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남산의 부장들' 적나라한 인간의 이중성, 그것이 이 영화의 전부다


자, 남산의 부장들, 개봉 한달만에 이 영화를 보게 되네요. 사실 정말 보고 싶었지만 계속 하는 일이 바쁘다보니 이번 기회에 보게 되어서 정말이지 역시나 영화관에서 봤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예전 백윤식, 한석규가 나왔던 영화 '그때 그 사람들' 과는 다르게 더 심화된 시각으로 표현한 부분에 대해 정말 좋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 ' 남산의 부장들' 에서는 바로 배우 곽도원이 맏은 역할이었던 박용각의 스토리 비중이 정말 컸다고 보입니다. 실화적 인물로는 '김형욱' 이라고 하는데 사실 역사상 이 분의 이야기를 많이 알지는 못했습니다. 이 분의 이야기가 정말 사건의 다각화를 보여준 면에 있어서는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물론 이 영화의 초점은 "각하 제가 어떻게 하길 원하십니까!" 에 있었습니다. 상명하복의 명령체계에서 영웅스러운 정의감에 속아 자신이 했던 일들이 각하라는 사람에게 있는 게 아니라 자신의 정의감이라는 것에 속아 일을 벌이게 된 김규평 역 (배우 이병헌)의 시점을 봤을 때 자신은 결국 실수했다는 것을 인정한 것입니다. 정의감에 속아 책임을 지지 못했다는 결국 그러한 시점에서 그 상태, 자신은 리더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육군 본부로 몸을 돌리게 된 것이죠. 

원래 이 화법은 되게 무책임한 말입니다. 가끔 박통(배우 이성민)가 "너는 내가 어떻게 하길 원하냐?" 라는 뉘앙스의 질문을 합니다. 윗 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물을때 말이죠. 아랫사람은 어떤 말을 하려고 할까요? 김규평은 완벽한 답을 원했을 것입니다. 답이 눈에 보이는 사내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박통이 원하는 답이 아니었습니다. 그러한 면에서 곽상천(배우 이희준)은 멘탈이 약해진 김규평의 빈틈을 파고들어 박통의 마음에 들게 되었죠. 



박통을 죽이기 직전 전장에서의 기억을 나눌때도 김규평은 그때 김규평이 결단을 내리지 않았다면 그 자리에 박통과 곽상천, 김규평이 모두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냐는 말을 합니다. 감독은 분명 김규평이 되게 수직적인 구조에 익숙하면서도 뭔가 누군가의 말에 반사적으로 옳은 말을 하는 인물임을 그려내고 싶어했음을 보여줍니다. 각하가 아랫사람들한테 했던 말을 각하에게 반대로 물어본다는 것은 너도 그러한 상황이 되어봐라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2인자의 삶이 전부였던 김규평 그에게 3인자는 죽음의 길과도 다름없었고 그러한 상황에 정상에 서면 자신이 어떤 일을 할지도 모르는 그러한 반사적 삶을 살아온 사내였습니다. 

박통의 진정한 2인자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2인자는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박용각(배우 곽도원)이 김규평에게 말했던 2인자가 누군지 확실하지도 않음에도 불구하고 흔들리게 된 김규평의 마음속에 결국 저질러진 모든 것들은 배신자들을 처단하고자 하는 마음이 강했을 뿐입니다. 김규평에게 1인자는 김규평이 말하는 이상이었습니다. 그 이상에 벗어난 자는 처단하는 것이 그의 목표일 뿐이었죠. 말 그대로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겠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이상적인 결과를 내지만 어떤 면에서는 극단적인 상황을 연출하기도 합니다. 

자신의 그릇이 아닌 그릇에 몸을 담구고 있으면 결국 탈이 난다는 것을 알려주는 교훈적인(?) 영화이기도 합니다.


역사적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 - 박정희 대통령 암살 사건 (1979.10.26)


이 영화를 보고나서 역사 강의 유튜버의 영상을 봤습니다. 영화가 개봉하기 전에 올라왔던 영상이며 이 영상 하나로 역사적 시점에 대한 이해와 영화를 보는데 맥락들에 대한 줄거리들이 충분히 이해하기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영화를 보고나서 이 영상을 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영화를 보고 물음표를 갖게 된 후에 그것을 해소하는 데 이 영상이 더욱 답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죠.


