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울증 - 그것이 알고 싶다.

깨닫는 생활의 기술|2018. 8. 5. 20:14


  여러분들은 가끔 실검에 뜨는 조울증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양극성 장애라고 해서 직업군 중에서는 교수들이 많이 걸리는 병이라고 합니다. 연예인들 중에서 걸린 사람들이 뉴스에 나올때마다 실검에 오르기도 했죠. 최근 손예진, 장근석까지 실검에 오르내리는등 우리나라 인구중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이 걸리지 않는 희귀병이라고 치부하기도 하지만 한번 발병하면 자신의 정서를 컨트롤 하지 못하고 큰 사고가 나게 되기 마련입니다. 이 조울증이란 병을 치료하기위해서 사람들은 이기적으로 그 사람의 정신을 죽인다는 행위를 하여 통제를 하는 행위를 이때까지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예를 들어 정신병원에 감금한다거나 수면제와 같은 성분이 쎈 약을 조울병에 약이라고 이야기하면서 그 약을 먹지 않으면 일상생활을 할 수 없다는 이야기로 많은 조울병 환자들이 자신의 꿈을 버리고 살게 되면서 힘들어하며 살고 있었죠. 사회적으로 이 병은 남들과 다르다는 생각을 가지게 하면서 어느순간 그 병에 걸린 사람은 모두 환자 취급을 하면서 사회적 격리를 시키곤 하였습니다. 


  조울증에 걸려보지 않은 사람은 조울증이 어떤 병인지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반대로 조울증을 관찰한 사람들은 조울증의 가장 극단적인 면만 보고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기에 이 증상을 병이라고 판단합니다. 정신병이라고 합니다. 본능적인 기질이 있는건데 그 기질에 맞추어 교육을 받지 못했을 뿐이고 그 기질을 다루기 위한 극단적인 상황을 뛰어넘는 다른 사람의 시선이 그들을 천재라고 비유하게 합니다. 공감받지 못했을 뿐이고 그 공감을 받아들이지 않아도 됐을 뿐입니다. 어떻게 보면 그들은 하나의 왕국을 스스로 건설해놓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 왕국의 이야기를 우리는 극단적인 사건 하나에서 이야기해봅니다. 

 


  하버드 대학교 교수 다니엘 샤피로의 2012년 '원하는 것이 있으면 감정을 흔들어라'는  강연에서 우리는 한가지 사건을 예로 들수가 있습니다. 한남자가 있었습니다. 나이는 26세정도로 정신 분열증세가 있는 것이 분명해보였습니다. 과대망상증으로 자신이 신보다 위대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이 남자는 뉴욕 지하철의 플랫폼에 있었습니다. 그는 지하철 역 근처를 배회하고 있었죠. 그곳을 배회하다가 한 여자를 보았습니다. 스물 살 남짓의 그 여자는 아이를 안고 있었습니다. 남자는 그 여자를 보자 그 쪽으로 달려가 아이를 빼앗았습니다. 여자를 철로 밑으로 밀고는 청소도구 보관실에 들어가 문을 잠갔습니다. 

  곧 뉴욕시 경찰청에 신고가 접수되었습니다. 경찰은 5~10분 후 현장에 도착했습니다. 그 남자가 있는 문 안쪽에서는   

  "이 아이가 천사라면 사랑할 텐데, 악마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아이가 천사라면 사랑할 텐데, 악마라면..." 

  그 때 경찰은 밖에서 문을 두드렸습니다. 

  "문 열어요, 문열라고요! 안에서 뭐하는 겁니까?" 

  이런 방법이 통할까요? 그럴까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물론 안통합니다. 상황에 대해 심문하는 것 같거든요. 

  "우리가 어떻게 해야할지 말해보시오." 

  이 방법은 통했을까요? 상황을 악화시키기만 했습니다. 그 소리는 계속 됐습니다. 

  "이 아이가 천사라면 사랑할 텐데, 악마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아이가 천사라면..." 

  그 때 인질협상가 한 사람이 갑자기 이렇게 말했습니다.  

  "걱정마시오. 그 아이는 천사요. 그 아이는 천사요." 

