 후, 우리는 러시아에서만 찾을 수있는 응급 의료 벤조디아제핀 해독을 찾아야했습니다. 그것은 엄청나게 거칠고, 우리가 이전 병원 중 하나에서 개발했다고 들었던 심한 폐렴으로 인해 더욱 복잡해졌습니다. 그는 중환자 실에서 4주를 끔찍한 모양으로 보냈지 만 그는 매우 유능하고 용기있는 의사들의 도움으로 살아 남았습니다. 우리가 더 나은 선택을 찾을 수 없었을 때 절망에 빠졌고, 그를 러시아로 데려 오겠다는 결정을 했습니다. 그의 회복에 대한 불확실성은 우리가 경험했던 가장 어렵고 무서운 경험 중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 마지막으로 아빠는 회복해야 할 생리학적 손상이 많이 있더라도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는 개선 중이며 끔찍한 약물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의 유머 감각이 돌아 왔습니다. 몇 달 만에 다시 웃고 있었지만 여전히 완전히 회복하기에는 아직 멀었습니다.

 우리는 곧 위기를 극복 할 것으로 보입니다.


 몇 가지 사항을 명확하게 설명하겠습니다.


 1. 우리 가족이나 의사들은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믿지 않습니다

 심리 중독.

 2. 뇌 변화로 인한 벤조디아제핀의 신체적 의존성은 몇 주 안에 발생할 수 있습니다.  진단하기 어렵고 매우 위험 할 수있는 역설적 반응에 의해 더욱 악화 될 수 있습니다.

 3. 우리는 아빠가 완전히 회복되기를 희망하지만 시간이 걸리고 여전히 갈 길이 있습니다.

 4. 우리는 그가 살아있어서 정말 운이 좋고 감사합니다.


 다음 업데이트는 조던 피터슨이 직접 할 것입니다.  모든 지원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이 영상은 피터슨의 딸 미카일라가 올린 영상이다. 


아무쪼록 빠른 회복을 바라는 심정이다. 가끔 SNS 를 하다보면 호기롭게 댓글을 달다가 큰 코 다치는 경험들이 몇번은 다들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나 같은 경우도 멋 모르고 페미니스트라고 하는 사람에게 쓸데 없는 반박을 하다가 뭔가 프레임에 나를 가두게 하려는 생각을 하였고 그걸 굳이 댓글로 싸우는 것이 말이 안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나또한 똑같은 행동을 하려 했었던 일이 있었다. 그리고 그 페미니스트는 프레임이라는 말에 결국 더 이상 댓글은 달지 않았다. 그 순간 나는 되게 뭔가 착한 마음을 갖고 선의의 댓글을 단다는 게 되게 미련한 짓이면서도 나를 속이는 짓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종종 페미니스트는 뭔가 선의적인 이야길 꺼내기 위해 말을 시작하면서 상대방의 헛점을 갑자기 물고늘어지는 경향이 있는 것을 관찰하게 된다. 모두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조던 피터슨이 상대했던 여자앵커의 경우도 비슷했다. 논리의 비약이 되게 논리적으로 들리면서 상대방의 진중한 의사의 방향이 다른 방향으로 향하게끔 하는 진보하는 대화가 아닌 왜곡된 대화로 진행되면서 결론은 페미니스트가 승자가 되어야만 하는 비굴한 대화로 끝나게 된다. 그것을 흔들리지 않고 모든 이야기에 답변을 해서 화재가 되었던 사람이 바로 조던 피터슨이다.



패미니스트 앵커와의 대결을 아직 못보신 분이 있다면 감상해 보시라. 사람을 어떻게 진정시키고 마지막엔 자기편으로까지 만들어버리는 화술의 신이라고 보여진다. 지금은 피터슨이 많이 힘들지만 역시 그의 힘을 우리는 다시 원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화재의 영상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은 대단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고 보였다. 그리고 그의 영상들을 많이 찾아봤다. 인생에 있어서 교훈이 될 만한 이야기를 권위있는 교수자리에서 끈임없이 열정적으로 하고 있었던 그의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그리고 나도 그의 생각을 배우고 그의 느낌을 읽고 있다는 것이 대단히 영광스러웠다. 우리는 조던 피터슨과 같은 자신만의 인생철학이 있는 삶을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건지 모른다. 그저 매일 같이 어디에 끌려다니면서 자신의 주장보다는 누군가의 주장에 의해서 끌려다니는 쾌락의 구렁텅이에 빠져 자신도 언젠가 그런 꼴을 당하게 될지 모르는 그러한 불안감에 매일 같이 살지는 않으련지 모른다. 아마 내가 그랬던건지도, 그래서 나는 조던 피터슨과 같은 자기생각이 확실한 삶을 살길 원했다. 물론 여유가 되지 않는 현실이 있지만 나는 그것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 최근 읽는 책들이 대단히 나에게 용기를 주었다. 울트라러닝이라는 책에서 나왔던 세상을 놀라게 한 게이머의 일화에서도 자신만이 고수했던 생활방식으로 결국은 해내고 말았다. 나도 인생을 포기하지 않기위해 그 날이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하루도 나 자신을 놓지 않고 결국 내 인생을 채우면서 살기로 결심했다.

