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 특집! - 광화문 광장에 세종대왕과 이순신의 아지트가 있다는데?

세종대왕과 광화문의 관계

  광화문의 원래 이름은 정문(正門) 이었는데 세종 임금 때 광화문으로 고쳤다. 광(光)은 빛나고 밝고 크고 바르다는 뜻으로 "이 문으로 나가는 명령과 교서가 모두 바르고 크고 빛나서 만백성을 교화한다" 라는 뜻을 지닌다. 즉, 광화문에는 '나라의 덕치(德治)와 문화가 천하 만방에 널리 미치게 하는 문' 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오늘 한글날이다보니 왠지 가야할 곳이 정해져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로 광화문역인데요. 이 곳에 가면 바로 세종대왕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광화문역 지하철에서 올라가다보면 오늘의 서울 날씨를 볼 수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흐린날씨였지만 사람들은 많이 나와있었습니다.



한글날인 오늘 정말 수많은 인파속에서 세종대왕을 기리는 행사를 광화문에서 진행하고 있었는데요.



저 뒤로 보면 충무공 이순신이 버티고 서있습니다.

사실 이순신 동상이 서 있는 곳에는 사람이 많이 없었습니다.

리더는 외로운 법이죠.



세종대왕 동상 앞에는 행사무대가 세트가 되어있었는데요.

오늘 무엇을 하려나 봅니다.



사람들이 조금씩 앉기 시작했는데요.



저분들이 오늘의 무대의 주인공인가봅니다.

저분들을 뒤로하고 오늘 가려고 했던 세종대왕의 아지트로 들어가보려고 하는데요.



세종대왕이 임금이 되신지 벌써 600년이 됐다고하네요.



풋처핸섭! (Put your hands up!)

도포자락 들어 올릴지 아는 간지 세종



세종의 나라사랑, 백성사랑의 정신으로 지금껏 대한민국이

한글의 힘으로 여기까지 왔다고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큰 업적을 이루신 분이죠.



광화문에 와보면 항상 덩그러니 놓여있던

측우기,



그리고 혼천의

오늘따라 유난히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며

외롭지 않은 한때를 보내는군요.



이날 날씨가 흐렸지만

어둠속에서도 당당히 우릴 지켜줄 것 같다는 세종대왕

그렇다면 이럴때 들어갈수 있다는

딱히 그렇지는 않지만

이럴때 들어가야지 재미있다는

바로 세종대왕의 아지트는 어디일까요?



그의 동상 뒤쪽으로 가봅니다.



눈을 아래로 내리다보면 그의 연보가 나옵니다.

정확히 1418년 8월, 그는 조선의 임금으로 즉위했고

이번해가 세종이 왕이 된자 600년이 딱 되는 해입니다.



1450년 (세종 32년, 54세) 2월 17일 (양력 4월 8일) 돌아가십니다.



운영시간은 월요일은 휴관이고 오전 10시부터 오후10시까지입니다.

관람료는 무료이니 서울에 오면 꼭 오셔야할 곳이란 것을

알아두셨으면 좋겠네요.

한글날이 아니더라도 한강과 더불어 꼭 가야할 명소이죠.


문이 양쪽으로 두개가 있는데요.

충무공이야기, 그리고



세종이야기라는 문이 있습니다. 



세종 이야기로 들어가면



그의 업적을 기리는 다양한 발명품들이 보입니다.



입장할때부터 디지털 스크린으로 

세종의 다양한 이야기를 그림으로 보여주는데 시선을 끌어당깁니다.



세종의 역사가 곧 한국의 역사라고

이런 문헌속에서 독도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세종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과 마찬가지이죠.

독도는 이러한 점에서 우리나라의 영토인데

분쟁은 그만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조금 들어가자마자 아이들이 세종대왕과 기념하여 사진을 찍는군요.

저도 이왕 온김에 사진 한방찍었습니다!

연예인 세종



양팔을 가지런히 모은 세종을 보면 쑥스러운 인상인 것 같기도 하네요.



광화문역에 위치한 세종대왕 박물관

위치는 



이곳을 참조하세요!



우리의 세종대왕은 서울 토박이

지금의 경복궁 서문인 영추문 근처에서 태종 이방원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SBS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 유아인이 바로 이방원 역할을 했었죠?



극 중 자신의 스승인 정도전을 철퇴로 내리찍는 연기

어떻게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가하는

잔인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었는데요.