  그 방법은 통했을까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불행하게도 안 통했습니다.  

  " 천사, 천사, 천사라고? 어떻게 알아? 천사인지 어떻게 안단말이야?" 

  좀전에 했던 실수와 정 반대 실수를 범하고 만 것입니다. 범인과 전혀 공감하지 못하고 있는 거죠. 처음에는 심문하는 말투였고, 이번에는 공감의 태도가 너무 지나쳤습니다. 협상을 요구하는 인질보다 더 많이 알고 있는 척 한거죠. 그런 방법은 위험합니다. 결국 저희는 제가 생각하는 협상의 정석대로 차근차근 협상을 시도했습니다. 상대의 말을 잘 듣고 적절한 질문을 하자 어느 정도 진척이 있었습니다. 저희는 이 인질범이 자신을 정신병자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되었습니다. 그는 세상을 구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게 그의 사고방식이었습니다. 나름대로는 세상을 구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 사실을 이해하게 되자 저희는 협상방식을 완전히 바꾸었습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었으니까요. 

  "우린 경찰이고, 선생님이 말하는 천사는 안 보입니다." 

  "악마도 안보입니다. 하지만 세상을 구하려고 하시는 건 알겠어요." 

  "우리 경찰도 세상을 구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합니다." 

  "그러니 그 문 여시고 함께 세상을 구해봅시다." 

  그러고는 3분, 꼭 3분 만에 그 문이 열리고 아기를 안은 그 남자가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 긴장된 상황에서 관건은 '어떻게 진심으로 상대를 인정하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인정'이란 단어를 떠올리기도 힘든 그 상황에서 말입니다. 이상 '인정'에 대한 설명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사건 이야길 듣고나서 정말 이런게 운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그 사람의 문제를 찾고 해결했다고 생각하시나요?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던 상황을 협상이란 기술을 통해서 대화를 해결해 나갔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사회적으로 어떤 용납을 바랄 수 없습니다. 그의 의도가 어쨌던간에 사회적인 약속으로는 용납이 안되는 행동입니다. 그것은 그의 입장에서는 세상이 먼저 룰을 어겼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도 세상의 헛된 말을 하는 사람들의 말들보다 더 용기내어 보이지 않는 상황에 몸을 던져본 것일 뿐입니다. 벌어지는 상황의 결과에 대해서 책임을 지기 두려운 나머지 그렇게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상황에는 반응이 되질 않습니다. 중간에 상황을 인정하는 것도 자신도 멈출수 없을 뿐더러 남들은 더 이해하지 않고 그 상황을 몰아가게 될뿐입니다. 이미 벌어진 상황에 대해 정신분열에 걸려있는 사람이 아닌 자기자신을 약자라고 지정해버리는 상황을 유지하면 유지할수록 정신분열증에 걸린 사람은 독안에 든 쥐를 보듯 상대방을 처참하게 무시할 뿐입니다. 당연히 이런 상황을 자신도 우리도 모두 배운 상황은 아닙니다. 이런 상황을 자주 겪는 사람들은 고객센터 상담원들, 아니면 철부지 어린자식을 키우는 어머니가 겪을 수 있는 일일 뿐입니다. 그런다고 그 상황에 그런 경험에 있었던 사람을 불러세워 이 사람을 막으라고 시킬 수 있었을까요? 물론 가능은 합니다만 불가합니다. 이 말은 사회적 약속이란 뜻이죠. 굳이 저 일은 대화하여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그 일을 해야하는 사람은 정해져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일에 항상 답은 있지만 일이 제대로 해결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이 아는 지식이 남들이 알것이라고 생각하고 답답하다고 생각한적이 있습니까? 그것이 이기적인 생각이라고 생각하기전까지는 이런 사람들을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차라리 이런 상황을 인지하고 책임을 지는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경찰을 제대로 비난해주시길 바랍니다. 경찰이 일을 잘못 처리하고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이야기하십시오. 그래야 이 문제는 해결될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공권력을 가지고 있기때문에 언제든지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을 배신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 정신질환을 가진 환자도 인지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오히려 약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 증상이 반복되는 현상또한 우리는 이것이 언젠가는 발병할 것이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그렇게 무책임한 환자에 대한 병의 태도로 환자의 병을 치료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심리적인 부분에 기여하여 환자는 자신이 깨닫길 바랍니다. 남들이 자신의 상황과 같지 않다는 것을 알아주길 바랍니다. 그 자신은 그 스스로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받길 바랍니다. 그것은 가족과의 관계에서도 어떤 일련의 사건이 있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인지해야합니다. 우리는 이런 사건에 책임이란 소재를 두고 직계가족에 포함되는 두사람의 동의 하에 한 사람을 정신병원에 입원 시킬 수 있습니다. 이것은 모두 사람의 책임소재에 기인한 결과입니다. 자기 스스로 치료할 수 있다고 이미 믿고 있기때문에 그래서 사회적인 현상을 부정하고 싶은 이야기를 누군가는 들어줘야하고 그래야만 이 문제는 해결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고 그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러한 상황에 따른 해결책은 자신을 인정하는 것부터 상대방에게 보여주세요. 사람은 신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항상 좋아합니다. 그런데도 우린 신이란 존재를 사람이 만들어낸 허상일 수도 있다는 것을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우린 신이라는 말에 속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신이란 말에 속는 것에 아무런 인지를 하지않고 책임을 지려하지않고 고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렇게 세상이 흘러가는데로 잘못된데로 삶은 올바르다고 거짓말을 하고있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그런 정신분열을 가지려면 이정도까지 가지않았을까요? 남을 믿지 않는 이유는 상대방이 뱉은 말이 영원하다는 착각을 하게 만드는 주장들을 들어왔기때문입니다. 그것을 걸러내는 교육을 받고 싶었을 것입니다. 