유튜브 '황현필의 한국사' - 김재규는 왜 박정희를 쏘았는가?


사실 제가 어릴때 박정희 대통령은 민주주의 시절의 대통령인가 아닌가 햇갈리기도 했는제 지금 시점에서 보면 민주주의가 아닌 공포에 사로잡힌 가짜민주주의였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머리에 총을 맞는 대통령은 역사적으로 보면 미국에 많습니다. 


[존.F 케네디]

역사적으로 암살당한 대통령은 우리나라에는 박정희가 최초이며 미국에는 링컨, 존F 케네디가 있습니다. 존.F 케네디와 박정희는 동일하게 머리에 총알을 맞고 죽습니다. 다만 존.F 케네디는 공개적인 행사에서 저격수에 의해 살인을 당하며 박정희는 만찬하는 장소에서 측근에게 죽임을 당하죠. 



이런 영화가 나올때마다 난감한 사람은 아마 가수 심수봉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역사의 호기심이 꺼질 무렵이면 이러한 궁극의 공포의 트라우마는 영화로 계속 제작되어질 것인데 말이죠. 당시 대통령의 권력은 북한으로 치면 지금의 김정은과 막먹는 수준이니까 말이니 당시 박정희가 암살당할때 만찬의 그 장소에 있었던 가수였으니 연예인이라는 직업이 남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데 있어서는 쉬운 상대였던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한 상대가 지금의 연예인이 아니라면 물론 엔터테인먼트 사업은 침체가 되겠죠. 반대로 다른 곳에서 집중이 될 인기가 만들어질 것이고 그것에 따른 반작용도 또 존재할 것입니다. 세상은 돌고도는 것이지만 가수 심수봉씨는 이런것들을 다 견뎌내고 살고 있는 것이며 그것이 그분의 운이라고 해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박용각 - 배우 곽도원]


저는 '남산의 부장들'에서 김규평이 행했던 친구라고 해야하는지도 궁금한 역사적으로 인간말종이었던 사람을 죽임에도 그 어떤 죄책감을 느꼈어야 했는지, 특히 박통은 그 이야길 계속 김규평에게 합니다. 박통은 자신을 배반할 것 같다는 어떤 압박감을 느꼈다고 해야할까요? 가장 이상적인 행동은 박용각을 박통 앞에 데려오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다만 박통은 김규평에게 잘못한 것이 있습니다. 상상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의 반증이 바로 "각하 제가 어떻게 하길 원하십니까!" 의 대사에 있습니다.

김규평의 이상은 혁명이었고 그것이 통하지 않는 현재의 시점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결과만이 자신의 룰이었습니다. 그러함에 있어서 18년간 정치를 해왔던 박통의 외로움 속에 박상천이 붙었고 박통이라는 각하가 혁명과 멀어지는 대상이 되면서 김규평의 혁명룰을 위한 희생량이 되어야만 했던 것이었습니다.


 

김규평은 혁명이라는 것과 멀어지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매너리즘을 참지 못했던 것입니다. 내려올 때를 몰랐던 것이었습니다. 반대로 박통은 권력에서 내려올때를 몰랐던 것이었습니다. 그 모든 것이 다 인간의 이중성, 똥 싸기전에는 배가 아프다가 똥을 싸고나니 개운한 느낌에 뭔가 아이러니한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속이 비워지니 밥을 괭장히 많이 먹기까지도 합니다.

김규평은 똥을 싸고나서도 똥을 싸기전 아픔을 기억하고 밥을 먹기전에 더 많은 똥을 싸기위한 준비를 하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렇게 말해서 더러워 보이긴 하지만 인간은 이중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곽도원이 맏았던 박용각 또한 대단히 역사적으로 더러운 행동을 해놓고서는 그것에 대한 책임을 전적으로 박통에게 지으려고 하고있습니다. 미국과의 사이가 안좋아진 현실에 박통은 위기감을 느꼈고 이젠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는 상황에 모든 것은 벌어지고 만 것입니다.