실제 역사에서 이방원하면 '왕자의 난' 이라고 해서

자신의 형제를 해쳐가면서까지 왕위에 오른 역사가 있었기때문에

그런 냉정하고 잔인했던 태종 이방원 뒤를 이은

세종이 이런 대단한 업적을 이뤘다는게

조금은 의아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피가 어디가지 못해

세종의 차남 수양대군이 다시 '왕자의 난' 을 일으키죠.



이곳을 둘러보면 광화문이라는 명칭

언제부터 기록되었는지도 나오는데요.

세종 즉위 7년, 1425년집현전에서 광화문이라고 명명했다고합니다.

'왕의 큰 덕이 온 나라를 비춘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세종대왕 하면, 무슨 사상?

민본사상! 외우세요! 수능은 몰라도 내신 시험은 잘나오니까요.

난이도는 어려운 문제는 아니니 그래도 이게 기본이라는 것만 알고 있으면

적어도 반은 맞춘답니다.


그만큼 세종은 이 민본사상을 기초로 나라를 다스렸는데요.



노인공경, 가난해서 혼기 놓친 사람 결혼지원

이건 지금시대에도 꼭 필요한 정책인 것 같네요.



이 밖에도 부민고소금지법

이 법은 상급자를 고소하지 못하게 만든 법인데요.

예외 사항은 있었지만 자식으로서 부모를 고소할 수 없다는 논리를 적용한 법으로

예로운 법이라고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노비출산휴가제도

세종은 제생원(濟生院) 제도를 보완해 버려진 아이들을 구호하도록 했습니다.

버려진 아이를 기르려는 사람이 있으면 문서에 기재해 뜻대로 기를 수 있게 했구요. 

또 여자 노비들이 출산 중 사망하는 것을 막기 위해 

종전에 7일간 주던 출산휴가를 100일로 늘렸고 

출산 1개월 전부터 산모의 복무를 면제해 주도록 했고

그 남편에게도 한 달간의 산후 휴가를 주도록 했던 제도가 바로

이 노비출산제도인데, 지금 이러한 제도는 일반 직장인들 중에서

시행하고 있는 추세이긴 하지만 

아직은 시행이 되지 않고 있는 곳이 더 많죠.


전세제도 여론조사

육룡이 나르샤라는 드라마를 보다보면 거기서 나오는 고려말

권문세족과 손을 잡고 결국엔 조선을 건국하게 되는 이야기가 나오죠.


고려 말 권력을 장악한 신진 사대부들은 권문세족들의 토지를 몰수하고 

새로운 토지 제도인 과전법을 시행했습니다.

국가의 조세 수입 늘리고 신진 관료의 생활 기반 보장하는 것일 뿐 아니라, 

과도한 수탈을 금지하여 농민들을 보호하려 한 것이었다고 하죠.


이러한 백성을 위한 여러 제도들을 통해

세종은 백성을 위한 민본사상을 기본으로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세종과 관련된 드라마를 시청할 수 있도록 장소를 만들어놨네요.



"비구니가 꼈구나, 내가 세종인가!"



세종하면 최근판으로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 한석규가 연기한 세종이 있는데요.

역사왜곡 문제로 이런 곳에서는 잘 보이지 않더라구요.

세종대왕도 저런 욕을 할 수 있을거라고 보고 했던 센세이션했던 드라마였지만

결국 세종대왕 박물관에 나오는 드라마는 배우 김영철에게 밀린 안타까운 사연이 있네요.



이곳에서는 세종과 충무공에 대한 판화 이야기를 하는 행사장인데요.

전에도 한번 이곳에 왔었는데요. 그 때 당시 겨울이었을 겁니다.

이 장소에 외국인이 한글을 쓴 걸 전시한게 있었는데요.

그 글자를 보고 마음이 찡했던 것이

팔을 잃은 장애인이었는데

'마음'이란 글자를 자신의 몸을 이용하여 그렸던 내용을

전시했었던 것이 아직도 기억이 나네요.

'마음' 이라는 글자가 피도 다르고 생긴것도 다르지만

사람이라면 전달이 되었을 그 마음이란 것

다시 이 장소에서 보게 될거라고 믿었지만

언젠가는 다시 그러한 가슴 찡한 작품을 다시 만나게 되리라 믿습니다.



한글을 응요한 인테리어도 멋진 게 많습니다.

이런 세계적인 글자를 감상하는데 무료라는 것은 정말 좋은 일입니다.



이 곳은 훈민정음 인테리어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데요.