  몇년전 이 조울증에 대해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 과학적인 기술을 보았습니다. 조울증에 관련된 단백질이 없으면 조울증 증상이 발병된다는 것입니다. 자폐증이나 강박증에 대한 치료도 가능하다는 것을 암시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단백질이 없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을 알 수 있을때까지 환자들은 그 전에 수많은 고통이 있었을 것이고 이 조울증의 나쁜 결과들을 겪기전에 치료를 하는 경우도 있었을 것입니다. 대부분은 결과가 일어나기전에 자신이 조울증 환자라는 것을 인정하기가 어렵습니다. 일단 이 단백질이 부족하면 자기자신에게는 어떤 영감이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불안한 증상, 즉 공포심이죠. 그러나 그 공포심은 정상적인 공포심이 아닌 호르몬의 불균형으로 인한 자극이기때문에 말이빨라진다던가 아드레날린이 갑작스레 증가한다던가 말이 많아지고 자신이 나는 느낌을 즐기게 됩니다. 이 능력이 온전히 자신의 능력이라고 믿고 자신도 모르게 잘못된 자신감에 빠져들게 되면서 지배구조에 있어서 원래의 능력보다 훨씬 월등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그 증상이 평생 자신에게 올것이란 이해는 잘하면 조울증을 컨트롤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질수도 있고 잘못하면 이미 생명을 잃은 뒤일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자신이 얼마나 공포심을 잘 이해하느냐에 따라 살수도 죽을수도 있습니다. 병 자체의 증상이 사람들이 알때쯤 이미 극단적인 현상으로 가기 때문에 살고 죽는 문제까지로 생각을 하는 경험을 하기에 일반인들 보다는 경험이나 생각면으로 보아 고차원적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일반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극대화가 되면서 결국은 자신을 신격화합니다. 그 호르몬이 부족해 가끔 자신을 위협할때 조울증 환자는 잘 모릅니다만 여러번 이런 현상을 겪고 패턴을 읽게 되면 자신이 어쩔수 없는 그 호르몬불균형으로 느껴지는 현상을 어떻게 극복할지에 대해서 이미 준비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약이 없이도 자신의 나름대로의 비굴한 방법을 통해 그 상황을 타개하기도 합니다.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지만 어쩌면 자신을 이해하는 과정에 있어서 수많은 노력을 한 사람이라고 인정해야할 부분이기도 합니다. 조울증은 치료가 가능한 질병이면서도 현대의학에 의지하지 않을수도 있다는 가능성까지 열어야합니다. 그들은 자신을 환자라고 인정하기까지 어려운 부분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약에 대한 반감이 듭니다. 거짓말로 약을 먹으니까 플라시보는 어떻게 보면 사람을 치료하긴 하지만 반대로 부작용을 발휘하기도 합니다. 자신이 아프다는 것을 인지하지 않은 상태에서 먹는 약은 효과가 반감이 됩니다. 그래서 초반에 조울증 약은 엄청 강한 성분으로 환자들이 일상생활을 하기 힘들 정도의 약효과에 오히려 삶이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남들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행복을 포기하고 사느니 차라리 그 병이 발병하더라도 지금 약을 먹으면서 죽을 것 같은 이 이해도 되지않는 상황을 어떻게든 피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그 이유가 타당한 것은 남들의 생각로직 자체가 자신의 정신병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이라는 피해의식까지 더해지기 때문이죠. 생각의 문제는 어느누구도 자유라는 것을 존중하는 입장에서 정신교육을 하기가 정말 어려운 문제입니다. 게다가 호르몬 문제라고 할 경우에는 감정의 타당성보다 훨씬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무언가를 인식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조울증 환자들은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가장 중요한 것은 그 공포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저질렀던 일들을 뒤로하고 살아있을 수 있냐는 것입니다. 병으로 인정하지만 그 병이 일반사람들에겐 병이 아닌 사회적 약속을 깨는 행위들처럼만 보일테니까 말이죠. 