그 결심은 쉬운 생각은 아니다. 다만 그래도 가능성을 매일 생각할 수 있는 아침을 맞이한다. 새벽에 일어나는 습관은 정말 신이 나에게 기회를 준것이라고도 무방할정도로 너무나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물론 나는 무신이지만 나만의 종교는 있다. 세상 그 어느누구와도 같은 공통의 신이 아닌 나만의 신이 있다. 나만의 신을 위해 나는 예의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동방예의지국다운 발상이지 않는가? 나의 신을 위해 나를 아껴야 하기에 남을 아낄 수 있다는 뜻이 바로 예의라는 의미와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한다. 예의는 상대방이 어기면 그것은 나만의 신을 무시한 것이나 다름 없다는 뜻이다. 그러한 사람은 사람처럼 보여도 사람이 아닌 것처럼 생각하면 편하다. 반면에 그가 예의를 갖추어 나에게 찾아온다면 먼저 나만의 신에게 인사를 한것이니 그에 따라 나도 나의 신을 대접한 만큼 그에게 예의를 갖추어 사람답게 표현하고 대접한다. 이것이 바로 나의 신을 위한 나만의 삶의 룰이다. 그래서 나는 조던 피터슨이 말한 자아가 두개가 있다는 이야기에 대해서 대단히 공감했다. 원래부터 태어났을때부터 있었던 하나의 자아, 거기에 내가 들어와 살면서 세상을 배우고 느끼는 것을 이 생존자아와 함께 해 나간다. 두개의 자아는 분명 있다. 그러나 그 생존자아는 언제 어떻게 나를 속이려 들지 모른다는 것에 무척이나 재미있다. 그것을 즐기는 방법을 이 조던 피터슨 교수는 알고 있었다. 어떤 자아를 택할지는 사회성이 존재하는 자아가 결정할 수 있다. 그것을 깨닫고 의지가 있고 실천하고 집중할 수 가 있기때문이다. 갑자기 내가 이런 이야길 하는 이유는 조던 피터슨 교수가 대단히 존경할만 한 철학을 가지고 있고 그가 말한 대부분의 것들이 이해가 쉬웠고 그를 이해하는 사람들이라면 나의 이야기가 그렇게 말이 안되는 이야기가 아닐 것임을 이해할 것이다. 

나는 이 책의 ‘법칙1 어깨를 펴고 똑바로 서라’ 를 읽고나자 마자 매일 같이 어깨를 피는 연습을 했다. 의식적으로 어깨를 피는 것이 나에게 좋은 기운을 끌어내준다고 생각했다. 어릴적 나의 공부버릇은 책을 파고드는 습관이 있었다. 좁은 곳에 파고 들어가서 그것에만 집중하는 능력을 보였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몸에 안좋은 습관이라는 것을 어느순간 외면하고 말았다. 그러한 기운에 나는 밤이 되면 무척이나 예술가 다운 면모로 잠을 청한다. (몸을 옆으로 해서 수그리고 잔다.) 그렇게 하면 나는 왠지 위로를 받고 무척이나 편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요즘은 새벽에 일어나다보니 갑자기 잘때 자세가 바뀌었다. 올바르게 잔다. 몸을 일자로 펴서 잔다. 몸을 수그리는 행위가 오히려 숨이 막힐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차라리 몸을 쭉 뻗어 스트레칭 한 자세로 혈액순한을 돌게 하는 것이 몸이 훨씬 원하는 느낌이다. 그렇게 자면 아침에 일어날때도 크게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그리고 새벽부터 운동을 하는 것에 대해 무척이나 힘들면서도 결국 해내게 되면 군대때 활기넘쳤던 기운들이 다시 돌아온다. 정말이냐고 물어볼수도 있겠지만 기분만큼은 그렇다. 집중력이 대단히 향상이 된다. 