나랏말이 중국에 도달하여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아는데

중국의 왕에게 이 말을 전달하여 우린 다른 민족이란 것을 인정하라는

의사를 전달하려다가 신하들이 많은 반대를 했지만

결국 자주국이란 것을 강하게 이야기했었던 세종의 기세를 기억하게 되는

이 훈민정음 인테리어는 그때의 기세를 떠올리면서 감동을 하게 됩니다.

중학교때 국어 선생님이 훈민정음 내용을 외우라고 했던 기억도 나네요.



조명발, 얼굴발, 사진발 이런게 있겠지만

오늘만은 한글발로 사진을 찍어봤습니다.



세종의 어록을 살펴보면 지금에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정말 맞닿아있다고 해도 무방할정도로 비슷하다고 생각이 됩니다.



높은 학구열, 빠르고도 영민한 판단력,

게다가 절대음감까지, 세종이 절대음감이 있다는 것은

결국 예능에 대한 소질도 있다는 뜻이 되는데요.

독서때문에 눈이 나뻐진건지 

아니면 눈을 치료할 시기를 놓친게 독서때문인지

정확하게 기록해놔야 할텐데 말이죠.

역시 신하의 도리답군요.



이 곳에는 한글도서관이라고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있긴한데

소음에는 노출이 되어있으니 어느정도 가만하고 이용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여기엔 세종에 대한 기록을 전자기기를 통해 볼 수도 있으니

이런 부분도 잘 이용해 보시길 바랍니다.



이제 우리 한글이 어떻게 태어났는지 그 내용을 알아볼 차례인데요.



"나의 백성은 손이 있어도 글을 쓰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글을 읽지 못한다.

어리석은 백성들을 위해 조선엔 우리의 말에 맞는 새로운 문자가 필요하다."


이러한 세종의 결심이 결국엔 한글을 창조하게 된 것의 시작이었는데요.



유교적 세계관을 가진 사대부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밤낮없이 연구에 매진하여 한글 창제를 진행합니다.



어린 친구들이 많아서 인형을 보고 관심을 보이는 것 같네요.



아주 리얼하게 잘 만들어놨네요.



훈민정음은 완성했는데

최만리의 상소가 이어집니다.



중국의 눈치를 보고 있는 조선의 정세를 걱정한

최만리 등 7인이 성리학에 맞지 않다는 등의 이유로 

훈민정음 배포 반대 상소를 올립니다.




신하의 눈치를 조금 반영하듯 세종은 바로 훈민정음을 반포하진 않았지만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엔딩에서 보면

아이들이 한글을 그리는 놀이를 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요.

그런 것 처럼 신하들에게 용비어천가라는 악장, 서사시를 짓게 하였는데요.

권제와 정인지, 안지 등이 세종의 명을 받아 지었고

세종의 천애를 받던 신하인 성삼문과 박팽년, 이개 등이 주석을 달았죠.

(이 둘은 후세에 세종의 아들인 수양대군에게 죽었습니다.)

관련글은 아래 포스팅을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2018/10/01 - [플래너TP이야기/플래너TP의 여행기] - 노량진을 따라 사육신공원으로 - '내가 왕이 될 상인가'

정인지가 서문을 쓰고 최항이 발문을 하였습니다.

1445년(세종 27년)에 지어 1447년(세종 29년)에 간행하였습니다.

세종의 절대음감 능력에 영향을 받은건지 훈민정음을 반포하기 위해

유행가처럼 퍼트렸다는 말이 되는데요.

1446년 훈민정음은 그렇게 유행가처럼 백성들에게 세상에 태어났음을 알립니다.



세종의 업적을 전자문서로 볼 수 있게끔

중간 중간에 배치를 잘 해놨으며



왕위에 올라서 기념사진을 찍어놓을 수 있게 의전틀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것만 보면 무슨 교과서에 나올듯한 화면인 것 같죠?



한글을 디지털화면으로 옮겨놓은

깔끔한 맛에 벽화입니다.



이제 한글의 창제원리를 알아보는

중요한 문헌에 대해서 볼 수 있는 곳으로 가봅니다.



훈민정음 언해본은 통해 한문을 모르더라도 

한문을 먼저 쓰고 그 뜻을 한글로 해석해놓은 방식으로 써져있어서

훈민정음을 이해하기 쉽도록 써 놓은 책입니다.



동국정운우리나라 한자음을 최초로 우리의 글자로 표기한 책입니다.



월인천강지곡용비어천가와 함께 

훈민정음으로 표기된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가사입니다.



세종이 둘째아들인 수양대군에게 시켜서 만든 책이네요.

수양대군이 석가모니에 대한 책을 집필했다고 하니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하여 세조가 됐을 때

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아겠다는 예측이 되죠?



