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진을 따라 사육신공원으로 - '내가 왕이 될 상인가'




  오늘은 길을 따라 가본 곳이 바로 사육신 공원입니다. '사육신공원'은 역사에 있어서 무언가 좋은건지 나쁜건지 평가가 애매할 수 밖에 없는 이야기가 들어가야하는데요. 바로 계유정난과 관계되어 수양대군이 집권을 할 때 발생한 사건이기 때문에 6명의 관료들을 반역의 행위로 처벌한 사건인데요. 역모에 성공한 수양대군 입장에서는 반역이며 그 반대로 신하의 입장에서는 충신의 행동이었다고 보이는데요. 결론적으론 후세에는 그들의 충의가 훌륭하다는 평가가 이루어집니다. 역사에 관련한 이야기는 그렇게 알려고 하진 않았지만 역시나 궁금해서 가본 곳이 왜 지어진걸까 궁금해지는 순간 찾아보면 알게되는 역사의 배움, 어렸을 땐 도대체 역사를 왜 배우는지 모르니까 배워봤자 말짱 점수가 나오질 않는데요. 이렇게 호기심을 생기게 만드는 환경속에서 지내다보니 이렇게 저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이젠 어울리게 된 사육신에 대해서 공부하게 됐네요.



사실 반려견 하늘이와 주말마다 산책을 가려하다보니 

이번에는 집근처로 가려는 곳이 어디가 좋을까 찾다보니 

가다가 가다가 도착한 곳이 바로 이 사육신 공원이라는 곳이었습니다.


함석헌 선생의 <씨알의 소리> 중에서

수양대군이 불러온 피바람 속에서도

의<義>라는 것이 어떤건지 알게되었다는 이야기인데요.

사육신의 희생속에서 의라는 것이 어떤건지 알았겠냐는

그들의 희생을 칭송하는 내용인데요.

사육신하면 생육신이란게 있다는 것도 문득 떠오르실 겁니다.

역사를 잘 아시는 분들은 그런것에 대해서 모르나 싶은데

역사에 관심없거나 잘 모르는 분들은 이런 나들이 경험을 통해

호기심이 일어나 찾아보는 경우도 있을 거에요.

그러면서 역사를 배우는 것도 뭔가 뜻이 깊다는 생각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단 조금이나마 우리의 역사를 알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것에서 이런 공원을 소개하는 것도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무엇이든 역사는 쉽게 접근하고 바라보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쉽게 말해 사육신은 죽은 여섯명의 신하, 생육신은 살아남은 여섯명의 신하인데요.

사육신 : 성삼문(), 박팽년(), 이개(李), 

하위지(), 유성원(柳), 유응부()

생육신 :  이맹전(), 조여(旅), 원호(), 김시습(), 

성담수(), 남효온(또는 권절()

사육신은 왕위를 빼앗긴 단종을 위한 도모를 하다가 알려져 죽게 되었고

생육신은 단종이 왕위를 빼앗기자 관직을 내려놓고 바깥에서 세조(수양대군)의 

행동에 대한 비판을 하는 그런 일을 했다고 합니다.




영화 관상의 단종(세종대왕의 손자, 세종의 아들인 문종의 외아들)


문종은 왕위에 즉위하자마자 건강의 악화로 2년 3개월만에 39세 세상을 떠나면서

외아들이었던 단종이 12세에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역모를 꾀하여 왕위를 차지한 수양대군(세조)


영화 관상에서 수양대군 역할을 맏은 이정재


죽었기 때문에 그들의 업적을 높게 사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생육신은 왜 높게 평가가 됐을까라는 생각이 문뜩 들 수 있습니다.

그들만 관직을 그만뒀을 것인가라는 생각에

관직을 그만두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기 때문이죠.

관직에 있게 되면 평생 그들의 미래가 보장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부당하게 정권이 바뀐 일로 인해

수양대군 밑에서 신하의 노릇을 하지 못한다는 결단이

그 당시에는 쉽지는 않았을 것이었고

수양대군이 죽고나서 후세에 사육신이 재평가가 되면서

생육신의 행동들이 당위성을 찾으면서 

사육신 뒤에는 생육신이 있다는 것을 저는 무의식적으로나마

기억은 하고 있었습니다만 이번에 더욱 뚜렷하게 공부하게 되었네요.




이 사진은 무엇이냐구요? 바로 노량진 컵밥거리입니다.

노량진역 부근인데요.

이 곳 근처에 바로 사육신 공원으로 도달 할 수 있습니다.

