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민석 - 신뢰의 이름을 말하다

  설민석, 그는 한마디로 역사강사입니다. 이런 그를 포스팅 한다는 것이 정말로 영광스럽습니다. 이 분과의 개인적인 인연은 고등학교 3학년, 2003년 수능 100일전 이벤트로 돌아갑니다. 고2때도 강의를 즐기면서 들었지만 그때의 일은 아직까지도 잊을 수 없는 그분과의 처음이자 마지막 소통이었습니다. 당시 수능 100일전 사회탐구과목에 대하여 설민석 선생님께서 일일이 온라인에 멘토로써 댓글을 다는 이벤트가 있었습니다. 선생님을 선택해야했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당시 문명, 김한상, 설민석 등등 유명한 선생님들이 이투스에 포진이 되었었죠. 당시 최진기 강사님은 못본 듯 합니다. 저는 당시 설민석 선생님을 선택했었습니다. 그리고 답변을 받았지요. 그 당시 제가 질문했던 내용은 잘 생각나진 않지만 설민석 선생님께서 직접 답변을 달았다는 내용으로 편지를 받았는데 그 대답은 결과적으로 우문현답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이후 사탐을 뛰어나게 잘 보진 못했는데요. 역사에 대해 무뇌한이었던 제가 그 분의 가르침 덕분에 역사에 대해 외우는게 아닌 예능처럼 즐겼던 생각이 납니다. 그 때 당시 그 분의 가르침이 얼마나 재미있었던지, 다른 친구들은 대세를 따랐지만 저는 이투스를 사수했었죠. 

  2002년도 가을때 무렵이었나요. 그때부터 인터넷강의, 줄여서 인강이라고 합니다. 인강유행의 붐이 처음으로 일기 시작한 때였습니다. 그 전에 메가스터디라는 곳이 이미 학습지에서는 독보적인 존재였기 때문에 대부분의 학생들이 인터넷 강의의 시작을 이케이스로 따르는 추세였습니다. 고3때도 단체로 인강을 청취하는 붐이 일었는데 저만 사탐만은 설민석 선생님의 강의를 들어보자고 이야기를 해보았죠. 그러나 그 반은 인문계스카이반이라서 역사의 기초를 세우는데 탄탄한 설민석 선생님의 강의를 들을 필요가 없었던 친구들이었습니다. 왜 하필 수학을 잘해서 문과 스카이반에 들어가서 힘들게 살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이 시기에 그 친구들과 자주 연락하는 것도 아니기때문입니다. 역시 친구들은 고1때 친구가 평생가긴 하더군요. 예전에 사고를 많이 쳤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연락되는 친구들은 고1때 친구입니다. 제 나이 올해 34살이지만 아직도 연락됩니다. 회비도 내고 있구요. 그러니 학생여러분들이 이 글을 보신다면 고3때 친구들에게 잘할 필요 없습니다. 고1때 친구들 챙기세요. 


 다행히 그를 알고 있다는 것을 제 과거 싸이월드 미니홈피에서 뒤적이다 보니 그 분의 젊었을때 모습을 찾게되었는데요. 



이 사진을 싸이월드에 올리자 친구들의 반응은


설민석과 김한상 덕분에 역사와 보카(영단어)를 알게 되었죠.

참고로 댓글로 욕을 한 친구가 고등학교 3학년때 전교 회장을 한 친구입니다.




이름 : 설민석

태생 : 1970년 10월 10일생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 역사교육학 석사

단국대학교 연극영화과


  처음 이투스 강의에서 그 분을 봤을때 연세대학교 출신의 강사라고만 알고 있었습니다만 십여년이 지난 최근에서야 그분이 단국대 연극영화과 출신이었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어쩐지 너무나 극적인 요소로 재미를 주었었던 기억이 모두 연극을 했던 경력으로 비롯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최근 이 분의 활약상에 많은 정보들이 공개가 되기도 했는데요. 그로 인해 뭔가 유명해지면서도 그 유명세로 인한 사건들도 몇가지 생기게 되었는데요. 그럴때마다 저는 조금 마음이 아팠었네요. 