어깨를 펴고 똑바로 서라는 것은 정말 삶에 있어서 중요한 원칙이다. 나는 그렇게 조던 피터슨의 1법칙을 의식적으로 생각하고 산다. 물론 바로 고치기는 어렵지만 계속 의식할때마다 내가 몸을 수그리고 있으면 어떻게든 몸을 올바른 자세로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그것이 정말 나에게 있어서는 소중한 습관이 되었다.

‘법칙 3. 당신에게 최고의 모습만 기대하는 사람과 만나라‘ 이 파트는 정말 나에게 좋은 이야기임에도 불구하실제로 그런 사람이 주위에 없다는 것이 되게 안타까웠다. 지금은 그러한 사람들을 찾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나는 드디어 좋은 사람들을 만나가고 알아가고 있다. 이것은 언제여도 관계없다. 자신이 그러한 마음을 받아들이고 리드하고 관리할 수 있다고 여길때부터 시작해도 되는 것이다. 욕심을 내서는 절대 안된다는 삶의 법칙을 이해하고나서부터는 많이 느끼고 있다. 적절한 시점에 나는 연을 만나고 이어가는 것을 중시할 것이다. 

그 이야기에 이어  ‘법칙 4. 당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고 오직 어제의 자신과 비교하라’는 요즘 내가 생각하고 있는 일본의 기업정신인 ‘카이젠’ 의 삶의 공식을 대입하면 정말 좋은 말이라는 것을 공감한다. 매일 같이 나는 새벽에 일어나 운동을 하고 명상을 하고 일기를 쓰고 강의나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스피치를 한다. 이 모든 게 1시간 20분만에 끝난다. 이후 무엇을 하던 나의 자유이긴 하지만 이후 시간도 계속 체계적으로 지키고자 한다. 밥먹는 시간 20분, 청소하는 시간 20분, 씻는 시간 20분, 이 시간을 지키기 위해선 일단 PC와 모바일 기기를 멀리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1시간 20분 이후의 스케쥴이 어떻게 될지 나도 모르게 되버린 일이 한두번이 아니다. 1시간 20분 이후의 스케쥴은 아직은 조율단계이다. 좋은 습관이 만들어지는 것은 쉽지 않다. 다만 나는 정말 놀랐던 것은 언제부터인가 아침을 꼬박 챙겨먹고 있다. 정말 신기하다. 새벽형 인간은 아침을 먹는 것이 자연스러워진다. 원래 나는 아점과 저녁, 아니면 점심과 저녁을 먹는 생활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활동 패턴이 달라지면 자연스레 음식을 섭취하는 시간도 달라지게 된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너무 느꼈다. 이 이야길 왜 하냐면 어제의 자신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시작하는 시간을 분명 정해야한다는 것을 알아야한다는 것이다. 나는 새벽에 시작했고 그리고 매일같이 똑같은 생활패턴을 반복하면서 결국엔 못지키는 것이 많지만 반성을 언젠가는 하게 된다. 그리고 하나의 패턴을 추가로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면 어느순간 나는 하루를 채워가는 보람찬 하루들을 몇개씩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이것이 정말 매일 같이 지키기 쉬운 습관이라 인정이 되면 그때부터 나는 집중하기 시작한다. 계속 나는 효율을 원하게 되고 그것이 정말 무수하게 많은 일을 해낼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여유속에 다시 나는 성장을 하기 위해 무언가 또다른 자연스러운 시도를 하게 된다.

한번 산을 올라갈때는 그 길이 정말 힘들었다. 그러나 다시 똑같은 길을 가게되면 어렵지 않다는 생각, 게다가 심심하니까 다른 길을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든다. 익숙하기 전까지 고통은 나에게 뭔가 새로운 것을 시도하지 마라고 말한다.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난 그 자리에 올라가 있고 사람들은 이런 나를 보고 놀라워 한다. 물론 삶은 크게 변한 것이 없다고 나 스스로 생각하기도 한다. 그리고 예전 처럼 돌아가면 안된다는 생각보다 굳이 그런 삶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서 내가 그저 매일 같이 의미를 채우려고 사는 삶이 되게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습관이 생겼다고 인정한다. 