노량진하면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공무원에 합격하기 위해서

또는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서 공부를 하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죠.

그런 성격을 닮은 곳이 바로 이 '사육신 공원'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육신 공원으로 들어가기전 첫 느낌은

사육신은 역사적 인물을 뜻하는 것이고

공원은 모든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곳인데

사육신 뒤에 공원이 붙으니

여러 사람들이 이용할 수는 있는데 역사적 의미가 있는 곳이라는

조금은 아이러니 한 부분이 생겼습니다.

역사를 보존하기 위한 역사 박물관이 떠오른다는 기존의 성격과는 다르게

뭔가 모두에게 열려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공원을 뒤에 붙이니

쉬운 느낌은 아니었습니다만 한번 올라가보기로 했죠.

개를 데려가도 되나 하는 생각도 들게 되었죠.




위치를 보면 강남에 위치한 좋은 환경에 있습니다. 

이런 곳에서 우리나라의 공무원들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답니다.

영화 관상에 빗대어 말해보자면

다들 그렇게 꾸미고 다니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공부하게 생기신 분들도 있지만

그곳이 배고픈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해 밥을 저렴한 가격에

파는 곳이 명소로 형성이 되버렸는데요.

뭔가 되게 웃픈 현실이기도 합니다.


어떤 곳은 지나가다가 밥이 너무나 많은데도 불구하고

안팔리는 데를 보니 조금은 씁쓸하기도 하더라구요.

사람은 많다보니까 박리다매를 통한 이익을 실현해야하는

상인들의 모습도 왠지 고민스럽게 보입니다.


그렇지만 이분들 덕분에 많은 고생하는 학생들의 배를 

배부르게 해주는 역할은 정말 크다고 봅니다.

노량진역 부근에 모습은 수산시장도 유명하지만

이 컵밥거리를 통해 순수한 학생들의 모습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정말 많은 인파에 대부분의 인상착의가 학생들이다는 모습이 보였는데요.

노량진의 지역적 특색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 컵밥거리를 지나쳐 사육신 공원에 도달하게 되는데요.



사육신공원으로 들어가는 길에 정조대왕 능행차 행사를 다음주 토요일날 진행한다는

피켓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정조의 아버지는 사도세자라는 것을 아실텐데요.

사도세자는 시대의 천재였습니다.

이미 자신이 모든 것을 아는 운명에 처했다고 봐야할까요.

왕의 운명을 거스를 수 밖에 없었던 자신만의 운명은

그로 하여금 자신의 자식에게 세상의 태평성대를 물려줄 만한

그러한 계기를 주게 됩니다.

조선시대 왕중에서는 세종과 더불어 최고의 업적을 기렸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태평성대의 시대를 누렸던 정조,

그러나 세상은 정조를 잘 모릅니다.

그 기준은 전데요. 저는 국사를 잘 모르기때문이죠.

그래서 정조라는 사람의 표현을 어린시절 잘 배우지 못했다는 것을

그렇게 강조가 된 왕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10월에는 장승배기역에서는 매년 사도세자를 기리는 행사를 한다고 합니다.

서울은 조선시대와 가장 밀접한 도시이기때문에

이런 왕과 관련된 행사를 많이 하고 있네요.



사육신 공원으로 올라가는 길입니다.



사육신 공원에는 우수조망명소가 있다고 합니다.

한강과 밀접하게 위치해 있으니 기대가 됩니다.



사육신이 누구인지 기록해 놓은 팻말입니다.



어떤 곳은 한문을 거꾸로 읽어야하는데가 있는데

여긴 왼쪽에서 바로 읽으면 되는거더군요.

불이문, 불교에서 비롯한 말로써

절로 들어가는 3문(三門) 중 절의 본전에 이르는 마지막 문이라는 뜻을 가진 말인데요.

다른 말로는 해탈문이라고도 합니다.

갑자기 불교용어가 나와서 햇갈리기 시작하네요.

그러나 여기서 불이문은 다른 의미를 뜻한다고 하네요.



사육신의 묘가 여기에 있을지는 조금은 예상했지만

누구나 모두 볼 수 있게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관람하게 해두었다는 것이 조금은 의아했습니다.

그러나 이 곳이 우리나라의 미래를 이끄는 학생들이 모여드는 그런 곳이기에

옳은 것이 무엇이냐는 것에 대한 철학을

가까운 곳에서 찾을 수 있게 도와주는 의미를 준다라고 생각이 되었습니다.



중간에 보면 크게 한문으로 성삼문이란 글자가 보이시죠.