'민족대표가 룸살롱에서 낮술 마셨다'는 강의에 대해 입장을 밝혔다





 저는 학계의 비판적 견해를 수용하여 도서 및 강연에 반영하였으며, 

그 날, 그 장소, 그 현장에서의 민족대표 33인에 대해서는 여전히 비판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 날 그 사건에 대한 견해일 뿐이지, 민족대표 33인을 폄훼하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또한 그 날의 사건만으로 민족대표의 다른 업적들이 희석되거나 가려져서도 안 되며, 

그분들을 추모하여 의미 있는 활동을 하고 계신 유족 여러분들께 상처가 되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단지 당시에 목숨을 걸고 일본 제국주의와 싸운 수많은 학생들의 노력과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이름 모를 대중들의 숭고한 죽음을 널리 알리고 싶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제 의도와는 다르게 사건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유족분들께 상처가 될 만한 

지나친 표현이 있었다는 꾸지람은 달게 받겠습니다.

저 때문에 상처받으신 분들께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앞으로는 더욱더 신중한 자세로 역사 대중화에 힘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설민석 올림 -설민석 페이스북(17년 3월 17일)



 그 당시 설민석 강사님에게 어떻게보면 위기아닌 위기가 찾아 왔었었죠. 33인에 대한 비판이야기가 결국 그의 후손들에게  고소를 당했었지만 판결은 저는 이미 마음속으로 정해놨었습니다. 그 분의 행실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비판하기 어려운 훌륭한 표현력으로 사람들을 가르치는데 이미 정평이 나 있었습니다. 사람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써 누군가에게 어떤 표현을 할때 그 내용이 비판적이라고 하더라도 의미는 배우는 사람이 스스로 깨닫게 내용을 전달하는데 큰 촛점이 맞춰져 있는 부분으로 누군갈 비난하거나 피해를 주려고하는 의도적 사실이 없다는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죠. 설민석 선생님도 이에 대한 대응으로 굳이 감정싸움을 하지 않고 사과의 말로 좋게 이야기 한 그분의 정중한 태도를 봤을 때 인격적으로나 그의 의도성으로 보나 악의가 없었다는 것을 어느누구나 다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판결도 그렇게 났다는 것을 봤을 때 제가 좋아할 만한 훌륭한 분이란 것을 다시금 알게 해주었습니다. 그런 위기가 한번 지나가고 이후에 그 분의 활동은 지장없이 승승장구 했습니다.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에 나와서 역사를 주제로 한 랩을 만드는 무대를 훌륭하게 이끈 장본인이 었었죠. 이 모든 감각은 역시 연극영화과에서 배웠던 기술들이 한 몫 크게 했다는 평가입니다. 그가 가르쳤던 강의 중간중간에 했던 연기들은 지금도 기억이 남을 정도로 재미도 있고 가슴 깊은 감동도 주었지요. 




  예전에 jtbc 김제동의 '걱정말아요, 그대!' 2화에 제가 방청객으로 나온 이후 그 프로그램 23화였지요. 설민석 선생님께서 출연했다는 것에 너무나 감동스러웠었는데 조금 늦게 방청신청을 했었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당시 통일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대부분의 방송인들이 대놓고 하지 못하는 통일에 대한 이야기를 아주 긍정적으로 잘 풀어냈었던 강의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걱정말아요, 그대' 의 깨알 출현으로 인해 그의 방송가의 활동은 종횡무진으로 계속 될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그리고 그 생각이 점진적으로 맞아떨어지고 그가 정말 대중적으로 정점을 찍었던 것은 바로 천만영화에 대한 역사적 해설강의였습니다.


‘가장 평범한 아버지의 가장 위대한 이야기’ - 영화 국제시장

1950년대 한국전쟁 이후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격변의 시대를 관통하며 살아온 우리 시대 아버지 ‘덕수’(황정민 분), 그는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평생 단 한번도 자신을 위해 살아본 적이 없다. ‘괜찮다’ 웃어 보이고 ‘다행이다’ 눈물 훔치며 힘들었던 그때 그 시절, 오직 가족을 위해 굳세게 살아온 우리들의 아버지 이야기


천만흥행,위대한 전쟁/ 영화 - 명량


1597년 임진왜란 6년,  오랜 전쟁으로 인해 혼란이 극에 달한 조선.  