  이 글을 읽고 조울증에 걸리지 않으셨거나 조울증에 걸린 가족들이나 지인분들이 계시다면 한가지 가능성을 더 열어놓으십시오. 조울증이 약이 아닌 스스로의 노력을 통해서 극복할 수 있는 현상이라는 것까지 말이죠. 다만 그렇게 된다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것들을 포기할 수 있을만한 경험까지 해야한다는 그 사실을 알아야할 것입니다. 그만큼 인생을 건 모험을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해주고 언제까지나 가족이란 사실을 끝까지 믿어주세요. 불가능한 일인 것임을 알고 있지만 이것은 선택입니다. 자신이 자신을 이해하는 날까지 집중하고 또 집중해야한다는 것을... 가장 좋은 것은 명상입니다. 명상은 사람마다 개인차가 있습니다. 누군가가 시키는 명상과 자신만이 자신을 단련시키기 위해 하는 명상의 과정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잘못된 기운을 빼기위해 남들에게는 보여주기 싫은 모습을 발성을 시켜 없애야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누군가가 옆에 있다면 명상을 하는 그 스스로도 고통스러운 모습을 상기시키면서 정신이 깨져버릴수도 있습니다. 혼자만의 공간을 선택할 수 있게끔 만들어주세요.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명상방법은 그 스스로 터득하게끔 마음대로 해야합니다. 조울증 환자들이 정신적으로 힘들때 안되는 명상을 하게끔 몸을 풀어주는 행위로 말도 안되는 말을 하는 행위까지 결국 조울증의 증상을 스스로 치료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환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증상을 이해하고 스스로 치료할 수 있도록 컨트롤 하는 것입니다. 내가 아닌 다른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환자에게 인지시켜주세요. 명상은 처음에 그들에게 거부감을 줄 수 있습니다. 그 거부감을 깨는 과정을 스스로가 가족이 안보는 곳에서 실행시키고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이것이 그들을 위한 일입니다. 


  저는 머니라는 책을 읽으면서 삶은 물리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의 경계에 있다는 것을 항상 상기합니다. 그러면서 이 병이란 것도 물리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을 분류해서 해석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의료도 서비스 행위에 속합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의료의 행위를 서비스가 아닌 신적인 영역쪽으로 너무 해석하다보니 이 조울병이란 것을 너무 물리적인 측면에 의지하려는 속성에 소중한 가족을 잃게 되는 일까지 발생을 합니다. 끊임없는 대화보다는 자기자신을 이해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 오히려 가족을 사랑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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