국보인 훈민정음 해례본이네요.

  훈민정음은 크게 예의()와 해례()로 나누어져 있다. 예의는 세종이 직접 지은 글로 한글을 만든 이유와 한글의 사용법을 간략하게 설명하였다. 해례는 정인지()와 최항(), 박팽년(), 신숙주(), 성삼문(), 강희안(), 이개(), 이선로() 등 세종을 보필하여 한글을 만들었던 집현전 학사들이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만든 원리와 용례를 상세하게 설명한 글이다. 우리가 국어 시간에 배웠던 "나라 말이 중국과 달라..."로 시작되는 글은 예의의 첫머리에 있는 서문을 우리말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흔히 『훈민정음 언해본』이라 부른다. 서문을 포함한 예의 부분은 무척 간략해 『세종실록()』과 『월인석보()』 등에 실려 전해져 왔지만, 한글 창제 원리와 용법이 소상하게 밝혀져 있는 해례는 세상에 전혀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런데 예의와 해례가 모두 실려 있는 훈민정음 정본이 1940년에 발견되었다. 그것이 이 『훈민정음 해례본』이다. 인류 역사상 문자가 그 만든 목적과 유래, 사용법, 그리고 창제의 원리와 세계관을 명확히 밝혀 만들어진 예는 없었다. 훈민정음이 유일무이하다. 따라서 훈민정음은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인류의 역사와 문화의 전개에서도 엄청난 성과이자 족적이라 할 수 있다. 이런 한글의 위상과 의미를 여실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 훈민정음해례본이다

간송미술문화재단 에서 가져온 글을 간추렸습니다.


이 책에서 한글의 창제 원리와 용법이 소상하게 밝혀져 있는 것, 그리고 세계관까지 

세상에 전파 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의 민족성이 증명해 준 사실이기도 합니다.

위대한 민족성을 입증해주는 자료인 것이죠.



훈민정음을 위한 초석을 만들어준 용비어천가





세계에서  가장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글자 한글,

이 한글의 원리에 대해서 설명을 해놓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한글을 국문으로 사용하고 있는 

찌아찌아족 이야기도 볼 수 있었습니다.



언어는 찌아찌아족의 음을 기초로

한글을 쓰는 것이죠.



과학과 예술분야에도 힘썼던 세종

그가 인재를 등용하는 능력은 가히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과학계에 장영실, 예술계에 박연

나라를 위한 인재 등용의 귀재였던 세종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영화 신기전이라고 아시나요?

그 신기전이 바로 이 신기전이라니

몰랐던 사실을 알게되었네요.

제대로 영화를 보진 않았지만 당시 흥행했었던 영화였던걸로 기억해요.

다시 처음부터 제대로 봐야겠어요.




과학과 예술분야에서 크나큰 발전을 이룬 세종의

여러 자료들을 여기 광화문 세종대왕 박물관에서 구경할 수가있는데

지금까지 찍은 사진만 보더라도 구경할게 정말 많다는 것을

알수가 있을 것입니다.



의전에 올라가 기념사진도 찍으실 수 있으니

가족나들이든지 연인나들이든지 한번은 꼭 오셔서

기념해보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네요.



계속 내용이 변하는 디지털 스크린은 

나갈때도 이 곳이 새로운 곳 처럼 보이게 만들어줍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 분들의 공연을 볼 수가 있었는데요!





이순신의 뒷모습을 보면서 저는 천천히 광화문 광장의 끝으로 향해갑니다.



그 끝엔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세월호의 이야기가 있는데요.

언제 끝나게 될련지 정말 마음이 짠하네요.

부모의 심정으로 이 싸움이 평생가는 것도

말이 안되는 것 같기도 하면서

끝날때까지 하지 않는다면 다시 이런일이 발생했을때

그때도 똑같이 끝나면 안될 것 같아서

사람이라면 측은지심이 생겨 그만 쉬라고 말하고 싶어도

말 할 수 없는 저 상황에 이 문제를 어떻게든 

누군가는 매듭지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렇게 광화문의 끝에는 세월호가 우리의 마음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생각을 심어주게 합니다.


그런데 충무공 이순신은 어디있냐구요?



다음화에 공개합니다!


2018/10/10 - [플래너TP이야기/플래너TP의 여행기] - 한글날 특집! - 광화문 광장 2편, 충무공 이순신 이야기



아쉬움을 뒤로하고

한글날 광화문 광장에 있었던 공연영상을

짧게 올립니다!

감상하시죠!



감사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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