이 장면은 되게 1970년대 틱 하다는 느낌이 드는 사진입니다. 정말 재연을 잘한 것 같습니다.

규평이가 넘버2의 자리에서 계속 멀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이었죠. 



박통 역을 한 배우 이성민의 표현력은 정말 좋았습니다. 절제되고 캐릭터에 집중한 연기력, 부담되지 않고 매우 편안해 보였습니다. 가끔 어떠한 연기자들은 중년의 멋을 되게 특화하려고 어떤 캐릭터를 되게 살리는 경향이 있는데 스토리의 중심이 바로 무겁지 않은 상상하게 만드는 많이 힘을 버렸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정권의 말기에 대통령의 힘없이 방황하고 흔드리는 모습을 내재적으로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제를 위해서 역할중에는 힘있는 연기보다는 힘없는 연기가 필요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캐릭터가 극중 이병헌의 연기에 더욱 많은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이희준이 정말 아쉬운건 어떤 좋은 연기도 빛을 바라기보다는 사실 되게 실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뭔가 임팩트 있는 나쁜 행동이 없다는 것이 큰 문제라는 것입니다. 선한 사람은 역시 연기를 해도 선하게 보일 확률이 높습니다. 그러한 면을 버리기위해 해야할 연기자들의 숙명은 무엇이 있을까요? 정말 이희준이 1류 연기자가 되려면 겪어야 할 일들이 많을 것입니다. 나는 이희준이 되게 좋은 배우라는 것은 압니다. 하지만 연기를 잘하는 배우까지는 아니라고 생각이 됩니다. 정말이지 이번 연기는 분명 이전 연기작들보다 좋은 감정을 갖게 하지만 뭔가 항상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작품력있는 작품에서도 자신의 빛을 내지 못하는 배우는 성실하지만 뭔가 모른다는 것을 저는 이해합니다. 팬층이 있을것임에도 불구하고 예술성을 가지지 못하는 배우는 성실할 수 밖에 없는 것이기도 하죠. 배우로서의 고뇌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강동원, 공유 등 연기적으로 다작을 할 수 있는 조건에 들어가도 1류배우가 못 되는 이유는 그들이 그들 스스로 삶의 철학적 고뇌가 없기때문입니다. 남자로서 이희준은 되게 매력이 있는 사람입니다만 인간의 내면을 표현하는데 있어서는 그것이 큰 장애물이 됩니다. 

이 작품을 통해 이희준은 정말 가능성이 있는 배우(?) 임을 보여줬음에도 불구하고 배우생활을 한지 꽤 됐음에도 불구하고 이희준은 투자자들이 투자할 수 있는 배우는 아님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투자자들이 투자하고 싶은 배우가 되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적나라한 인간의 이중성

이 영화는 분명 사람의 이중성, 친구, 직장, 이상, 애국 등에 관련해서 여러가지 인간성의 갈등을 보여줬음을 시사합니다. 이중성은 사람들이 멀리하고 싶으면서도 놓이게되면 그게 당연하다는 이야길 합니다. 물론 나는 이것이 잘못됐다는 것은 아닙니다만 극단적인 결과를 보게되면서 정말 저렇게까지 됐어야만 할까라는 근본적인 모두들의 바램들이 들린다는 것입니다. 일이 발생하고나서야 양보를 해야한다는 말을 하는 것은 되게 못난 사람들이 하는 말일까요? 그저 우리는 흐르는데로 살뿐이라는 것을 먼저 알아야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집니다. 일어날때까지 일어난 것이 아니다. 살아남는자가 강자다. 모든 것이 당신이 우선이라는 것을 나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이 김규평이 선택했던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닌 이상을 위한 삶을 선택했을 때 벌어졌던 극단적인 역사의 현실을 봤을 때 무엇이 진정 자신을 위한 길인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게 되는 부분입니다. 가장 궁극적인 이상은 자신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길입니다. 남들이 세운 이상이 아닌 자신이 자신을 다스리는 것이 바로 가장 행복한 이상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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