원래 사람은 어제의 나를 잊고 살기 마련이다. 하지만 좋은 습관을 하나라도 들이게 되면 그 기준으로 나는 매일같이 변화하지 않고 지키지 못하는 나 자신을 비판하는 시간이 결국 찾아올 것이다. 자연스레 나는 그 길에 몰두하면 된다. 이것이 진정 고통을 선택하는 자유인 것이다. 다만 누군가와 비교해서 이것을 하게 된다면 결국 조바심이 날 것이고 그것이 그 사람이 사라진다면 결국 다른 사람을 찾아야 한다는 약점도 존재할 것이다. 그러니 가장 좋은 상대는 나 자신이다. 말로는 정말 쉬운데 그게 어디 쉬운가? 대한민국의 공동체 사회에서는 그것이 불허와도 가까운 삶을 살아야 하니 말이다. 가족을 위해 어릴때부터 아이들은 안전한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이 다이지 않는가? 어릴때부터 나와의 경쟁을 이루고 성공하는 사람은 되게 소수에 불과하다. 정말 나다운 삶을 살기위해서는 어릴때부터 어제의 나와 경쟁하는 삶을 사는 것을 자연스레 가르치는 것이 어떨까?

그 방법에 나는 일기를 추천한다. 목표를 적는 것을 추천한다. 분명 좋은 효과가 있을거라고 본다. 그리고 그 기록들을 매일 같이 읽어보고 아닌 것 같은 목표들을 수정해라. 변하지 않는 목표가 생길 것이다. 그럼 그것이 당신이 해야할 것이다. 물론 이것들이 쌓인다면 당신이 해야할 것들이 어떤건지 수정하지 않는 일이 많아 질 것이다. 나는 아직도 많이 수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작업이 절대 쓸데없는 일이 아니다. 남에게 모든 것들을 보여주고 실패하느니 안보여주고 스스로에게 자문해보면서 매일같이 바꾸어 나가는 모습의 결정체를 세상에 보여주는 게 훨씬 대단하지 않던가?

말하고 싶으면 말하고나면 다른 계획을 꼭 세워야 한다. 실현하지 못한 중간과정에 있는 상태에서나 아니면 시작하기 전에 주위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은 그것이 끝이라는 뜻이다. 물론 말하고 이루는 과정도 있지만 그것이 되게 힘들다는 것은 스스로도 느낄 것이다. 힘들게 목표를 이루게 되면 무엇이든 힘들게 목표를 이루려고 하는 습관이 들게 된다. 당신은 목표를 쉽게 이룰 수 있는 것들로 세상을 놀라게 해야한다. 그래야 당신의 실력을 인정받게 된다. 우등생들은 그렇게 자신이 1등이라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그저 할 뿐이다. 당신이 할 수 있는 많은 어려운 것들을 그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시점을 판단하고 그때 할 뿐이다.

그러려면 자신을 알아야겠지? 어제의 나와 대결하라. 적당히 공정히 그리고 스스로에게 포상하라. 당신에게 계속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법칙 6. 세상을 탓하기 전에 당신 방부터 정리하라.’ 이것은 조던 피터슨 교수가 되게 안정적인 삶을 중시한다는 내용을 보여준다. 물론 이 말과 비슷한 말 중 하나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이불을 개라’ 다. 이것부터 하면 되게 하루가 달라진다. 당신이 얼마나 생산적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건지 그걸로 인해 얼마나 많은 결단력의 힘을 얻게되는지 모른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당신은 이 일을 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말한다. 간절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간절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일 뿐이다. 교육이라는 것이 정말 자신이 배우고 싶어야하는 것임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그 생각부터 고치지 않는다면 당신은 간절하다는 것을 불안하다는 것의 감정과 교차해서 그렇게 바꿔생각하라고 프로그래밍 됐을 뿐이다. 해봤으니까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된다는 착각을 할 뿐이다. 

이 밖에도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지만 사실 대체적으로 기억에 남는 내용은 종교에 관련된 서적인 성경이 가장 인상 깊었다. 나는 요즘들어 과학이란 것이 종교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과학이 언제부터 부상한건지에 대해 전혀 몰랐던 나는 이 책에서 기독교가 약해지면서 니체가 나오면서 과학이 발전하는 현상들이 있었다는 것을 보면서 그러면서 아직까지도 우리는 세상이 과학이 종교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우주라는 관점으로 보면 미개한 인간들이다. 그래서 과학이라는 것이 언제나 진리처럼 말을 하곤 하지만 그것이 세월이 지나면 명제가 틀렸다고 기준을 바꾸고는 한다. 과학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결국 그때는 영원한 것처럼 우리에게 거짓말을 했다라는 결론이 일어난다. 그렇다면 이것은 당시에는 종교적인 힘이 작용했다는 원리를 우리는 이해해야한다. 철학, 과학, 종교, 심리 등 이 모든 것은 같이 움직인다. 그래서 과학이 아무리 우리에게 유용하다고 강조해도 심리가 작동하지 않으면 결국 종교가 우세한 작용을 하게 된다. 무엇이 진리인건지도 모르고 존재하지 않는 누군가의 책임을 요구한다. 