세종대왕에게도 인정받은 관료인데도 불구하고

세조에게 운명을 달리 하였죠.

육각면인 것으로 보아하니

사육신의 이름들이 가운데 새겨져있고

그들의 기록이 상하로 새겨져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육신묘를 소개한 기록판입니다.

다음은 사육신묘로 들어가는 불이문 안을 영상으로 촬영했습니다.



신도비각이란 것을 보실 수 있을텐데요. 비각이란 영상에서 보듯이  

비석 주위에 사각형으로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얹고, 안을 들여다 볼 수 있게 만든 모양을 뜻합니다.

처음엔 보고 신기하게 여겨지기도 했는데요.

이러한 비각의 형태를 가지고 있는 곳이 여러군데 있더라구요.

임금이 귀한 신하를 기리는 동상과도 같은 개념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조금은 의하했던 점이 바로 7개의 비석입니다.

사육신은 6명으로 알고있는데 왜 7개의 비석이 있는건지 말이죠.

알아보니 묘지는 전부 7개. 그 중 넷이 진짜 묘이고, 셋은 빈묘지라고 합니다.

박팽년, 하위지, 이개, 성삼문, 유성원, 유응부 이렇게 여섯 분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유응부 대신 김문기를 넣어야 한다는 김녕 김씨의 주장으로 한 때 

기계 유씨와 김녕 김씨 간에 분쟁이 있어 

누굴 넣고 누굴 뺄 수 없어 한 분을 더 모시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육신 역사관이라고는 하지만 

학생들이 와서 조용히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있습니다.

사육신 역사관안으로 들어가진 못했지만

검색해보면 멋진 광경을 볼 수 있었더군요.

정말 안타깝네요.

다음에 갈 기회가 있으면 꼭 들어가봐야겠습니다.



저녁쯤에 가다보니 붉노랗게 물들어 가을의 정취를 심껏 취하게 만들어주는데요.



공원에서 보이는 고층 빌딩은 한껏 이 도시에 있는 사육신공원을

멋진 곳으로 승화시켜줍니다.



저때가 오후 다섯시쯤이니 곧 해가 질것 같네요.



공원은 항상 하늘이와 같이 다닌답니다. 덕분에 저도 많이 건강해졌습니다.



사람이 없는 것 같지만서도 젊은 친구들이 간간이 보입니다.



이 팻말을 보면 불이문이 왜 불이문인지 의문을 해소하게 됩니다.

두 임금을 섬기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하네요.



여유롭게 사육신 공원에 올라서 경치를 감상하면서

휴식하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드시지 않나요?

처음 오는 곳이지만 정말 제가 사는 동네 근처에서

이렇게 좋은 곳이 많다니 정말 흐뭇합니다.




아래 영상은 우수조망명소라는 이유를

알게 해줄 영상입니다.


감상하시죠 :)




너무나 멋진 절경에 감탄했습니다.

이건 꼭 찍어야해라는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이제 이 아름다운 꽃까지 찍고나서 집에돌아가게 되네요.

돌아가는 길에 하늘이와 함께한 모습을 감상하시죠.



항상 하는 거지만 수신호를 잘 알아듣습니다.

그걸로 하늘이의 상태를 종종 체크하곤 하죠.



의식의 흐름대로 가다보니 어느새 사육신공원의 반대쪽까지 와버리고 말았네요.

지도를 켜보니 노량진 컵밥거리와는 너무 먼거리에 도달하고 말았습니다.



그곳에서는 벽화가 그려진지 오래된 모습을 볼수가 있었는데요.

나름대로 괜찮은 풍경입니다.



역사공원길이라고 해서 사육신공원 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공원들의 지도가 있습니다.

가신다고하면 꼭 참고하셔서 가시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나가는 길에 못본 것들을 다시금 한번 보려고 하는데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벽화감상도 좋네요.




역시나 노량진역은 컵밥의 거리입니다.

학생들의 배고품을 달래주는 컵밥거리

연인이나 가족들과 함께 이 공원을 거닐며

집에 돌아올때쯤 배가 고프면

이 컵밥거리에서 줄을 서면서 밥을 먹는 것이 코스가 될 것 같네요.

저는 하늘이와 있어서 집에 빨리 돌아가서

들어가자마자 뻗었네요.


컵밥으로 시작해서

컵밥으로 마무리 하는

이 동네 노량진역에서는


사육신들의 보살핌 하에 많은 학생들이 대한민국에서

훌륭한 일꾼으로 자라나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앞설 것이라는

믿음이 확실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내용을 편집한 유튜브 영상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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