무서운 속도로 한양으로 북상하는 왜군에 의해 국가존망의 위기에 처하자

 누명을 쓰고 파면 당했던 이순신 장군(최민식)이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된다. 
 
 하지만 그에게 남은 건 전의를 상실한 병사와 두려움에 가득 찬 백성, 그리고 12척의 배 뿐. 

 마지막 희망이었던 거북선마저 불타고 잔혹한 성격과 뛰어난 지략을 지닌 

용병 구루지마(류승룡)가 왜군 수장으로 나서자 조선은 더욱 술렁인다. 

 330척에 달하는 왜군의 배가 속속 집결하고
 압도적인 수의 열세에 모두가 패배를 직감하는 순간,
 이순신 장군은 단 12척의 배를 이끌고 명량 바다를 향해 나서는데…!
 
 12척의 조선 vs 330척의 왜군! 역사를 바꾼 위대한 전쟁이 시작된다!



이 밖에도 사도, 암살, 인천상륙작전 등 다양한 역사영화를 인터넷 강의로 

흥행몰이를 했던 최초 역사영화강의 전문가 설민석이란 타이틀을 거머쥐게 됩니다.



 최근 집사부일체 방송이 2018년 7월 8일에 있었는데요. 그로 인해 더욱 유명세를 증명하게 되었죠. 



요즘 대세를 증명한다는 프로그램 '집사부일체' 그의 출연이 너무나 반가웠습니다.



  이 방송에서 그는 자신의 집까지 공개를 한 것으로 그의 모습을 세월이 지남에 따라 하나하나씩 공개를 한다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KBS 2TV 파일럿 프로그램이었던 1%의 우정에서 김종민과 함께 출연했었죠. 그는 어렸을 때 소아비만이 있었다는 가슴 아픈 사연을 공개합니다. 그로 인해 항상 식단을 조절해야만 하는 자기관리가 철저한 모습을 보여줬었죠. 어떻게 저렇게 바르게만 살아가면서 먹는 것에 대한 즐거움을 포기하고 살아야하는지 괜한 안타까움만 더했었습니다. 그의 생활은 자기관리를 철저히하면서 강의를 하루종일 준비하는 모습이 다였고 강의를 하는 모습이 다였습니다. 설민석이란 사람은 역사강의계의 역사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KBS2TV 파일럿 프로그램 - 1%의 우정


설민석이란 사람은 정말 세월이 가도 늙지 않는 한결같은 사람입니다. 

그가 항상 건강하길 바라고 우리나라의 역사계를 책임지고 강의를 하는 모습을

힘이 다할때까지 계속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그분이 나이들어감에 저도 같이 나이를 먹어가네요. 저도 설민석과 같은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언제나 보여주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항상 설민석이라는 신뢰의 이름으로 같이 하게되면 웃게 됩니다. 역사공부를 소홀히 했던 나라기 보다는 그가 강의함에 따라오는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지식은 우리내 생활에서 많은 도움이 되어갑니다. 내년이면 나이가 반백살이 되시는데요. 언젠간 저도 이분처럼은 아니더라도 한번은 꼭 만나뵙고 이야기를 나눴으면 하는 소망이 있습니다. 2003년 수능 100일전 저와 이투스에서 메시지를 주고받았다는 인사로 말이죠. 그렇게 하기 위해선 저는 어떻게든 그가 살아계실동안 최선을 다해서 좋은 일을 많이해서 사회적 위치에 설 수 있도록 해야겠죠! 인생의 버킷리스트, 플랜은 이렇게 세워져 나갑니다. 



 어렸을 때 그분이 하던 유행어 였던 '토해요' 

그 표정이 아직도 떠오릅니다.

날카로운 눈빛, 그리고 진지한 어조, 그 다음 그의 연기로 이어진

유행어 '토해요'

저와 같은 추억을 먹고 사시는 분들은 이 말이 낮설진 않으실겁니다. 

공감하신분들은 댓글 좀 달아주세요. 저도 반가울 것 같습니다. ^^


설민석님에 대한 북스토리, 포스팅을 읽어주신 분들께 대단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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