‘코로나 19’ 사태와 관련해 신천지에 대한 언급을 하고 싶지 않았다. 시국이 시국인 만큼 신천지를 옹호하고 싶은 생각도 없고 신천지를 미워하는 국민들을 싫어할 생각도 없다. 그것이 마음의 안정을 얻게 한다면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행동이 과학을 종교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무엇이든 강압적인 현상이 일어난다면 종교와 종교간의 충돌이 일어난 것이다.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는 것이 바로 설득의 기술일 것이다. 그러려면 많은 공부가 필요하고 이해심과 참을성이 필요하다. 하지만 뭔지 모를 것에 대해 목숨이 걸려있다는 확신에 많은 의사나 과학자들이 자신들의 감정적 확신을 퍼붓는다. 그렇다고 그들이 잘못한 것이 아니다. 그들의 목숨도 소중한 것이니까, 그들이 코로나를 막지 못했다고 자신들의 경력이 나빠지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좋아지는 기회일수도 있다. 그러면서 한가지 의사들에게 존경스러운 생각이 든 것은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포기하지 않고 그들의 일을 한다. 물론 신천지의 종교인들도 똑같다. 그들의 시점은 자신들이 천국에 가야하는데 천국에 가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교주에게 설득당했다는 것 뿐이다. 과학은 일어난 일일 뿐이고 그것이 모든 상황에 적용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모든 상황에 적용된다는 사실은 익숙하다는 것과도 비슷하다. 그것중에 익숙하지 않은 위험한 현실이 발생하면 믿을 수 없는 기적을 바라는 것이 사람이다. 그러나 기적은 나타나지 않는다. 기적이 나타나게 만드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 말을 할 뿐이지. 사람의 얼굴을 하고 사람의 말소리가 들린다. 그것이 머리에서는 익숙한 프로그램과 주파수로 인식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뜻을 같이 하는 사람 이외에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아라. 이것이 그의 명령이다. 과학이 인생을 책임지지는 않는다. 그저 건강하게 사는 방법을 알려줄 뿐이다.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 또한 모두 알 것이다. 의사들이 그렇게 수많은 지식을 알면서 환자를 제한하면서 받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신념이다. 그 신념이 잘 못됐는가? 많은 환자를 돌보는 게 잘 못됐는가? 그에게 있어서 기술을 알고 그 기술을 행할 뿐인 사람이다. 그는 능력자가 아닌 기술자일 뿐이다. 그런데도 자신은 희생이라는 시점에 있어서 워낙 유능한 자가 되고 과학이란 기술을 대단히 신봉한 사람이 된 것이다. 많은 사람을 살릴 필요가 없는데도 말이다. 그들이 믿고 있는 종교가 잘못된 일을 하고 있음을 보고도 의사는 사람을 살리는 데 주력한다. 이것은 과학적이지 않다. 의사의 의무감은 종교적인 시점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저 사람들은 모두 선택적인 상황을 받아들일 뿐인 것이다.

상세히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나는 이 책을 보면서 종교와 과학, 심리 이 모든 것이 세상을 움직이는데 조율되고 있다고 보았다. 과학은 평소에 필요한 것이 아니다. 익숙하고 안전함으로 우리는 과학이 필요하다고 느끼지 않는 것이며 부족함이라는 것을 느낄때 우리는 과학을 찾는다. 과학에서도 못 찾으면 종교를 찾는다. 점을 본다. 미신을 믿는다. 믿을 것이 없으면 그 어떤 것이든 쓸모없게 된다. 현존하는 과학기술이 나를 살리지 못한다면 당신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신천지의 교주를 미워할 시간은 존재해도 신천지의 교주의 말을 듣고 얼마 남지 못한 삶의 현실을 보고 있는 사람이 원하는 미래는 무엇일지 생각을 해본다면 그들을 욕하기 전에 차라리 우리의 삶의 해결책을 어떻게든 찾으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그들보다 더욱 삶의 경쟁에 있어서 우위를 가지게 된다는 것임을 나는 강조한다. 

무엇이든 이 모든게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판단된다면 나는 제재를 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그것에 대한 냉정한 결정이 무엇보다 모두에게 필요하다. 혼란은 언제나 찾아오고 그것에 대처하는 스스로의 삶의 원칙을 결정하라. 나는 이 책을 통해 혼돈에 대해서 많은 이해를 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철학가들을 섣불리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사실도 충분히 깨달았다. 그것과 같이 이 책에서는 철학가들의 생각을 통찰력있게 해석한 내용을 보면서 철학에 대한 입문을 하기에도 좋은 지침서이다.

인생은 혼돈과 질서 이 두가지를 어쨌든 가져야만 한다. 양과 음, 선과 악, 이 모든 것은 필수이다. 쾌락을 택했다면 타락도 있는 것 처럼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고통을 선택해야하는지 정해야 한다. 혼돈은 언제든지 올 수 있다. 내가 오늘 행복해도 이 순간은 영원하지 않다. 그래서 1류의 인생은 고통도 즐긴다고 하지 않던가? 그러한 삶을 사려면 수많은 고통에 대한 통찰이 존재했을 것이다. 스스로 당신의 삶을 리드하기 위해서 이 책을 한번쯤은 꼭 봤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법칙 12에서는 그의 따뜻한 감성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그가 가지고 있는 많은 지식들을 이 책에서 어떻게 보면 뒤죽박죽 적혀있는 것 같으면서도 마지막엔 그가 되게 다른 동물들과의 소통을 적극적으로 장려한다는 말을 한다. 개와 고양이 이야기인데 웃겼던 것은 제목이 ‘길에서 고양이를 만나면 쓰다듬어주어라’ 인데  처음 내용에는 개에 대한 찬양을 했다. 물론 그 말을 한 이유가 뒤에 이어진다. 재미있다. 개와 고양이는 우리의 삶에 밀접하면서도 인간의 이중성을 보여주는 동물로 대표된다. 하나는 주인이고 하나는 종의 개념이다. 조던 피터슨은 자신의 딸이 키우고 있는 강아지 ‘씨코’의 인스타 태그도 공개했다.

자신의 딸과 아내 이야기, 살았던 고향이 무척이나 추웠던 이야기, 아이를 키울때 어떻게 해야하는 건지에 대한 이야기 등 그의 삶에 있어서 느꼈던 많은 이야기들이 이 책에는 녹아져 있다. 물론 조던 피터슨은 책을 처음 쓴 것은 아니었다. 그 전에도 쓴 책이 있었다. 이 ‘12가지 인생의 법칙’은 그가 부흥하면서 결국은 쓰게 된 책인데 당시 그는 SNS에 올려지는 글에 댓글을 달아주는 우리나라로 치면 ‘네이버 지식인’이나 ‘네이트 판‘ 같은 기능을 하는 포탈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네이버 지식인의 기능을 하는데 네이트 판의 인기기능이 활성화 된 짬뽕된 기능을 하는 포탈이었다. 거기에서 답변을 달아주다가 그의 성실한 답변 중에 인기 있는 글들이 점차 생기게되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수많은 법칙중에 책을 쓰면서 결국엔 줄여서 12가지로 정했다고 한다. 그의 해박한 지식들을 들으면서 많이 배웠던 시간이었다. 어려운 부분도 존재했다. 그것을 내 인생의 전부로 만들고 싶은 생각은 조금 어려웠다. 그러나 살면서 돌아볼 시간이 있다면 계속 나는 중간에 이해하지 못했던 많은 철학들을 깨닫게 되지 않을까 싶다. 철학이란 분명 중요한 것이다. 게다가 언제 우리는 우리도 모를 세상에 기록들이 떠오르는 것을 보고 또 다시 익숙한 공포에 다시 질서를 찾는 일을 하면서 잊혀졌던 똑같은 내용을 또 읽고 있을지도 모른다. 임상 심리학자 조던 피터슨 교수에게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이 배웠고 부족하지만 계속 배우고 싶다는 말을 남긴다.

책이 다 끝나고나서 해설이라는 부분도 존재한다. 노먼 도이지 라는 의학박사이며 토론토 대 정신 의학과 교수가 쓴 글이니 조던 피터슨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이 마지막 글을 보면 더욱 이해가 쉬워질 것이다.

이 밖에도 많은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다. 20세기 희대의 살인마 이야기, 사탄의 어원이야기, 데카르트, 도스토옙스키, 니체, 수용소 군도 등, 특히 성경에 대한 해석하는 감각이 되게 좋았다. 편견없이 이 책을 감상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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